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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un 27. 2022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대한 기나긴 작가의 말

황홀한 글감옥 _ 조정래 작가 생활 40년 자전 에세이

친일파가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사회 진출을 차단당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분의 비참한 모습은 친일파에게 도전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기도 했습니다. 그 공포에 질렸음인지 친일파를 문제 삼는 지식인은 그 후로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황홀한 글감옥 382 페이지 中]



2009년에 발간된 이 책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과 그의 작가 인생에 대한 길고 긴 '작가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긴 세월 대하소설을 쓰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창작을 하는 고통 이외에도 국가와 사회로부터 위협을 받는 끔찍한 시절을 겪어 냈다.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로 그 시절에 이런 소설을 연재한다는 것은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아리랑도 한강도 사회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집단과 맞서야 하는 힘든 여정이었겠지만 당시에는 작가 조정래가 이미 유명해진 후였으니, 안전한 울타리 하나 없이 시작한 '태백산맥'은 이후의 두 소설이 연재되던 시절보다 훨씬 위험한 도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작가는 태백산맥을 쓰면서 자신이 언제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아내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부인 김초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가가 쓰고 싶은 걸 못 쓰면 작가가 아니잖아요. 마음먹은 대로 써요."

작가가 흔들릴 때마다 부인은 격려와 위로를 했고, 안 그래도 부인을 지독히 사랑했던 작가는 이런 이유로 더더욱 존경의 마음으로 평생 부인을 받들며 살게 되었다.


그렇다고 김초혜 시인이 조용하고 지고지순하기만 한 캐릭터로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가 써놓은 글을 가장 먼저 읽는 독자이면서 부족한 부분을 꼼꼼히 지적해주는 비평가이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는 아내의 지적이 많으면 버럭 화를 내면서도 성질을 가라앉히고 모든 부분을 수정해 나갔다.

재밌는 것은 그러면서도 조정래 작가가 아내의 작품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아내는 하나도 고치지 않는다고 한다.

"시는 소설보다 더 윗 질의 고급 문학이니까." 작가의 아내가 하는 말이다.

약 올라 하면서도 고집 센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담겨있는 에피소드였다.



태백산맥의 위대함은 농민에 있다.

"모든 지식인이 이데올로기에 쏠려 분단의 열쇠를 찾고 있을 때 조정래는 엉뚱하게 그 열쇠를 '농민들'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긴 소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끈질기게 농민의 문제를 제시하며 읽게 한다. 그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우리는 끝내 설득당하고 만다. 감동을 동반한 그 설득에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이의가 없으니까 그의 이야기는 승리한 논리가 된다. 그의 분단 내인론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경제학자 정운영 씨가 쓴 글입니다.

[황홀한 글감옥 230 페이지]

작가는 어린 시절을 소작농과 지주가 함께 있는 마을에서 보냈다. 산으로 들어간 빨치산들이 이데올로기를 따른 지식인층만은 아니었음을, 소작인들이 산(山)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눈으로 보고 겪으며 자랐다.

죽을만큼 힘든 농민들의 그 시절을 옆에서 목격했고, 마을에 널부러져 반공교육에 이용된 산 사람들의 시신을 구경하는 이들 중 그들의 자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슴 아픈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니 그 어린이가 글재주 좋은 명민한 어른이 되었을 때 농민들의 뼈아픈 이야기를 쓰고 싶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

'태백산맥'도 '한강'도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읽었다. 오래전이지만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도 많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리랑만은 이상하게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훨씬 서럽고 비참했던 것 같은데 어째 한 사람의 등장인물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마지막 장면만은 눈으로 본 듯 또렷하게 기억난다. 해방이 되었다고 모두가 만세를 부르던 그 순간에, 어딘가에서 살 길이 보인다고, 빛이 보인다고 착각하며 기뻐했던 그들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파서 책을 덮고 한참을 울었다.


어린 시절 엄마 옆에 누워 자는 척하면서 늘 드라마를 훔쳐봤다. 그 시절에는 사극과 시대극이 꽤 많았고, 그중 토지는 또렷하게 기억나는 장면도 많다. 일제강점기가 나오는 드라마에는 비슷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독립이 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는 모습, 감옥에 갇혀있던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햇빛이 비치는 창문을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덜커덩 열린 감옥문을 힘겹게 열고 터덜터덜 걸어 나와 해방된 조국의 태양을 눈부시게 바라보는 모습.

이런 장면들이 감명 깊게 연출된다.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띄엄띄엄 역사공부를 했던 어린 나는 언제부터인가 독립이 되는 순간에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찡하게 가슴이 저리게 되었다.

'저렇게 좋아하면 뭐해 곧 5년만 있으면 전쟁이 나는데' 하는 생각에 그들이 한없이 불쌍했다.

'저렇게 독립운동하면 뭐해. 저러다가 나중에 사상이 달라서 서로 다시 싸우고,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다 죽이고, 밀고하고 그렇게 슬퍼지는데.'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의 영화나 드라마는 보기 힘들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다룬 소설 거의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끝납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건 무책임이고 기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해방'은 곧 '분단'이고, 그 비극은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 전체를 옥죄기 때문입니다.
[황홀한 글감옥 334페이지]

이것 때문인 것이다. 그 후의 비극 때문에 해방의 기쁨을 표현한 장면이 가슴 저린 슬픔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늘 효과적이다.

이 책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조정래의 작가 인생과 더불어, 지나간 일이라고만 볼 수 없는 역사에 대한 생각을 한 번 더 되짚게 해 준다. 소설속에서 우리의 가슴을 적셨던 뭉글뭉글한 이야기들을 잘 풀어서 힘 있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과거의 실패가 주는 영향, 언제나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람이 겪는 시련, 그로 인해 학습되는 두려움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서글픈 것인지, 모두 담겨있는 임종국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가슴에 남았다.

저는 1977년 1년 동안 [소설문예]라는 포켓용 소형 문예 월간지를 발간한 일이 있었습니다. 문학 독자의 확대를 꾀한 것이었지요. 그때 임종국 선생이 우리 잡지에 연재를 했습니다.
임 선생은 그때 모든 사회 진출이 차단되어 천안에서 밥을 굶듯이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해방 이후 모든 지식인이 친일파에 대한 연구나 언급을 철저하게 기피하고 있을 때 오지 혼자서 펜을 들었고,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복은 가혹하고 잔혹했습니다. 친일파가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사회 진출을 차단당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분의 비참한 모습은 친일파에게 도전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기도 했습니다. 그 공포에 질렸음인지 친일파를 문제 삼는 지식인은 그 후로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황홀한 글감옥 3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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