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3. 아빠와 에스프레소

소중한 커피 외식

by 춘춘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빠의 영향이 큽니다.

아빠는 커피를 아주 달고 사셨어요.

사람들이 다방 커피를 주로 마시던 시절에도 아빠는 프리마도 설탕도 넣지 않고 인스턴트커피만 뜨거운 물에 타 먹는 이른바 블랙커피를 주로 드셨습니다.


우리 아빠는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트레일러 운전기사였던 아빠의 직업적 특성상 커피를 많이 마실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말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전을 하셔야 했으니까요.


습관이 아빠를 그렇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원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긴 한 것 같습니다.

은퇴하고 난 후에도 커피는 항상 즐기십니다.


아빠와 저는 성향도 비슷하고, 입맛도 비슷합니다. 아빠와 어린 시절부터 통하는 데가 좀 있었는데요.

현재는 둘이 같은 병원에 사이좋게 고혈압 약을 타러 다니기도 합니다.

딸이 젊은 나이에 고혈압 환자가 됐다고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약 잘 먹으면 병도 아니라고 위로하다가 한소리 듣기도 하셨죠.




아무튼 아빠와 가끔 병원 가는 날짜가 겹치는 날은 같이 스타벅스에 가는 날입니다.

병원 앞 약국에서 약을 듬뿍 받아 각자 하나씩 들고 옆 건물 스타벅스로 갑니다.

그때마다 아빠와 약간의 실랑이를 합니다. 너무 비싸니까 가지 말자는 말을 매번 하시죠.


커피는 집에 가서 마시자고 하는 아빠를 달래서 스타벅스에 막상 들어가면 좋아하시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제가 모시고 가지 않으면 5천원씩 하는 커피를 마시러 가는 일은 없으시니 그날이 모처럼의 커피 외식 날이 됩니다.


보통 아메리카노 한잔, 우유 들어간 것 한잔, 이렇게 두 잔을 시켜서 나눠 마십니다.

그날도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를 시켜놓고 아빠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조그만 잔에 나오는 거 있잖아."

"뭐, 에스프레소?"

"응, 저 에스프레소가 맛있더라."

"에스프레소 먹어봤어요?"

"어, 그때 이탈리아 갔을 때 가이드가 한잔씩 시켜주더라고. 다들 쓰다고 하는데 나는 맛있어서 니 엄마 것까지 먹었지."


몇 년 전, 칠순 기념으로 아빠와 엄마는 처음 서유럽 여행을 하셨더랬습니다. 아마도 가이드가 이탈리아에서 한잔씩 맛보게 해줬나 봅니다.


"아빠, 한잔 드실래요?"

"아~~ 니. 됐어, 됐어."

부모님이 정말 싫어서 싫다고 하시는 것과, 미안하니까 그냥 하시는 말씀은 구분이 됩니다.


이미 커피를 두 잔이나 시켰는데 더 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과, 에스프레소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 것에 대한 은근한 부끄러움이 손사래를 치는 아빠의 복잡한 표정에 묻어났습니다.


슬며시 일어나 에스프레소 한잔을 더 주문했습니다.

진동벨이 울리고 에스프레소를 받아오자 아빠가 웃습니다.


"이걸 뭘 또 시켰냐."

그리고 훌쩍 마셔봅니다.

"맛있어요?"

"응. 맛있어."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까지 두 잔을 맛있게 다 드시는 걸 보니 웃음도 나고 괜히 목울대가 뻐근하기도 했습니다. 4천 원이나 하는 에스프레소를 또 시켜야 하나 주문대 앞에서 잠시 망설였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요즘은 바빠서 아빠와 스케줄을 맞추지 않고 혼자 병원에 가서 혈압약을 받아오는데요. 그러고 보니 아빠랑 더 자주 스타벅스에 가야겠습니다.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이 사소한 커피 외식이 언젠가는 한없이 그리울 시간이 되겠죠?


아빠와 에스프레소.jpg 시골집에서 손자들 줄 고구마를 굽고 있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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