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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14. 2023

#17. 비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사춘기 청소년의 분노

화를 표현하는 것은 어른도 어렵지

할머니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아들은 저녁에 우리 부부가 퇴근하면 함께 집으로 올라온다.

코로나를 보내면서 잠시만 집 밖에 나가도 손을 씻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하지만 손 씻기가 귀찮은 아들은 꾀를 부린다.


할머니네서 나와 골목 하나를 건너 우리 집 지하 주차장을 통과해서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문을 세 번 열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들은 절대로 문고리를 만지지 않는다.

자기가 먼저 나와도 문 앞에 서서 우리가 열기를 기다렸다가 쪼르륵 뒤따라 나온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손을 씻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꼴을 보고 있으면 울화가 터진다. 멍하니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뒤통수를 한 대 날리고 싶을 만큼 얄밉다.


너그러운 우리 부부는 아들의 그런 행동을 그냥 봐주고 넘어간다. 어이없어하며 우리가 문을 열어 아들을 통과시켜 준다.




그런데 며칠 전, 문 여는 문제로 아빠와 아들의 갈등이 터졌다.

그날은 남편이 짐을 들고 있었는데, 그런 날도 인정머리 없는 아들은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아빠가 문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이제 코로나 끝났어. 그냥 열어도 돼."

"아니야, 아직 코로나 있어."

"이제 그냥 감기같이 약해. 그냥 열어."

"싫어."

"그렇게 조심하는데 독감은 왜 걸렸어?"


뒤따라 올라가면서 듣자니 대화의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저 화난 아빠는 그냥 네가 문 열고 가서 손 닦으라고 하면 되지 코로나를 왜 끄집어냈을까.

성질이 난 아들은 쿵쿵대며 계단을 먼저 올라가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얄미운 이 아들. 번호키를 열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먼저 문을 연 사람은 뒷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놓고 들어가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인데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건 자기 화났다는 표현이다.


"뭐야, 이 자식, 문 닫아 버렸어?"

"오, 화났다는 건가?"


직접적인 갈등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던 나는 문을 콩 닫고 들어간 아들의 분노 표현이 웃겼고, 다툼의 당사자인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거칠게 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준아, 뭐야. 문을 왜 닫아?"

남편의 말투에 나는 내심 놀랐다.


우리 남편 정말 많이 발전했다. 예전 같았으면 소리를 버럭 질렀을 텐데, 화를 꾹꾹 누르며 조용히 물어본다.


베란다로 나가려다 뒤를 돌아보는 아들의 표정은 심통이 가득하다.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온몸으로 자기 화났다고 표현하는 아들은 그 와중에도 아빠가 정해놓은 옷 벗어서 베란다에 걸기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 심술로 부어터진 입술을 쑥 내밀고 퉁퉁 걸으며 우리를 쳐다보는 얼굴에 왠지 어색함이 묻어있다.


그렇지. 화내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거지.

나 화났다 이거야. 표현하는 것은 어른도 서툴다. 어쨌든 더욱 화가 난 아빠는 왜 그러는 건지 물었고 다시 언쟁이 벌어졌다.


"아빠가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문 좀 네가 열라고 한 게 그렇게 화가 나?"

"문 때문이 아니라 문 열라고 하면 되는데 막 독감 걸린 거 얘기하고 그러니까 그렇지."

"어디서 손가락질이야!"


오, 여보 그건 아니지. 갑자기 손가락질로 넘어가지 마요.

화난 아이에게 주제 이외의 지적을 하면 논점을 잃어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손가락질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는 게 좋겠는데.


아빠의 반응에 놀라 손가락을 집어넣은 아들이 두서없이 투덜대다가 마지막에 던진 말에 남편은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아빤 맨날 그래!"

"...... 아빠가 맨날 그래? 그렇다고 하니까 아빠 좀 서운하네."


말하라고 해서 기껏 불만을 말했더니 서운하다로 마무리하는 아빠의 답이 황당했을 것이다. 뭐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자기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아들은 답답하고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이 이상하게 흘러간 대화를 들으며, 같은 한국말로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두 남자가 안타까웠다.


