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쓰고, 함께 살다] 조정래,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
조정래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공모를 통해 받은 독자들의 질문과 작가의 답을 엮은 책이다.
40주년 기념으로 나온 '황홀한 글 감옥'은 읽지 않았다.
작가의 장편 3편과 단편집들을 읽었고, 그 안에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형태로 이루어진 작가의 책은 읽지 않았었다.
이 책은 조정래 등단 50주년이라는 묵직한 이름에 끌려 무작정 사놓고 몇 달 묵혀두었다가 읽었는데 소설과는 또 다른 잔잔한 재미가 있었다.
다 읽고 난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참, 이 사람은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문득문득 생각했지만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 보고 나니 그 생각을 검증받았다.
이런 인생이 있을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겠으나, 자신이 사명이라 정의 내린 일을 중도에 내려놓지도,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은 채로 수십 년을 해 내는 인생이 얼마나 될 것인가 생각했다.
누구보다 고집이 세고, 의지가 강한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끈질기고 (끈기 있다는 말보다 끈질기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하고, 평범의 범주를 한참 넘어설 만큼 성실하다.
그러다 보니 살면서 부딪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태백산맥을 쓰고 나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11년간 수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군대에 가서 아버지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고,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더라, 라는 가슴 아픈 얘기를 했다고도 한다. 휘어질 줄 모르니 적도 많았을 것이고, 고집과 주장이 강하니 그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의 비난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정치에 대한 견해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성실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도 '아리랑'을 <한국일보>에 4년간, '한강'을 <한겨레신문>에 3년간 연재했습니다. 그런데 원고가 단 한 번도 늦은 일이 없습니다.
[홀로 쓰고, 함께 살다] _ 59 페이지
'아리랑'을 쓰기 위해 지구 세 바퀴 반의 거리를 취재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가 태어난 시기와 자라오면서 겪을 일들이 그의 의지를 다지게 해 주었기도 하겠지만 그 집념과 성실함은 어떤 분야에 몸담은 사람이라도 본받을 만하다.
슬럼프가 무엇이냐,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이런 종류의 질문에 작가의 답은 늘 한결같다.
소설이 잘 안 풀릴수록 더욱더 책상으로 다가앉아 끝끝내 마음에 들게 쓰고서야 물러난다.
[홀로 쓰고, 함께 살다] _ 205 페이지
작가가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한 것이 40세였다고 한다.
40세가 넘어서면서부터 이제는 조금 편한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많았는데, 느긋해지는 내 삶에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다.
첫 글과 첫 책을 50세가 넘어서 쓰기 시작했다면 어떤 심정이었겠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28세부터 3년 동안 중고등학교 선생을 했고, 유신 바람에 휘말려 교직을 떠난 다음에 5년여 동안 불안하게 잡지사와 출판사를 떠돌며 글을 많이 쓰려고 애썼고, 그다음 3~4년은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직접 출판사를 차려 사장 노릇부터 전국 출장을 다니는 영업부장까지 도맡느라고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쓰라린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중략)
그리고 세 식구가 세끼 밥만 몇 년 먹을 수 있게 저축을 하게 되자 출판사를 넘기고, 그리고 가슴 저리게 벼르고 있었던 글쓰기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태백산맥'이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40세였던 겁니다.
그때보다 10년 뒤인 5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첫 글을 쓰게 되었다면...... 제 성질에 10년 더 늦은 것을 보상받기 위해서 '태백산맥'을 쓸 때보다 두 배 이상 열심히 글에 매달릴 것입니다.
[홀로 쓰고, 함께 살다] _166 페이지
자신이 추진한 일을 중도 작파한 일도, 게으름으로 늦어진 일도 없는 것이 생활 태도라고 하니 80을 바라보는 사람이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살이 선배로써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작가 인생에서 없었다면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결코 이런 대작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작가의 아내 김초혜 시인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작가는 지면에서 아내의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지는 않았으나 몇 마디 언급에서 평생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해왔음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도록"
[홀로 쓰고, 함께 살다] _ 166 페이지
자신과 달리 사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는 작가를 걱정하는 아내의 현명한 한마디였다.
작가의 성실성을 존경하지만, 만일 내 남편이 이런 사람이라면 끝도 없이 걱정도 하고 그리 살지 말라고 말리기도 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들을 평생 비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남편에게 '낮고 침착한 소리로 나긋나긋 품격 높게' 한마디 넌지시 건넨다는 김초혜 시인이 인간적으로는 작가 못지않게 대단한 사람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적어보고 마치겠다.
이 작품에 대해 민족주의의 지나친 노출이나 편향이라고 시대 유행적인 언사를 쉽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합니다. 히틀러적 공격의 강대국 민족주의와 약소국들의 방어적 민족주의는 절대로 동일하지 않습니다....
[홀로 쓰고, 함께 살다] _ 81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