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남편과 중고 핸드폰 팔러 신림역에 갔을 때

좋은 사람이라 감사합니다.

by 춘춘

처음 나온 아이폰을 팔던 날이었으니까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그때는 중고폰을 파는 것도 여러 군데를 알아보고 팔던 시절이었어요.

높은 값을 쳐준다는 곳이 있어 신림역 근처로 남편과 함께 갔습니다. 어떤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둔 곳이었는데요.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잔상이 보인다면서 전화로 얘기한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불렀습니다. 남편은 가격도 무례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바로 그냥 나오자고 하더라고요.


다시 팔 곳을 찾기 위해 흥정을 하는 것이 귀찮아서 인터넷 사이트에 보이는 신림역 근처 매장을 아무 곳이나 연락해 보았습니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거래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바로 만나기로 했어요.

몇 분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뛰어왔습니다.

꽤 추운 날이었는데요. 그 남자는 밖에 오래 있었는지 얼굴도 귀도 빨갛고 장갑을 끼지 않은 손도 빨갰습니다.

"핸드폰 거래 연락 주셨죠?"

"네, 얼마인가요?"

"가격은 거의 비슷해요."

그 사람이 부른 가격은 조금 전 오피스텔에서 부른 가격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잔상이 있든 말든 그냥 중고품은 다 비슷한 가격이었나 봅니다.

나는 남편이 이번에도 팔지 않겠다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물끄러미 남편 얼굴을 봤습니다.


"그러시죠."

남편은 생각보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넘겨 주려니 남자는 거스름돈이 없다면서 잠깐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냥 있는 것만 주세요."

"아, 정말요? 고맙습니다."


남자가 가고 나서 나는 마음이 좋아져서 남편 손을 꼭 잡고 물었습니다.

"왜 흥정도 안 하고 돈까지 깎아줬어?"

"어, 그 사람 추워 보여서."

나는 남편이 한층 더 좋아서 손을 더 꼭 잡았습니다.

"장인어른 따라한 거야. 막걸리 값 하라고."


아빠의 어처구니없는 선심에 가끔 엄마도 나도 한숨을 쉴 때가 있습니다.

'껀듯하면 선심 쓰고 나만 골탕 먹인다.'라는 엄마말에 대부분은 나도 공감을 합니다.

그럴 때 아빠가 하는 말이죠.

"거 추운데 막걸리나 한잔 하라고 해야지."

이런 거예요.


그런 아빠가 어이없지만 좋아서 마음이 푸근해질 때가 많은데요. 비슷한 말을 하는 남편이 그날 더 좋아졌습니다. 두번밖에 못 뵀지만 돌아가신 시아버님도 그랬습니다. 나를 만난 내내 웃으시면서도 세마디도 하지 않으셨던 아버님은 우리 아빠보다 더말이 없던 분이었어요.

좋은 사람들이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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