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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an 28. 2022

나를 그렇게 취급하다니, 기분 나빠.

13세 육아일기

아침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떨구더니 발을 한번 쿵 구르고 식탁을 빠져나간다.

뭐가 틀어졌는지 어리둥절한 할머니가 쫓아가 물어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오빠 왜 저러니?"

상황을 다 보지 못한 내가 궁금해서 조카에게 물어봤더니 조카가 머뭇머뭇 대답한다.

"아니, 오빠가 놀러 갈 계획 세우는데 계획 얘기는 안 하고 자꾸 게임 시간만 얘기해서 또 게임 얘기냐고 했더니 삐졌어요."

"아, 그렇구나."

토요일에 전시장에 놀러 가기로 해서 다 같이 계획을 세우던 중인가 본데 하루에 정해진 게임량을 채우지 못할까 봐 안달이 나서 혼자 게임시간 얘기만 했나 보다. 안 봐도 뻔하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사촌동생이 으이그, 또 게임 생각이야.라고 한 것 같다.


"왜 그래? 뭐 기분 나쁜 일 있었어?"

책상 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아들내미를 찾아내서 물었더니 볼에 바람을 잔뜩 물고 입술을 쑥 내밀고 투덜투덜 얘기한다.

"내가 무슨... 게임이랑 장난감이랑 먹을 것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인 것처럼 했어. 이모부랑 윤이랑 그렇게 말해서 기분 나빠."


그러니까 다 같이 놀러 갈 계획을 세우고 있으면 거기에 집중을 해야지 혼자 게임 계획을 세우니 그런 핀잔이 나올 수밖에 없지. 자업자득이다. 머릿속에 게임 생각 좀 지워라. (마음의 소리)

와,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참았다.


누구든 자신이 저지른 일을 기준으로 상황을 받아들이지는 않으니까. 니 입장에서 생각해 보마.

주말에는 하루 2시간 게임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 시간이 얘한테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다. 그 일정이 놀러 가는 것으로 틀어지게 생겼으니 제1의 일정을 따로 빼놔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겠지. 언제쯤 게임이 제1 일정이 아닌게 될까. 울화는 치밀지만 이해도 간다 뭐.


"아, 진짜? 기분 나쁠만하네. 속상했어?"

"어."

"엄마가 알아. 너 그런 것만 생각하는 사람 아닌 거 알아. 다른 생각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깊이 생각하는 거 다 알아. 엄마 알고 있어. 그래도 기분 나쁘긴 하지? 그것도 이해해."

"어 다른 때도 기분 나빴어."


지금처럼 팩 토라지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기분이 좀 상한 듯 말했던 기억이 있긴 하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런 순간에도 본인이 그런 소리 들을 행동을 하긴 했다. 내 자식이지만 참 찌질하게 구네,라고 생각하긴 했으니까.

객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과 애가 느끼는 입장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란 꽤나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알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때마다 좀 놀랍기는 했어. 너 전에도 가족들이 이런 비슷한 일로 놀리거나 하면 기분 나쁠 것 같은데 티 내지 않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더라. 화도 안 내고 분위기 나빠지지 않게 넘어가는 거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


이건 진심이었다. 화를 잘 참지 못하는 편이라 성질이 나면 소리를 버럭 지르거나 문을 쾅 닫고 방을 들어가는 것이 걱정스러웠는데 최근에는 잘 삐치기는 해도 기분이 상하면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나는 모습을 보여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갑자기 아래턱에 힘을 잔뜩 주더니 울먹울먹 한다. 이해받았다는 생각에 서러움이 터져 나왔나 보다. 그래도 체면이 있고, 방 밖에 식구들이 모여있으니 차마 울지는 못하고 눈물만 훔치고 만다.

열세 살이나 된 토실토실한 얼굴이 울먹거리는 것을 보니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았다.


"이제 학교 가야지.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자."

기분이 좀 풀어진 건지, 먹는 것 좋아하는 것은 사실인지라 배가 고파 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해서인지 벌떡 일어나 식탁으로 간다. 후루룩 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을 보니 언제 삐쳤던가 싶다.


원래 순하고 여린 편인 조카는 자기 말실수로 오빠가 화난 것에 눈치가 보여 외투도 가져다주고 가방도 가져다준다. 조그만 게 지 오빠 눈치를 보는 걸 보니 그것도 왠지 측은하다.

못 이기는 척 외투와 가방을 받아 드는 아들이 좀 속이 좁아 보인다.


'윤이한테 괜찮다고 말해.'라고 시키고 싶은걸 또 한 번 참았다.

저 둘이 해결할 일이지. 서로 미안하다 괜찮다 말로 나누, 시간이 흘러서 다시 키득거리며 장난을 치 이제 둘이 하도록 놓아두어야 할 때다.


예전에는 조카가 아무리 놀려도 기분 상해하는 일이 없었다. 사촌 여동생을 많이 귀여워했고, 어른들이 장난치면 버럭 화를 내던 예민함도 동생한테는 무뎠었는데 이제 정말 사춘기가 다 돼가나 보다. 동생이 하는 말에도 자주 기분이 상하는 것을 보면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자존심에 상처도 자주 받게 된 것 같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장난감과 게임에 집착이 심해서 가족들이 종종 놀리거나 걱정하는 편이다. 어찌 보면 장난감, 게임뿐 아니라 자기 것에 대한 소유욕이 좀 심한 편이다. 조금 너그러우면 좋으련만 어려서부터 그런 쪽으로 예민했는데 그게 기질인가 보다.


이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생이 된 아이의 성격이 바뀐 것처럼 느껴진다면, 아이의 영, 유아기를 떠올리세요. 그때 보았던 아이의 성향과 성격이 지금의 모습과 닮았다면 그것이 기질입니다.
가지고 있던 기질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기질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넌 누굴 닮아 그러니"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를 닮았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내가 아이한테 뭘 잘못했나'라고 자책할 일도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입니다.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_ 김붕년 지음_ 110페이지]

 요즘 김붕년 선생님의 책을 읽고 있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이놈에 자식 정상인 건지 좀 보자 싶은 마음에 읽었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아들은 어렸을 때도 예민한 편이었는데 자라면서 좀 편안해지나 했더니 요즘 다시 화를 잘 내서,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인가 생각하던 차였다. 10대의 뇌는 왕성하게 발전하는 시기인지라 일시적으로 퇴행하는 듯 기능이 저하되기도 한다고 한다. 성장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답이다.

옳은 것을 가르쳐주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정말 객관적으로 알려주면 된다. 그러나 부모도 사람인지라 화내지 않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 정말 화 안 내고 말했어'라고 자신하지만 돌이켜보면 마음속 화를 꾹 누르며 말했고, 그것은 아이에게 전달된다. 정말 화가 안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니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고 하고 시간을 버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도 부모가 화나는 포인트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자존심 때문에 성질을 부리면서도 사이사이 눈치를 본다.

오히려 양쪽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대화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저녁에 만나면 잠들기 전에 한번 더 안아줘야겠다.

힘들었던 것을 이해하지만 다 같이 계획을 하고 있을 때는 화제에 함께 집중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도 해주고 싶은데, 설명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이해할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잘 될지 자신은 없지만 아들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고 한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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