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4일
연휴의 마지막 날은 언제나 쌉싸름하다.
일요일 저녁이 카카오 56%라면, 연휴 마지막 날의 저녁은 카카오 72% 정도. (휴가 복귀는 99%..) 의식적으로 시계를 보게 되고, 한 시간이 지나간 것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쌉쌀하다. 오늘 해야 할 정해진 일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불안하고, 조금 조급한 마음을 안고 하루를 보낸다.
연휴의 시작은 창대하다. 친구도 많이 만나고, 외출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책도 한 권 읽어 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올 설 연휴 집에 내려가는 길, 내 가방 속에는 무려 두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밥 먹고 누워서 핸드폰 하고, 맥주 먹고 누워서 핸드폰 하고였다. 물론 중간에 잠도 잤다.
이래서는 안 된다며 책을 폈지만, 고작 두 장이 한계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고양이들과 함께 뭉그적거리기 바빴다. 밥 먹고 눕기 바빴으며,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심취했다. 이틀 만에 보건교사 안은영과 승리호, 애니 몇 편을 클리어했다.
이때 폰에서는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렸는데, 클럽하우스 알림이였다. 그때 보았던 방제들을 기억해 볼 때 그 속은 건설적인 이야기들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왼쪽 가슴에서는 또 쌉싸름한 맛이 났지만, 비슷하지만 다른 쌉싸름한 맛의 맥주로 입을 달래며 김태리와 송중기를 영접했다.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이 되고, 네 시간도 채 남지 않아서야,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설에 가져갔던 가방에 그대로 넣어져 있는 책을 꺼내 펼칠 생각이다. 아, 책을 읽기 전에는 밀린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내다 버릴 계획이다. 빨래는.. 밤이 늦었으니 역시 내일로 미뤄야겠다. 미루고 미루다가 어쩔 수 없이 하는 내 모습과 그 사이에서 미룰 수 있는 건 또 미루는 내가 참.. 그렇다.
새벽에 침대에 누워 생각하는 다짐을 아침에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된다면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주변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 읽는 것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어휴.. 난 안 될 거야.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내일의 출근이었다.
결국, 진정한 여유도 출근 일 새벽 1시에 찾아온다.
연휴에 즐기는 여유는 항상 이런 식이다.
시간이 많다고 말하면서 마음을 편히 두지는 않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몸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어찌 보면, 내가 사는 것 자체가 조금 이런 식인 듯하다. 움직이지도 않을 거면서 마음에 여유도 두지 않는.
뭔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으면 여유로운 연휴를 보낼 수 있었을까?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여유를 여유답게 누리기 위해서는 여유를 계획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을 때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