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피스 365

다들 조금씩 소심한 우리

탕비실 풍경

by 춘춘

우리 회사 탕비실은 좁고 긴 구조이다.

가장 안쪽부터 자그마한 싱크대, 정수기 두 대, 쓰레기통이 나란히 놓여있고, 그 앞으로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싱크대에서 컵을 닦으려면 정수기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때 정수기 앞에서 물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물을 다 받고 나와야만 싱크대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물을 받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이 친한 사이인 경우에는, 적절한 인사 몇 마디를 한다.

그러는 동안 컵이 채워져 금방 작별 인사를 하고 서로의 갈 길로 간다.


그러나 서먹한 사이라면, 서로 아무 말하지 않고 약 15초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컵 하나에 물을 받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다.


물 받는 사람은,

빨리 컵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며 물컵 안쪽만 쏘아본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컵을 잡은 손은 정수기 코크에 대고, 다리는 벌써 나가는 문 쪽으로 쏠려 몸이 반쯤 기울어져있는 우스운 모양이 되어 있다.


기다리는 사람도 어정쩡한 자세로 벽이나 창문을 바라본다.

물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울까 봐 한가로운 척 핸드폰을 뒤적이기도 한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지만 누군가 나 때문에 몇 초간 기다리는 것이 불편하고, 내가 재촉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봐 눈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소심하고 귀여운, 약간은 애잔한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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