매거진 Ones own Seoul

한 명의 작가가 북페어에 나가기 위해선

by 한량

온 우주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12월 3일부터 5일까지 디뮤지엄에서 '2021 서울퍼블리셔스테이블'이 열렸다. 금토일, 오후 12시부터 9시까지 꽉꽉 채운 일정이었다. 북페어 셀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선 여럿 감정이 엇갈렸다. 우선 엄청나게 반가운 마음 하나, 어떤 책을 만들까에 대한 고민 둘, 마지막으론 아기를 어떻게 하지? 란 고민 셋, 이었다.


매년 참가해 오던 북페어지만 작년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책을 만들고 이를 물류창고로 부치는 과정도 힘에 겨웠지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직접적인 대면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 옛날의 소소시장부터 언리미티드 에디션, 언더그라운드 마켓, 책 보부상 등 다양한 페어들에서 느낄 수 있던 현장감이 몹시 그리웠다. 작고 귀여운 축제에 나는 겁 없이 달려들었고, 머무는 내내 싱글벙글 웃었다. 글 잘 읽고 있어요! 이런 인사와 함께 덥썩 네임펜을 들이밀며 싸인을 요청할 때, 나는 몹시 황송해했다. 제작자들 사이 오고 가는 작은 간식과 선물들은 모두를 너그럽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것도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누가 이걸 읽어주기는 할까. 그러나 나는 이걸 해 보고 싶다. 간직해 온 어떤 생각들을 종이 위에 펼쳐내고 싶다. 물성을 가진 무엇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두려움과 설렘 사이 솟아난 마음들이 여럿 모였을 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마음 깊이 용기가 생겨난다. 오가는 눈빛 사이로 진솔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자연스레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싹튼다. 그 기억에 의지해 참가신청서를 보냈다. 그간의 작업들을 설명하고, 지향하는 바와 참가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한다. 일단 되고 나면 생각해 보자. 무엇을 만들어 가지고 나갈지를, 그리고 주말의 육아를 어찌 분담할지를. 그러나 참가 확정을 받기도 전, 마음은 미리 저 멀리 앞서 나간다. 근래에 만들어 온 엽서북들은 도시의 이미지들을 엮어 타이포를 얹은 것이었다.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로 작아서 귀여운 맛이 있었다. 그걸 해 봤으니 이번엔 크게 크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건 일련의 시간 동안 내가 겪었던 답답함에서 기인했는지 모른다. 언제 우리가 예전과 같은 삶을 회복할 수 있을까?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 보기에 부족함 없던 날들. 표정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내키면 언제든 걷다가도 입 맞출 수 있던 날들을 그리워하며 커다란 이미지들을 떠올렸다. 겨울의 북페어에 한여름의 초상들을 엮어보고 싶었다. 첨벙첨벙과 풍덩풍덩의 사이, 햇살은 찬란하고 볕은 부서진다. 코와 입을 가릴 것은 하나 없으며 사실 몸을 가릴 것도 별로 없는 세상. 모두 과거의 순간들이다.

그것들을 모아 크게 꾸려보았다. 이미지의 톤을 맞추고 해상도를 조절한다. 페이지 순서를 고려하고 재질을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추려낸 사진은 열 장. 당장 뛰어들어가 노닐고 싶은 푸르고 청량한 이미지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빳빳하고 선명하게 인쇄된 포스터북이 도착할 때쯤엔, 세 번째 고민의 실질적인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었다. 삼 일간의 육아 공백. 결론은 엄마, 미안하지만 엄마였다.

