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스탬프가 눈에 들어왔다. 노트에 자리를 차지하는 스티커와는 달리 스탬프는 글씨 위에 찍어도 되고, 찍은 위에 글씨를 써도 된다. 다이어리를 사고 사은품으로 날짜를 찍는 스탬프를 받은 후 스탬프에 홀딱 빠졌다. 세상 한쪽에서는 아름다운 스탬프와 잉크를 이렇게 많이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나는 그 세계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찌됐나면, 뭐가 어찌되겠는가. 원하는 것을 홀린듯이 샀다.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조각이 고풍스러운 나무 함에 빼곡히 채워진 알파벳 스탬프 한 상자, 꽃과 나뭇잎 문양이 종이 박스에 나란히 꽂혀있는 스탬프, 그리고 아주 그윽한 톤을 내는 갈색과 풀색 잉크를 하나씩 주문했다.
드디어 어제 밤 택배가 도착했다. 책상에 스탬프 박스를 나란히 늘어놓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이 그득하다.
그러다가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 이런거 가지고 놀기에 나이 너무 많은가?
문구류를 좋아하고 감성 팬시 용품도 잘 산다. 웹툰은 아무리 바쁜 날에도 틈틈이 보면서 진도를 뺀다. 오만가지 장르의 만화를 다 보지만 가장 집중해서 보는 건 소년소녀들의 사랑을 다룬 청춘 연애물이다.
그렇게 신나게 살다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은데 나 혼자 가끔 "스톱!"을 건다.
아, 이거 사십오살이 이러는게 맞는건가? 설마 주책일까? 라며 흠칫 놀라는거다.
따지고 묻는 사람은 없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몇 살에 뭘 해야 잘 어울린다는 실체없는 기준을 의식하고 스스로 검열할때가 점점 늘어난다.
슬그머니 반발심이 생긴다. 그야말로 내 돈주고 내가 산 건데, 예쁜 물건 좋아하고 재밌는거 즐기는데 나이가 따로있나, 하고 싶은거 하고 살꺼야!
(누가 뭐라고 했나, 괜히 찔려서 혼자 난리다.)
내 나이의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것들이 아닐 지라도, 당장 이익이 되지 않아 시간 낭비처럼 생각될지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면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하고 살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일상을 늘 비슷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다. 부지런히 흘러가기 바쁜 단조로운 일상이 가만히 따라만 가는 내게 설렘을 주는 일은 없다. 내가 시간을 따로 빼서 일부러 설레야 그 기쁨을 맛볼 수있다.
능동적 설렘계획.
일삼아 능동적으로 설레지 않으면 설레는 방법도 잊어버릴 것 같다. 그 설렘은 큰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자주 맛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마흔 다섯이 되어서도 다이어리에 색깔을 칠하고 다꾸용품을 잔뜩사서 노란불빛 책상 아래에서 열심히 꾸며가는 정도로 말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