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11. 언제부터 드립 커피를 마셨더라?
이만하면 부자야.
신혼집 아파트는 아마도 열일곱 평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전셋값 1억 2천 중 6천만 원이 은행 대출이었으니 방 두 개는 은행 소유의 집이었습니다.
방 두 개, 거실 방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였는데 모든 방이 다 작았어요.
거실에는 TV장 하나를 놓고 나면 소파를 놓을 수 없어서 누워서 TV를 봤습니다.
당시에 B TV의 전신이던 하나 TV를 설치했는데, 하나 TV에서 지나간 드라마를 모두 볼 수 있어서 매일 밤 즐거웠어요.
신혼부부들은 주로 밤마다 치맥을 먹어서 서로를 사육하듯 살을 찌우지 않습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치킨을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배달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어요. 대신 커피를 마셨습니다. 뭐, 커피와 함께 먹은 달콤한 것들이 치맥 못지않게 체중 증가에 일조하긴 했군요.
신혼집 주방은 좁아서 식탁을 놓을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밥상을 쓰자니 불편해서 5만 원을 주고 조립식 소형 탁자를 샀습니다. 일반 등받이 의자는 식탁 옆에 들어가지 않아 동그란 보조의자 두 개를 샀습니다.
그래도 신혼이니 테이블보를 깔고 최선을 다해서 꾸몄죠. 아마도 그 탁자 위에 드립 커피세트를 놓고 싶었나 봅니다. 예뻐서 산 것 같아요.
열심히 검색해서 칼리타 드리퍼와 서버를 사고, 물줄기를 가느다랗게 뽑아낼 수 있는 드립포트도 장만했습니다.
당시에는 원두를 파는 곳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강원도 어딘가에서 커피 장인이 직접 원두를 볶아 판매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원두를 주문해서 받았죠.
그리고 매일 저녁 커피를 내려먹었습니다. 퇴근 후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드립 커피를 내리고, 하나 TV를 보면서 드라마를 봤습니다. 달콤한 나의 도시와 선덕여왕을 보며 커피를 마시던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나네요.
아직도 그때 사놓았던 드립 커피세트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커피 선반도 따로 있고, 캡슐커피와 드립 커피를 선택해서 마실 수도 있습니다. 무려 6인용 식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큰 집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때 신혼집의 두배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신혼집이 워낙 작았으니까요.
주말 아침에 커피를 내려먹으며 신혼 때를 생각하다 보면 작은 집이었어도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만하면 많이 부자 됐다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