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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21. 2022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_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같은 압도적 아름다움은 없지만...

"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동트기 전 어둑한 숲 속 집 창 사이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 이른 새소리가 떠올랐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첫인상이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짙푸른 표지를 넘기면 빽빽한 글씨로 가득 찬 첫 장이 나왔었다.


그 웅장함을 기대하며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는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듯 아름답고 먹먹하던 첫 작품보다는 느슨하고 가볍다.

어찌 보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보다 더 일본스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도 역시 '집'에 대한 이야기가 뼈대를 갖추고 있고, 감정의 상태와 변화를 묘사하는 부분은 작은 감탄이 나올 만큼 탁월하다.


마흔여덟 살 주인공 다다시는, 화려한 집에서 바쁘고 현실감각이 또렷한 아내와 오래 해온 부부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동네의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한다.

집주인은 허리가 꼿꼿한 흰머리의 소노다 씨로,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로 가기 위해 살던 집을 빌려주었다. 집의 외관만 해치지 않는다면 마음껏 고쳐도 좋다는 허락을 해놓고.

그렇게 다다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을 고치며 우아하게 늙어가기를 희망한다.

헤어진 옛 애인 가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야기는 느리고 평면적이다.

'여름은...'을 기대했던 나는 도입부를 지나오는 내내 이건 좀 실망스러운걸, 약간 지루한걸, 같은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은 읽어나가다 보면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등장인물들에게 정이 들고,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맛이 있다.


결코 극적이지 않지만 잔잔하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점점 재미를 불러일으켰고, 나중에는 끝이 궁금해질 만큼 몰입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고양이의 행방이 궁금해질 때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장치에 탁 걸려들어 끝으로 끝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혼자 살게 된 다다시가 아무렇게나 먹지 않기로 한 주말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던가, 집에서 혹은 밖에서 먹는 음식들을 담담히 설명해 주는 부분들은 하루키의 소설처럼 간질간질하고 나른했다.


어떤 소설은 그럴 때가 있다. 특히 일본 소설의 경우는 그럴 때가 많다.

말로 풀어내자면 두세 문장 정도로 끝날 줄거리지만 읽는 내내 책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기이한 세계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


한 스무 장쯤 읽었던 시점에는 첫 작품의 느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웠지만 뒤로 갈수록 칙칙한 나른함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면 적절한 감상평이 될까.

다 읽고 나니 작가의 다른 작품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도 한번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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