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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10. 2022

새 마음으로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래서 이슬아, 이슬아 하나보다.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 이런 장면이 있다.

고층 빌딩 창문을 닦는 사람들, 자기 키만 한 보따리를 머리에 가볍게이고 가는 할머니, 구두 열 켤레를 한 번에 잡고 가는 아저씨, 이들을 보며 의진이 말한다.


저게 바로 경공이라는 거다.
...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도의 경지에 이르게 돼. 그런데 이런 도인들은 수없이 많아. 다만 환경이 바뀌니까 적응하는 방법이 좀 달라졌을 뿐이지.

아라한 장풍 대작전 中

생활의 달인에나 나올법한 신공을 발휘하는 기술자들을 볼 때 나는 늘 이 영화가 떠오른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온 어른들은 가까운 우리의 이웃 노동자들임과 동시에 그 분야에서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아닐까. 그저 이슬아 작가의 옆에 있어서 섭외된 분들이 아니라 그 도의 기운이 작가를 당긴 것일 수도 있다.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부제목이 귀엽고 다정해서 웃음이 나왔다.


이슬아의 팬인 동료가 선물해 준 책이다. 내가 서점에서 봤다면 지나쳤을 것 같은데 읽게 해준 동료에게 고맙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 왔습니다.

새 마음으로 _ 이슬아

책 머리에 적힌 문장이 뭉클하다.

응급실 청소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인쇄소 기장, 인쇄소 경리, 수선집 사장,

자기 자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해오신 분들을 인터뷰한 이야기이다.


모두들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셨고, 힘든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분들의 공통점은 오래 고생한 경험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일류'라는 점이다.


농업인 윤인숙 님이 말씀하셨다.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새 마음으로 _ 이슬아 _ 97페이지

아마 그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의 제목도 탄생했나 보다.

새 마음으로...... 나도 읽으면서 입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런 말씀이 이어졌다.


키우는 중에 내가 만약 '키워도 야가 돈이 안 되면 어카지' 하면 갸가 잘 자라겠어? 크는 단계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똑같아요.
모든것을 사랑으로, 사랑으로 키워야 돼.

새 마음으로 _ 이슬아 _ 97페이지

나는 한 번이라도 일에 임하면서 이런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보니 나도 그런 날이 있었다. 이 일의 결과가 잘 나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했던 일들, 자꾸 실패하는 실험을 시작할 때 실험 장비들에게 '잘 해보자'라고 속삭였고, 결과를 보기 전에 눈을 감고 잠깐 기도했던 일들.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보니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다들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들의 손끝이 닿은 일 하나하나에 자부심이 있다.


수선집 사장님 이영애 님의 인터뷰 시작점에서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 밑줄을 쳐 놓았다.


무슨 일이든 싹 깔끔하게 했어.
시시허게는 안 했어.

새 마음으로 _ 이슬아 _ 273페이지


'시시허게는 안했어'

내 일만은 누가 봐도 최고로 보이게 잘 하는 사람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쉽게 읽히지만 깊이 있고 담담한 이슬아의 문장과 살아있는 이야기 덕에 내내 웃으며 읽을 수 있었다.




꽤 오랫동안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중동 건설 현장 근로자였던 아빠를 꼭 기록하고 싶어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지난달 아빠가 편찮으셨던 이후로 더 마음이 조급하던 참이었다.


우연히 선물 받은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하던 아빠와의 대화가 아빠 인터뷰였다.


어떤 책들은 너무 시의적절하게 내 손에 들어와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단단하고 훌륭하게 쓸 수 있겠냐마는 내 세계의 영웅인 우리 아빠의 얘기를 쓰는데 용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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