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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ul 10. 2022

'글쓰는 여자의 공간'

타니아 슐리 지음

헌 책방은 이래서 좋다.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

분명 만나면 좋아할텐데도 존재한다는 걸 몰라서 사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특별히 사려고 검색한다던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던가, 출판사나 서점에서 기획해서 홍보하는 책이 아니면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율이 높지 않은 책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어쩌다가 서점에 가는 날도 중앙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돌아보기 바쁘다. 서점 벽을 둘러싼 서가는 너무 방대하다.


이제 작은 동네 서점도 거의 없고, 모처럼 헌 책방에 간 날은 그나마 규모가 작아서 어느 정도 책들을 둘러보는데 그때 우연히 만난 책들은 인연일 것이다.


책등에 명조체로 쓰인 이름이 정갈하다

"글 쓰는 여자의 공간"

책꽂이에서 꺼내어 돌려보니 표지 사진에 가슴이 서늘하다.

글 쓰는 여자의 뒷모습과 '공간'이라는 표현.

바로 왼팔에 감싸 안고있는, 사기로 한 책들 속에 넣었다.


제인 오스틴부터 니콜 크라우스까지 시대순으로 여성 작가 35인의 글쓰기 인생과 그들의 글 쓰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들의 얼굴, 책상, 글 쓰는 모습 등이 작가별로 두세장 씩 들어있는데, 사진을 보며 설명을 읽으면 짧은 글이지만 작가의 인생과 성품, 그들이 쓴 글을 상상할 수 있다.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샬럿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 애거사 크리스티, 시몬 드 보부아르, 수전 손택, 프랑수아즈 사강...... 내가 아는 작가는 이 정도인 것 같다. 나머지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이고, 작품은 알지만 이름은 몰랐던 작가들도 있다. 삐삐롱 스타킹이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컬러 퍼플과 같은 작품들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1775년생 제인 오스틴부터 1974년생 니콜 크라우스까지 약 200년에 걸쳐 태어나고 사라져 간 작가들을 시간순으로 읽어 가다 보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들의 옷차림, 방의 풍경, 글 쓰는 방법 등이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깃털 펜으로 작은 책상에 앉아 글을 썼던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했는데 타자기를 이용하는 많은 작가들의 시간을 지나, 어느 순간 아이맥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사벨 아옌데의 이야기에 이르게 되어, 약 2백 년간 세상이 몇 번이나 통째로 바뀌었는지 깨닫고 새삼스럽게 놀라기도 했다.



내 책상을 산 것은 작년 봄이다.

우리 집에는 가족이 공용으로 쓰는 커다란 책상이 있고, 또 하나의 커다란 식탁도 있다.

두 군데 다 책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작은 테이블도 있어서 책상이 아쉽지 않다.

그런데도 딱 나만 사용하는 책상이 갖고 싶었다.

내가 쓰는 물건들만 모아놓는 내 서랍, 내 필통, 내 자리가 갖고 싶어서 침대 옆 구석을 비우고 간신히 들어가는 공간을 만들어 책상을 놓았다.

아주 큰 맘을 먹고 묵직한 색감의 삼십만원짜리 나무 책상을 놓았다.

흠집이 나면 하얀 속살이 보이는 코팅한 나무이지만 그래도 원목이고, 짙은 밤색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은 자리가 되었고, 집안 청소는 게을리하면서 책상 위 먼지는 가끔 닦아준다. (물론 지금도 구석에 먼지가 뽀얗긴 하지만)

새벽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은 자리라 혼자 책상을 조용히 쓰다듬어 볼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만년필, 종이, 타자기, 책상, 책꽂이, 연필, 창문, 글쓰기, 책......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리고 작가들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세상에 많은 여성작가들은 남성 작가들보다 더 깊이 사유해야 했고, 더 절박했을지 모른다. 지금보다 훨씬 여성의 글쓰기가 힘들었던 시절, 그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집안의 탄압을 받으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글을 썼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글쓰기에 대하여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


Write a little every day, without hope, without despair.
매일 조금씩 써보라.
희망도, 절망도 느끼지 말고.

p99, 카렌 블릭센


A writer, like an athlete, must 'train' every day.
작가는 마치 운동선수처럼 매일매일 '훈련'해야 한다.
p279, 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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