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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금 Nov 06. 2017

20대를 포기한다.

해고의 여왕

푸를청, 봄춘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젊은 나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이
하지만, 나는 이런 내 나이가 싫다.

벌써 11월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역시 그대로이다. 나이를 먹는다는건, 한 살을 더 먹는다는건 그만큼의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다. 나의 브런치에는 "해고"를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 많다. 나의 브런치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이미 나에대한 이야기를 알고있겠지만, 이 글을 처음보는분들이 더 많으니 해고에대한 이야기를 다시하려고 한다. 나는 4번씩이나 해고를 당한 해고여왕이다.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

이 도시를 벗어나는게 바람직한 일일까?


스프링 연습장이 좋아요

6살부터 그림을 줄곧 그린 나는 가난한 살림에 그림을 그린다는건 어쩌면 사치였을지 모른다. 딸부잣집중 막내인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집은 가난했지만, 마음은 부자였다. 살면서 단 한번도 학원에 다녀본적이 없다. 그림은 정해진 규칙대로 실행되는 기술이 아닌 사람의 감정을 담아내는 예술분야의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림 그리는것을 너무 좋아하는 내 모습에 엄마는 어린시절부터 내게 연습장을 사주셨다. 지금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준 사람은 오직 엄마뿐이다. 주변사람들에게 예쁜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가를 받고 선입견 섞인 시각으로 다들 나를 바라볼때, 엄마만이 나의 작품이 최고라고 말하셨다.

떠나고싶어도 떠날 수 없는 20대 청춘
회사와의 악연 전조증상

하늘은 착한사람만 데려간다는 말처럼, 엄마는 23살에 돌아가셨고 내가 처음 번 돈 8만원 앞에 나는 무너졌다.엄마가 돌아가시기전 어느 패션회사의 그래픽디자이너로 취업을 했다. 사회초년생이었기에 더욱 잘 알아보고 입사를했어야했다. 면접때 들었던 말과 달리 사수가 없을뿐더러 주먹구구식으로 업무를 실행하는 등 모든게 엉망인 회사였다. 정말 최악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회사와 인연이없었다. 이틀간 일했던 임금을 직원의 실수로 지급해주지않았고, 그 사이 엄마가 돌아가셨다. 내가 그 때 처음 번 돈 8만원,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슬픔에 이 세상 모든 회사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 회사에서는 나보고 미안하다고했지만 지금까지도 용서가 되지않는다.

경력직이 아니라서 백수입니다.

사람들은 꿈을 가지라고하지만, 회사라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꿈보다 최근경력에만 관심을 갖는다. 경력직을 선호할때는 당연히 경력에관한 사항이 중요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최근경력은 '신입'으로 지원했더니 경력을 요구하는 회사이다.

왜 이렇게 나는 인생이 롤러코스터일까? 입시미술을 하지않는다는 이유로 소외감과 차별을 느꼈고, 내 그림을 비웃는 친구의 모욕은 물론, 그것들을 이겨내고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의 미래를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자했지만 개인의 인생보다 회사의 인생으로 살아가기위해 시스템설정을 다시 해놓은듯한 기분이었다.


4번의해고

이 이야기의 본론, 해고에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세상에 좋은 회사들도 많다. 그중에 나는 나쁜 회사와 인연이 있었기에 회사라는 일터라는 곳을 부정적으로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과연 어떻게 요리해야할까? 나는 짠맛을 좋아하니 소금 투척!!
첫 번째 해고

어떤 문구 회사

오피스텔 꼭대기에있던 회사, 지금은 이사를 갔지요. 면접에 합격해 출근하라고해서 출근했더니,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않았지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겨우 문을 열어준 이 회사의 사장. 알고보니 새로운 팀원과 팀장들로 다시 리셋했다고하네요. 디자이너는 셋, 그중에 그래픽디자이너는 나 포함 둘. 디자이너는 1명이면 충분하고 경력이없으니 만만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그날 실수라도 했나? 자기소개하고 청소하고 디자인업무하고 그게 다였는데.

사장曰 "면접에 합격하지도않았는데 제멋대로 출근해서 해고하는거야~" 라고 실장님한테 통보.

하지만 나는 실장님하고만 면접을 보고 합격사실을 전화로 받았다. 실장님도 사장님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않는다며 어이없다며 내게 미안하다고 하였다. 


두 번째 해고

2015년도 쓸쓸한 겨울, 디자이너는 내 팔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디자이너의 꿈을 접기로 했다.

글 쓰는 일도 좋아했기에 바이럴마케팅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한지 이틀만에 가진 회식자리에서 나는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었다. 조용히 구석자리에서 앉아 묻는 질문에만 답을 했다. 회식이 끝난 후, 다들 카페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를 뜨는데, 팀장님은 내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팀장님은 사장님께 잘보이지 그랬냐고 핀잔을 준다. 내성적인 성격의 이유였을까? 그렇게 나는 가위로 싹둑 자르듯 잘렸다.


