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_ 박완서 저]
p79
그동안 경제제일주의의 뻔뻔스러움에 자존심이 상한 국민들은 그 옛날 김구 선생의 말씀을 표절해다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참신한 지도자를 뽑게 되는 일도 생기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중에서 언제 들어도 마음에 깊이 와닿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첫머리를 인용하는 것으로 감히 이 졸문의 말미를 장식하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p 148
제목만 보고도 처음 읽었을 때의 행복감이나 감동이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가슴을 설레게 하는 책은 못 버린다. 책으로 젊은 피를 수혈할 수도 있다고 믿는 한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p210
더 큰 보람은 그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우러나는 그의 인격을 흠모하게 되는 마음이다. 우리가 미처 발견 못 한 미를 먼저 발견한 안목의 소유자들은 자신의 안목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흔히 과장되거나 선동적인 문장을 쓰는 경우가 많다. 허나 최순우는 그가 발견하고 느낀 한국의 미를 내면 깊숙이 스며들게 한 뒤 비로소 글로 표현해서 읽는 사람에게 그의 것을 번지게 하는 힘이 있다.
p252
우리 속물들은 국산차만 타고 들어가도, 소형차만 타고 들어가도 주눅이 들 것처럼 럭셔리한 것으로는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특급호텔 현관에다가 온갖 촌스러운 것들을 풀어놓고 양 사장 몫과 제 몫으로 나누어 차에 실어주신 선생님 때문에 그날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통쾌하고 으쓱했는지요. 그 거침없으심은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을 만큼 자랑스러웠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 중에서...)
p263~264
나는 틈만 나면 고개를 곧추세우고 뒷짐을 지고, 화가들이 작업하고 있는 책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그들의 그림 솜씨를 모욕적으로 평하기를 즐겼다.....
(중략)
그가 신분을 밝힌 것은 내가 죽자꾸나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헤어나게 하려는 그 다운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내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부터 PX생활이 한결 견디기가 쉬워졌다.
(박수근 화백 추모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