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5일
"팀장님,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드라마에서 팀원이 팀장에게 이 말을 한 후의 전개는 이렇다. 이성 팀원인 경우에는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지고, 동성 팀원인 경우에는 대단한 아이디어를 제안받아 함께 세상을 바꾸게 된다.
하지만 명심하자. 현실에서 팀원이 팀장을 업무 보고가 아닌 개인적으로 먼저 찾는 이유는 세 가지밖에 없다.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거나' '불만이 있다고 말하거나' '오늘이 내 생일이라 케익을 준비해놓았거나.'
팀원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는데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닐 경우,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놓는 것이 좋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팀원은 불만이 있을 경우, 건의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혼자 속앓이를 하느라 바쁘다.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을 팀장이 발견하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만이 있어서 나를 찾는지 않는다.
불만이 있어서 퇴사하겠다고 결심한 후 나를 찾는다.
즉, 팀원이 나를 먼저 찾는 이유는 거의 퇴사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와 유사하면서도 더 위험한 말이 있다면 '팀장님 커피 한잔 괜찮으세요?' '팀장님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가 있다. 팀원이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기분 좋게 커피 한잔 하기 위해? 팀장이라는 존재를 찾을 리 없다. 차라리 또래 입사동기를 찾지. (팀원이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고민을 상담하기 가장 편한 사람이 본인이라서 면담 요청받는다는 팀장님이 계시다면, 조.. 존경합니다!!)
다만, 나 같은 경우에는 1:1 면담을 굉장히 자주 했다. 아무리 안 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했으며, 연말과 같이 조직 변화가 많고 대화가 많이 필요한 시점에는 1~2주에 한 번씩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팀원에게 먼저 면담 요청을 받는 이유의 대부분이 업무적인 것이나, 회사 생활적인 부분보다는 퇴사였던 경우가 많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종종 겪었기에, 어느 정도 말을 예상 할 수 있기에 팀원의 면담 요청에 더 의연하게 대처하려 애쓴다. '왜? 퇴사한다고 말하려고?' 'OO 씨가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같이 시답지 않은 대답을 함부로 던지지 않는다. 그랬다간 끔찍한 꼴을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럼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할까요?"라고 대답하고 카페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부터 온갖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퇴사한다고 말하면 잡을까 말까. 연봉이 문제일까? 회사가 문제일까? 퇴사의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등등. 오만가지를 생각하며 카페를 향한다.
커피를 시키고 사람 좋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팀원을 마주한다.
그리고 딱 하나를 잊지 않겠다 다짐한다.
'말을 아낀다.' 이걸 되뇌고, 곱씹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대화 도중 침묵이 길어져도 괜찮고, 대화의 공백이 어색한 공기를 만들어도 괜찮으니 무조건 천천히 말한다. 충분히 생각하고 말한다. 반응하듯 급하게 대답하지 않고, 감정에 휩쓸려 문장을 뱉지 않는다. 내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듣는다. 꼭 필요한 말만 뱉는다.
퇴사가 아닌 고민 상담이라면 다행이다.
특히, 나에 대한 불만이면 특히 더 다행이다.
그건 내가 마음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이니까.
퇴사 통보를 듣던, 아니면 정말 고민 상담을 하건, 면담을 요청했다는 것은 팀원이 팀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팀원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분명, 불만이던 퇴사 통보던 들었을 때 나도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아진다. 섭섭함, 서운함, 답답함이 솟구쳐 올라오며, 팀원이 하는 말에 일일이 답말을 달고 싶어 진다. 그래도 참자.
답변은 깊은 고민 후 내일 해도 늦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는 우선 듣는 것에 집중하고, 공감하는 것에 집중하자.
잊지 말자.
할 말이 많은 사람은 팀원이라는 것을.
대화의 시작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 한다는 것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팀원이 팀장을 먼저 찾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