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반쪽짜리 롯데리아 햄버거와 교보문고

by 춘춘

아빠가 모처럼 쉬는 날 우리를 데리고 가장 자주 갔던 곳은 서점이었습니다.


조금 멀리 갈 수 있는 날은 종로 교보문고에 갔고, 여유가 없는 날은 가까운 안양 대동서림에 가곤 했어요.

동생과 나와 아빠는 서점에 도착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서가를 돌아보며 자유롭게 책을 읽다가 약속된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게 규칙이었어요. 한두 시간 동안 많이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주로 단편 소설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백치 아다다, 벙어리 삼룡이, 메밀꽃 필 무렵, 동백꽃 등 한국 단편소설들을 고등학교 수능 준비하기 전에 대형 서점의 서고 사이에 주저앉아 거의 다 읽었습니다.


아빠는 매번 책을 한 권씩은 사주겠다고 했지만, 책을 사겠다고 들고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뭐 읽었어?”

“어, 나 단편소설 세 개나 읽었어. 안 사도 돼.”

“어휴. 그 짧은 동안 그렇게 많이 읽었어?”

감탄하는 아빠의 칭찬에 으쓱했습니다.


서점에서 나오면 롯데리아에 갔습니다.

우리가 중학생쯤 됐을 때는 햄버거를 각자 한 개씩 먹었지만, 국민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빠는 늘 햄버거 두 개를 사서 한 개는 아빠가 먹고 한 개는 반으로 쪼개서 나와 동생에게 나눠주었어요

나는 햄버거 한 개쯤은 거뜬히 먹을 수 있었는데도 아빠에게 한 개를 다 사달라고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먹성이나 생활 방식을 잘 몰랐던 아빠는 우리가 햄버거 한 개를 혼자서 먹을 수 있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그때 나는 햄버거를 한 개 다 먹겠다고 한다면 아빠가 너무 돈을 많이 쓸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조금 자랐을때, 꼭 돈이 없어서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되어 엄마에게 말해봤습니다. 엄마는 바보같이 한개 다 사달라고 왜 말을 못했냐고 하더라고요. 아빠는 햄버거를 반으로 잘라준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네요.


우리는 물건을 사 달라고 조르지도, 안 사준다고 버티지도 않았습니다. 아빠와 아주 친했지만 서로의 눈치를 조금씩은 봤던 것 같아요. 서먹함과는 다른 약간의 거리감은 배려의 다른 방식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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