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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Oct 02. 2023

나는 두 가지 이유로 화가 났다.

사춘기 아들과 게임 얘기를 할 때는 진심이 필요합니다.

사춘기 아이와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 대화하면서
별생각 없는 말을 던지는 것은
부모 직무 유기이다.




주말에 아들은 유튜브를 자유롭게 본다.

아침 10시 이전, 저녁식사 이후는 보지 않기로 한 규칙을 잘 지켜서 문제는 없다.

그러나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시청 시간이 너무 길다. 태도도 좋지 않아 눈 건강도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제 주말에 유튜브를 3시간까지만 보라고 했다.


“게임 시간은 빼고 3시간이야, 그 정도면 괜찮지?”

입술을 좀 삐죽거리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해 줘서 고마웠다.


“거, 애들이나 하는 게임 좀 그만해. 맨날 초등학생들 하는 거 하면서 짜증 내지 말고.”

남편이 세상 쓸모없고 도움 되지 않을 말을 바람직하지 않은 말투로 덧붙였다.


곧이어 아들은 당연히 나올만한 답변을 했다.

“핸드폰 게임할 게 없으니까 그렇지, 나도 애들이랑 PC방 가면 그런 게임 안 하지.”


아들의 말투가 반항기 없이 착해서 더 속이 상했다.

난 두 가지 이유로 남편에게 화가 났다.



첫째,

저런 말을 하면 아들의 반응은 뻔하다. 좀 더 수위 높은 게임을 깔겠다고 하거나 PC방에 가겠다고 할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안 그래도 주변 친구들은 성인용 게임까지 하는데 본인은 초등학생들 하는 것만 한다고 툴툴대곤 한다. 은근히 주변 친구들에게 그런 놀림도 받는 눈치다.


그런 아들에게 그 게임을 그만하라고 하면, 그것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게임을 졸업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벌집을 건드릴만한 주제를 가볍게 던진 것이 화가 난다.


둘째,

그 말은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애들이나 하는 게임 좀 그만하라는 말을 듣자, 아들의 표정에는 잠깐 민망함이 지나갔다. 어떤 감정인지 본인이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도 다른 애들처럼 PC방 가면 그런 거 안 하지.”

라는 바로 튀어나온 답을 들으며, 자유롭게 PC방을 가지 못함에 대한 원망, 자신이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모욕감이 묻어있었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들은 PC방에 다니지 않는다. 몰래 가봤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고, 가겠다고 조르지 않아 다행이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친구들과의 교류가 있으니 곧 공식적으로 가겠다고 할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한 것을 알면 남편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이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것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사춘기 아이와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 대화하면서 별생각 없는 말을 던지는 것은 부모 직무 유기이다.



사춘기는 친구의 영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아들은 부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런저런 장난에 맞장구를 쳐 주고 있지만 밖에 나가면 어린 티를 내기 싫어하고 친구 집단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할 것이다.


그 집단 안에서 자존심을 지키면서 부모가 정해놓은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가 밸런스를 이룰 때, 문제없는 사춘기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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