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춘 Mar 05. 2022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2) _ 모성과 육아

백년전 여성의 명쾌한 모된 감상기

자식은 악마요.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경험이다.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中 '모된 감상기']

지금 세상에서도 인터넷에서 비난의 댓글이 쏟아질 문구다.

1920년대에 이런 글을 발표했으니 그가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릴 때부터 잘난 여성으로, 자신은 아기를 낳아도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해내고, 아기 핑계로 게을러지지 않으리라고 잘난 체를 했지만 임신을 하고 보니 생전 몰랐던 힘듦을 경험하면서 물정 모르던 과거의 자신을 유쾌하게 타박다.


그렇게 임신이 지긋지긋하면서도 또 아기를 생각하면 보통 이상의 잘난 아기를 낳고 싶어 하는 엄마의 욕심이 모순되면서도 이해가 간다.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별도로 그 아기로 인해 엄마가 겪어야 하는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일절 꾸밈없이 담백하게 기록한 글이다.


백 년 전에 쓰여졌고,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이 드문드문 섞인 이 글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한 나에게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애를 낳고 키우면서 왠지 비난받을 것 같아 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임신, 출산에 대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나의 출산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애를 낳는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두 번의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중환자실에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수혈을 받으며 누워있었다.

하루 두 번 면회 시간마다 들어오는 식구들이 애틋한 눈빛을 보냈어도 내가 그렇게까지 위험했는지는 몰랐다. 제왕절개 후 바로 위급했기 때문에 아기를 안아보지도, 아기 얼굴을 보지도 못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가족들은 들어올 때마다 핸드폰으로 아기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여주기 바빴다.


당시의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 부옇고 작았다. 그 안에 아기는 내가 상상한 예쁘고 귀여운 아기가 아니었다. 못생기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중환자실 주변에 간호사들도 있고, 시댁 식구들도 있어서 애가 못생겨서 실망스럽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들어왔을 때 '애기 너무 못생겼어'라고 조그맣게 말했더니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안 못생겼어!'라고 외치셨다.


위험한 상황이 지나가고 일반병실로 옮겼더니 사람들이 아기 면회 시간이라며 아기를 보러 가자고 했다. 애를 낳고 나흘이 지나도록 아기를 못 봤으니 산모에게 빨리 아기를 보여주고 싶은 배려였을 것이다.


나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수술 후 며칠을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더니 수술 자리도 아프고 다리에 힘도 풀려 한 발 한 발 딛기조차 어려웠다. 솔직히 아기를 보러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출산한 아기 엄마가 아기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 뭔가 모성애가 결여된 이상한 엄마라는 평을 받을 것 같은 생각에 암말 않고 따라나섰다.


신생아실에 갔더니 간호사가 아기를 들어서 보여주는데 내가 낳은 아기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눈도 제대로 안 뜨고 이마에 쭈글쭈글한 주름만 잡힌 아기가 귀엽지도 않았다. 그저 힘든 과정을 거쳐서 나온 아기의 건강이 걱정만 될 뿐이었다.


15분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 난 그냥 빨리 침대로 가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나흘 만에 엄마 얼굴을 처음 보는 아기가 왠지 측은하여 최대한 벽에 기대어 아기 얼굴을 들여다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엄마도 나를 제왕절개로 낳았고, 그때도 식구들이 아기를 보러가자고 했는데 엄마도 나를 보면서 배가 아파서 눕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세인들은 항용, 모친의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모 된 자 마음속에 구비하여 있는 것같이 말하나 나는 도무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혹 있다 하면 2차부터 모 될 때에야 있을 수 있다. 즉 경험과 시간을 경하여야만 있는 듯싶다.
<중략>
최초부터 구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5,6 개월의 장시간을 두고 포육 할 동안 영아의 심신에는 기묘한 변천이 생기어 그 천사의 평화한 웃음으로 모심을 자아낼 때, 이는 나의 혈육으로 된 것이요, 내 정신에서 생한 것이라 의식할 순간에 , 비로소 짜릿짜릿한 모된 처음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p.261]

그렇게 내가 전에 희망하고 소원이던 모든 것보다 오직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 종일만, 아니 그는 바라지 못하더라도 꼭 한 시간만이라도 마음을 턱 놓고 잠 좀 실컷 자 보았으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p.256]

산후 조리원에 들어가서도 피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나는 맥을 못 췄다.


조리원 휴게실에 앉아서 젖을 주거나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들 중 아기를 어르기도 하고 예쁘다고 뽀뽀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내 모성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낮 시간에는 아기를 데려다 놓을 수 있었는데 아기가 어떤 날은 귀엽고 어떤 날은 못생겨 보였다.

내 아기니까 다른 아기들 사이에 누워있는 것을 보면 조금 더 반갑고 왠지 측은한 마음에 가슴이 찡하기는 했지만 너무 예뻐서 꼭 안고만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걱정이 될 뿐이었다. 내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지 며칠이 안돼서인지 모든 생명이 다 위태로워 보였고 아기가 숨만 거칠게 쉬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안고 눈물이 핑 돌았다.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니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

나혜석의 말처럼 모든 열망은 다 잊혔고 제발 중간에 누가 깨우지 않고 잠만 좀 자고 싶다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렇다고 수유하지 않고 분유를 먹이자니 잘 나오는 젖을 아기 주지 않고 말리는 것은 천하에 기이한 행동인 것 같아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백일쯤 지나자 아기가 잠을 조금 길게 자기도 하고 가끔 웃는 것 같은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다.

맞다. 아기를 낳았을 때 나는 모성이 다 갖춰지지 못했었다. 그저 나한테서 나온 아기가 세상에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만 되었을 뿐이었다. 내 뱃속에 열 달 있었다 뿐이지 초면 아닌가.


하지만 아기와 석 달쯤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기가 예쁘고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나혜석이 말하는 모성의 구비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혜석은 외국에 다녀오고 나서 자식을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아기가 어릴 적에도 현명하게 자식을 길렀던 경험을 이 책에 나온 '내가 어린애 기른 경험'에 기술하기도 했다.

이혼 후 힘든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다 참을 수 있는데 가끔씩 전해오는 '어머니 보고 싶어'하는 자식들의 편지는 참아내기 힘들다고도 했다. 모성과 힘듦은 별개다.




모된 감상기에 나온 내용은 아니지만 이 책에 실린 '신생활에 들면서'라는 파트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혼 후 생활과 감상을 쓴 글인데 남편과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청구 씨여, 반드시 후회 있을 때 내 이름 한 번 불러 주소.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 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에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 다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p. 221]

        

'부정한 아내'라는 오욕을 쓴 엄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죄책감을 끌어안지 않았다. 사람들의 비난이 힘들어 몸과 마음이 망가졌음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그것들 때문에 힘들지언정 비굴하지는 않았던 사람이다.


나혜석의 행동과 판단의 옳고 그름을 지금 우리가 판단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그가 남길 글들 속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삶과 세상을 성찰하고 그것을 담백하게 표현하며 살았는지, 얼마나 용감하고 솔직했는지 많은 생각할 거리를 가져볼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1)_ 페미니즘 고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