일단 도라지차를 준비했다.

"둘 다 나와봐요. 얘기 좀 해."

똑같이 닮은 두 남자는 똑같이 불어 터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둘 다 얘기하기 싫은 기색이다.

"그냥 우리끼리 나중에 얘기할게."

"음, 안돼. 둘이서 나를 불편하게 했으니 나도 할 말이 있어. 빨리 둘 다 나와봐요."


침대에 누워있던 아들과 씻으려던 남편이 마지못해 끌려 나오듯 식탁 앞에 앉았다.


엄마 : 나는 제 3자라서 옆에서 들어보니까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있네. 그걸 말해줄게. 먼저 준이가 화가 난 이유는 문 열라고 해서가 아닌 거 같애. 아빠가 짐이 있으니 문을 네가 열어라, 이게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인데 코로나가 끝났으니 문을 열어도 된다고 하니까 준이는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만 한 거지. 그런데 갑자기 그럼 그렇게 조심하면서 독감은 왜 걸렸냐라고 하니까 그 부분에서 화가 난 거 같아. 맞아?"

아들 : 어 맞아!

엄마 : 그건 좀 빈정대는 걸로 들릴 수 있잖아.

아빠 :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엄마: 그런 뜻이 아니었어도 그렇게 들릴 수 있지. 그리고 준이도 아빠 엄마를 좀 이해해야 돼. 네가 손 씻기 싫어하니까 대부분은 엄마 아빠가 문을 열어주지. 그건 괜찮아. 그런데 오늘처럼 아빠 엄마가 짐 들고 있는 날은 네가 열어야지. 가족이 옆에서 힘들게 짐 들고 있는데 아무것도 들지 않은 네가 손 씻기 싫다고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건 너무한 거야. 그걸 보면 엄마 아빠는 화가 날 수밖에 없어. 다음부터는 그런 상황에서 네가 문 열어. 그리고 와서 손 씻고.


그런데 이 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은 씻기 싫은지 답이 없다. 이럴 때 정말 밉다.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지? 이 상황에서도 자기가 문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춘기가 지나면 저 녀석 생각의 부조리가 사라지는 걸까? 이딴 걸 내가 설득해야 하다니 그것도 어이가 없군.


분통 터지는 마음을 숨기고 다시 얘기해 본다.


엄마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문 열고 손 씻기 싫구나?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앞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네가 해야 돼. 알았지?

아들 : (마지못해 고개를 딱 한번 끄덕인다.)

아빠 : 그래, 아빠도 그게 서운한 거였어. 아빠가 힘든데 네가 전혀 도와주지 않으니까. 이해해?

아들 : (끄덕끄덕)

아빠 : 근데 여보 아까 봤어요? 손가락질한다고 뭐라고 하니까 우리 아들 바로 손가락 접고 손바닥으로 공손히 아빠를 가리킨 거. 그때 너무 귀여워서 아빠가 웃음 나올 뻔했어. 우리 아들이 착해.

아들 : (약 1cm 정도 웃는다)

마침 그 시점에서 내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는 사이 아들과 아빠는 몇 마디 나누고 포옹을 한다.

엄마 : 이러려고 내가 안 죽고 살았나 보다. 그때 내가 잘못됐으면 둘이 허구한 날 싸웠겠어.

(좀 치사하지만 위험했던 출산 얘기를 하며 감정에 호소했다. 자주 쓰면 안 되지만 아들이 삐딱할 때 살짝 꺼낸다.)



어찌 보면 중학교 1학년과 나누는 이 대화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나 할법한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사춘기 아들은,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내 아들은 이런 작은 일에 분노하고 감정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작은 분노가 일어날 때 자신도 그 분노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냥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정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도 똑같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앉아서 골똘히 생각해 보면 분명 실마리가 있었고 그 실마리는 너무 유치해서 절대로 상대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물며 비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사춘기 청소년이야 오죽하겠는가.


이런 작은 사건들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풀다 보면 큰 일도 비슷하게 정리될 것이라고 믿는다.

솔직하게 말하고 칭찬하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걸 지겹도록 반복하는 것이 사춘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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