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들에게.

2021년 3월 5일

by 한상진

청첩장을 돌리는 모든 사람이 겪는 딜레마.

이 사람에게 청첩장을 줘도 될까?

지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만 청첩장을 돌렸다. 하지만 결혼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 연락 안 한 지 3~4년이 넘는 친구, 지인들 모두에게 연락해 모바일 청첩장을 돌렸다.


그때 내 행동을 바꾼 결정적인 말은 이거였다. 아쉽게도 누가 말을 해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다 돌려. 안 줘도 될 것 같은 사람도 일단 줘. 어차피 오고, 안 오고는 그 사람 선택이야. 나중에 자기만 청첩장 못 받은 거 알고 섭섭해하는 사람 생기면 더 불편해."


원래 귀가 얇다 보니, 당시에는 별로 큰 생각 없이 '그런가?' 하며 다 돌렸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내가 청첩장을 주지 않아 섭섭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내게 청첩장을 주지 않아 섭섭한 사람'도 생겨나 보니 저 말의 뜻을 알겠더라.


이후 연락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친한 친구들과는 1년에 한 번 봐도 어색하지 않다. 반년 가까이 연락이 없었다고 해서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동안 바빴나?라는 생각도 잘하지 않는다.


연락에 대한 태도도 변했다. 새해,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에 안부 연락을 챙겨가면서 하지 않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인맥 관리 차원에서의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보다 좋은 것이 있다면 진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짜 안부가 묻고 싶어 지면 연락을 한다. 오랜만에 연락하면 어색해하지 않을까? 필요한 게 있어서 연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고 그냥 연락을 한다. 물론 이렇게 안부를 묻는 사람은 일 년에 열 명도 되지 않는다.


내가 이렇다 보니 안부 인사가 없어도 그러려니 생각이 들더라. 대신 안부 인사를 해준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된다. 그게 관리 차원이든, 나중에 나에게 할 부탁이 있어서든, 3개월 뒤 결혼을 하기 때문이든 상관없었다.


연락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안부 연락이 씹히면 어떡하지에 대한 우려가 에너지를 쓰게 만들고, 갑작스레 부탁을 할 경우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에도 에너지가 쓰인다. 그렇게 에너지를 써서 해준 연락이다. 의도는 덮어두고 그냥 연락 자체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기로 했다.


어차피 결혼식을 가고 안 가고는 청첩장을 받은 사람이 선택하는 것처럼, 받은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도 내 상황에 따른 선택이다. 일단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냐가 가장 크겠지만 말이다.


연락은 무조건 고맙게 받고, 이후에 일은 현실적으로 대답한다.


그냥 이렇게 태도를 가지니 훨씬 내 감정적으로 편하고 행복해지더라. 연락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는 것에 큰 에너지를 쓰지 않고, 온 연락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 큰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퇴사한 팀원들이나, 모임에서 만난 지인들이 '자주 연락하겠다' 말하면 이렇게 대답하는 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안부 연락 챙기면서 어떻게 사냐고, 자주 연락하고 안 하고는 자유지만 난 필요한 거 있을 때만 연락해도 별 상관없다고. 사전에 안부 연락 같은 거 안 했어도 상관없으니까 필요한 거 생기면 부담 없이 연락하라고"


이 말은 진심이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 자체가 나는 싫지 않더라.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떠오르는 것.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 이게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더라.


내가 너무 행복 회로,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난 이렇게 사는 게 속 편하더라.




(그러니까 필요한 거 생겼을 때, 너무 쭈뼛쭈뼛하며 연락 안 해도 된다고요.. 그래요. 당신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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