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량 Jan 15. 2022

#2 긴장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얕게 스치는 , 조그만 기척에도 놀라 두근대는 마음,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 그런 때들이 있었다. 자는  마는  눈을 붙였다 떼면  시간이 가까워졌다. 얇은 신경줄로 오늘의 해야  일들을 열심히 헤아린다. 예민함과 민감함으로 무장한 전시 상황이지만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선다. 끝없이 뒤따르는 의무와 책임에 참으로 버거운 날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렇게까지  해도 된다는 . 지키지 않고 해내지 않으면 죽을  같지만 정녕 그러기는 힘들다는 . 그러나 스스로 만든 루틴 안에 있을 때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다는 도.


오늘로부터  1 전인 2021 1 15, 메일을 하나 받았다. 단행본 출간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기획 의도와 방향을 읽고 있자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책이라니 하고 싶다. 쓰고 싶다에 먼저 마음이 기울었다. 그건 내가 지닌 용기의 일부분이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놓아야   같은데 가능할까? 첨예한 주제를  풀어낼  있을까? 이건  스스로를 짚어보며 드는 의문이었다. 왜냐면 일단 계약을 한다면 나는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갈 테니까. 의무와 책임, 아직  안에 굳게 자리하고 있으니 처음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뒤로 세 번의 만남이 있었다. 주고받은 메일은 딱 서른 개다. 짧은 내용도 긴 내용도 있다. 만남을 청하는 이야기도 피드백을 구하는 이야기도 있다. 후반부에 이르러선 죄다 무거운 첨부파일들을 달고 있다. 워드와 피디에프 문서가 오고 간다. 그렇게 받은 묵직한 파일엔 다시 길고 긴 각주를 덧붙여 보낸다. 구전되는 설화나 민요, 전설과 민담을 채집하는 학자가 된 기분이다. 아니, 우리가 주고받는 설화나 민요, 전설과 민담은 오직 하나의 입에서 출발했다. 그건 바로 나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만났던 남자들에 대해서 쓴다.


편집자님을 처음 만나는 날, 책의 방향과 계약 조건을 논하는 자리에서 나는 나의 두려움을 꺼내놓는다. 기획안을 읽어보고 생각을 했는데요. 가족 구성원들 이야기를 하면서 짚고 갈 사람들이 몇 있겠죠. 가까운 관계일 테니 비중도 높을 테고요. 아빠, 남편, 아들. 이거 어쩌면 현대판 삼종지도 아닐까요. 그리고 내게 영향을 준 남자들에 대해 서술하는 게 어떤 의미로 읽힐지에 대한 의문도 있어요. 이게 과연 시대정신에 맞는 일인가? 아주 부드럽고 교묘하게 다가서는 백래쉬의 일환이 아닐까? 내가 백래쉬의 선봉에 서는 거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이 있어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건 반드시 정리해놓고 가야 하는 일이었다.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겠어요. 편집자님은 웃었다. 나의 두려움을 덜기 위해 우리는 함께 방향타를 잡아보기로 한다. 원고를 쓰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기로 한다. 제가 쓴 글에 대해서 피드백 많이 주셔야 해요. 나는 간곡한 부탁을 드린다. 편집자님은 프린트해 온 기획안 첫 장에 '피드백 많이' 라고 쓴다. 어쩌면 별표도 그렸을지 모른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저렇게 써서 보낸 원고에서 한 묶음이 도려내지기도 한다. 그건 짧은 문단이 되기도, 긴 꼭지가 되기도 한다. 아예 삭제된 챕터도 있었던가? 그렇다고 마음에 묻어둘 새가 없다. 편집자님의 요구는 더욱 적극적이다. 감정과 묘사가 많아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이 더 필요합니다. 여기서 상황이 왜 치닫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요. 이 단어는 꼭 필요한가요? 쉬운 말로 바꿔 써도 좋을 듯합니다. 등등.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도 한 번 크게 한 후에 메일을 열어보곤 했다. 당근과 채찍, 칭찬과 훈계가 거침없이 날아들면 나는 다시금 노트북을 열고 정좌하였다. 절대 마감을 어기지 않는 것, 그건 스스로도 자부할만한 덕목이니까.


그러는 사이 계절이 흐른다. 뼈가 시립게 춥던 날, 프랭크 시나트라의 ‘Summer wind’를 들으며 여름을 상상했다. 그때쯤 되면 커다란 얼개가 완성되어 있을 것 같았으니까. 과연 그 상상은 맞았을까? 큰 배를 만들기 위해 알맞은 크기의 목재들을 구하고 손질해 볕에 말린다. 필요한 크기로 재단한 다음 설계도의 순서대로 조립해 나간다. 중심부에서 시작해 점차 뻗어나가는 사이 고민 끝에 과감히 쳐내는 것도 있다. 설계도에 없던 부분이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매우 실용적인 부분도 상당히 장식적인 부분도 섞여있다. 그러는 사이 경칩도 춘분도 지난다. 이어 곡우를 지나 하지에 다다른다. 원고를 바라본다. 나무 혹은 나무들의 뭉치라기보다 이제 배에 가까워졌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배를 띄워 편집자님께 보낸다.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그리고 소설 다음 대설.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탈고. 편집자님과 나는 조촐한 축하를 한다. 그 후로 몇 가지 실무적인 회의들을 거친 뒤 정말 마지막 메일이 도착했다. 인쇄소에 최종 파일을 잘 넘겼다는 이야기였다. 내 의무와 책임은 가까스로 뭍에 가닿았다. 거친 바다에서 떠돌다 침몰하지 않고 무사히 기항지에 도달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다른 의미로 긴장한 상태다. 출발 신호탄의 화약이 터지길 기다리는 주자처럼, 공이 날아들기를 기다리는 타자처럼 근육은 팽팽해지고 피는 빠르게 돈다. 시선은 목표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예전과 다른 것은 내게 있는 기대다. 낙관, 여유, 느긋한 기다림. 쉽게 성마르거나 옹졸하고 편협해지 . 그래,  기록을 세우지 않아도 . 담장 넘는 공을 치지 않아도 .  넷으로 나가도 나가는  나가는 거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지난 1 동안 부끄러운 이야기도 우스운 이야기도 모두  몸을 통과해 갔다. 기울기가 가파른 사랑, 그래서   크기의 낙차. 어리석은 헛발질과 미련한 추억들까지, 솔직하지 않으면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이야기까지 꺼내야 할까?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할 때도 많았다. 아무도 나에게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어. 진정하자. 감정의 수위가 높아질 때면 호흡을 가다듬었다. 끝없는 파도를 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한없이 다정한 시절, 한없이 얼룩진 마음이 놓여있다.   배를 세상으로 띄워 보낸다. 이제 내게 깃든 것은 긴장 대신 기합, 힘을 주고 집중해 내지르는 기합이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샤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