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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r 13. 2022

[데미안] 사십 대에 다시 읽어야 하는 책

나와 아들이 동시에, 그리고 각자 깨고 나와야 하는 세계

마흔이 넘은 나는, 과연 완전히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와 우뚝 선 모습인가. 지금도 안락한 세계에 머물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타협하는 내가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마감하기 전에 내가 싱클레어처럼 스스로 인도자의 모습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인격체가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자식이라는 존재가 있는 현재의 나는 버겁다.


싱클레어는 온실과도 같은 유년기를 지나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자신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데미안을 만남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와 스스로가 인도자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성장을 이뤘다. 청소년기에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내면이 성숙한 사람이라면 그 이후의 삶도 충분히 의미 있게 가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 소설의 부분 부분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나의 알을 깨고 나왔다고 장담할 수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의 성장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의 부모가 되어 데미안을 읽으려니 나의 모습과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더 큰 숙제와 맞닥뜨리게 된 듯 어깨가 무겁다.


아이는 이제 유년기를 지나고 있다. 스스로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안락한 어린 시절과 거세게 밀려오는 바깥세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치솟는 분노가 스스로도 괴롭고, 그대로 표현해 버린 분노 때문에 주변의 비난을 받는 것도 힘들어한다. 나는 나의 감정과 아들의 감정을 동시에 컨트롤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


아마도 부모들은 아이가 알을 깨는 모습을 지켜보는 상황이 자신의 성장기보다 더 버거울 것이다. 내가 겪어낼 때는 살아가는 과정 뿐이었지만, 부모가 되어 답을 알고 있다는 오만함을 가지고 자식을 바라보는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바른 방향으로 안내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알을 수월하게 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고, 현명한 멘토를 찾아내어 자식과 짝지어주고 싶다. 그렇게 가장 쉽게, 혼란 없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부모인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깨고 나와야 할 세계가 아닐까.


데미안을 읽는 내내 한편으로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는 나의 모습을,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수많은 고통을 겪으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아야 하는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움과 벅참이 교차했다.

아들은 안전하고 아름다웠던 유년기와 이별하는 씁쓸한 순간을 맞을 것이다. 그 순간은 동시에 나에게도 쓰린 순간이다.


코로나로 모두가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그 나날들이 괴로웠지만 아주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며 외부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친구들로부터 제2의 세상을 맛봐야 하는 아들의 내일이 두려웠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내가 쳐놓은 울타리 안에 두고 먹이고 재우며 마음이 단단해질 때까지 내보내지 않고 싶었다. 햇살 같은 얼굴로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들을 그대로 안고 있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부끄러웠던 자식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걱정이 데미안을 읽는 동안 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아들이 동시에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깨고 나와야 하는 ‘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안락함 때문에 머물고 있는 나약함을 딛고 내가 원하는 나의 운명을 먼저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아들이 자기 자신에게 닿기 위해 살아내는 과정을 기대와 응원으로 지켜봐야 한다. 나의 의지와 바람이 조금도 묻어있지 않은 염원만을 담아서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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