세 번째 해고

내가 유일하게 오래 다닌 회사는 4개월이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입사하였는데, 수습3개월이 지나고 실장님과 정규직 확정이라는 면담까지 나누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주 후, 내게 해고통보를 하였다.

직원 80명을 하루아침에 해고하고 임금까지 미루고있던 화려한 전적의 회사.

월급이 3~4일 늦어지는건 기본, 프로세스없이 업무를 진행하는 회사답지 않은 회사,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회사, 기존 직원의 텃세. 다행히 나의 사수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퇴사하셨지만, 친한 언니처럼 우릴 대해줬다. 이 회사의 단점은 양파껍질 까듯이 계속해서 나왔고, 참다 못해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 8명중 3명은 먼저 퇴사를 했다.


그렇게 2개의 주요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사에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이 회사의 주요 매출수익이었던 파트너 회사에서 프로젝트 재계약이 어려울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그 사이 실장님과 1:1 면담으로 정규직 확정이라는 통보를 받은지 몇 주 후, 어느날 실장님이 갑자기 나를 회의실로 부른다.

네가 분위기를 흐려서

실장님은 나와 함께 가지 못할것같다고 말 끝을 흐린다. 1차 해고충격을 받았지만, 이유라도 알고싶었다. 그래서 해고사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유는 그냥 내가 분위기를 흐려서라고 한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분위기를 흐리다니? 그냥 사실대로말하지. 월급주기 빠듯하다고 말하지... 내가 업무적인 실수를 했다면, 정말 또라이처럼 분위기를 흐렸더라면 해고를 담담히 받아들였을것이다. 하루 아침에 버려지는 나의 모습을 본 동기들은 결국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고한다.

To.나를 해고한 회사들에게 : 다음부터는 거짓말로 꾸민 채용공고를 올리지마세요. 소중한 인재들, 예쁜 청춘들이 시간낭비안하게 다음부터 채용공고 올리지마세요. 부탁입니다.
네 번째 해고

마지막으로 회사는 아니지만, 전문대학교에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온라인홍보팀의 디자이너로, 교내 행사 및 사업에 필요한 온오프라인 인쇄물 디자인을 제작했다. 비록 아르바이트였지만, 일도 재밌고 보람도 느꼈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다만, 쓰러져가는 창고에서 성인 다리 한쪽밖에 들어가지않는 폭이 좁은 책상에서 근무했다.

이 학교도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하는걸로 아주 유명한 학교였다. 실장님은 평소에도 늘 화가나있고 남탓을 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에 못이겨 팀장님은 그만두셨고, 더군다나 홍보가 적자가 나자 실장님은 이사장님 눈밖에 났다. 이로써 팀이 완전히 공중분해가되었고, 하루아침에 아르바이트생들은 쫓겨나게되었다.




누가 나 좀 위로해줘요.

내가 들어가기만하면 망하는 회사, 나는 정말 뭘해도 안되는 사람인걸까? 속상한 마음에 겉으론 울지못하고 속으로만 울었다. 면접을 보아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취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 취업 포기하자.

너무나 힘든 20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 푸를청이라 쓰지만 알고보면 붉을홍.

내 인생엔 두 번 다시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제목은 20대를 포기한다이다. 진짜 20대를 포기하고 싶을까? 여기서 20대란 사실, 취업을 의미한다.

나는 진짜 20대를 포기하지않았다. 나는 개인적인 목표와 꿈을 이룬 사람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을 하는 삶을 살아보지못했지만, 내가 꿈꾸던 그림그리는 작가가 되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 해고당하기 며칠 전, 그 전에 참가했던 작가 공모전에서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 날 하늘에서 내리던 '비'는 엄마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까지 7년동안 다양한 디자인 공모전에 참가해왔다. 공모전에 참가한지 약 5~6년만에 처음 입선을 수상했고, 올해는 3등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기쁜 사실을 엄마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취업에서는 경력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공모전은 내가 디자인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곳이다. 그래서 나는 공모전 대회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고독은 내 친구, 유일한 친구는 바로 나 자신.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 작가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어린시절 꿈꾸던 나의 미래를 하나하나씩 이뤄간다는건 롤러코스터 100바퀴를 반복해서 타는기분이다. 때론 어지럽고, 때론 불안하지만 재미있다.

여러번의 해고, 엄마와의 이별, 멀어져버린 대인관계 등 나의 수 많은 이야기들이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었으면 한다.

나보다 더 큰 시련을 겪고있을 20대 청춘에게
이 글과 그림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러스트 작가 한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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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hansalt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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