그래서 엄마는 서울행 기차를 탄다. 이미 나는 페어의 첫날 오후를 가열차게 보내고 있었고, 부산에서 우리집까지 총총 달려온 엄마는 돌봄 선생님과 바톤 터치를 한다. 아기는 할머니와 얼싸안고 반가워한다. 같이 밥을 먹고 종일 함께 논다. 어느새 둘은 둘만의 놀이들을 만들어 낸다. 웃으며 안기고, 엎드려 책을 읽고, 간식을 서로의 입에 넣어준다. 그리고 열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책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가 있다. 그러다가도 잠시 짬이라도 나면 홈캠을 켜서 아기의 기척을 살피는 내가 있다. 보이지 않는다면 스피커로 소리라도 들으려는 내가 있다. 어련히 잘 있겠지, 하면서도 보고 싶고 궁금해하는 내가 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아기는 이미 잠들어 있기에, 나는 달과 엄마에게서 그날의 활약들을 전해 듣기만 한다. 오늘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고, 밥을 얼마나 먹었으며 뭘 하느라 웃고 울었는지를 귀 기울여 듣는다. 찍어둔 사진 좀 보여줘, 하며 지친 눈으로 앨범을 넘긴다. 보고 싶다, 그새 부쩍 자란 거 같아. 고작해야 3일 일정임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나다.

일요일, 페어의 마지막 날 오후. 여전히 붐비는 공간, 저 멀리 손을 번쩍 든 달이 보인다. 그리고 유아차에 탄 아기도, 곁에 선 엄마도 보인다. 나를 보러 온 세 사람. 셋은 각자 다른 감상에 젖는 듯 보였다. 엄마는 말로만 듣던 이런 곳에서 딸이 멋지게 부스를 차리고 있는 게 영 대견한 모양이었다. 달은 달대로 매번 크고 작은 자리에서 함께 참여하던 기억들이 아련한 듯 보였다. 그리고 아기는 이 모두를 아랑곳 않고 큰 소리로 엄마! 엄마! 엄마! 외쳤다. 유아차의 벨트를 풀고, 내가 온전히 와락 자신을 안아주기 전까지 계속 외쳤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꽉 끌어안는다. 그리고 나는 잠시 부스를 비우고 천천히 미술관을 돈다. 짧은 사이 아기의 컨디션을 묻고 직접 살핀 후다. 사흘 동안 엄마가 어디에 간 것일까? 할머니도 아빠도 곁에 있으니 애정은 충족되는데, 그래도 궁금은 했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여기 낯선 장소에 있다. 참가자용의 노란 목걸이를 걸고서 환히 웃고 있다. 아기는 제 목에 건 목걸이와 내 목에 건 목걸이의 펜던트를 번갈아 만지작거린다. 손이 오갈 때마다 나는 목걸이의 색을 읊어준다. 노란색, 파란색, 다시 노란색, 파란색.

그 짧은 만남은 정말 좋았다. 이상하고 뿌듯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해 온 일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 그런 것을 느꼈다. 셋이 손 흔들고 퇴장한 후 까페에 갔다는 말을 듣고선 더 좋았다. 아기는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깔깔거리며 놀았다 했다. 새삼 다 컸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등 뒤로 저무는 해를 받으며 나는 마지막 저녁을 기쁘게 보낸다. 넉살의 게이지도 차차 늘어, 자꾸만 약장수 같은 태도로 약 대신 책을 판다. 저 사실은 지금 여기 의자에 올라가서 골라 골라 외치고 싶어요, 이런 말로 눈앞의 손님을 웃기고 나면 여간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서로 마스크 위 눈 밖에 못 보는 사이임에도, 저예요 저! 외치며 슬쩍 얼굴을 보여주거나, 수줍은 글씨로 정체를 밝히던 얼굴들, 간식을 쥐어주고 가는 손길들. 모두 정말 정말 고마웠다. 다시금 내가 이걸 해서 이렇게 기뻤구나 알게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야지 다짐하게 되었다. 그래요. 그게 독립출판의 영원한 장점 아닌가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누가 뭐라고 한들 뭐 어때요. 제작비 대는 물주는 나야 나. 하며 뻐길 수 있다는 거.

행사의 종료를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끝나고 박수는 길게 길게 이어졌다. 모두 비슷하게 애틋하고 벅찬 감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원하던 대로 의자에 올라가 마음껏 박수를 쳤다. 마스크 안에서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환호와 함성도 질렀다. 아무래도 홍대, 아니 남대문의 피가 흐르는 듯싶다. 다행히 그 피 아직 뜨겁고 진하다. 내년을 충분히 기약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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