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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13. 2023

#16. 사십대도 다꾸해요.

잠깐 멈춰 설레고 간다. 능동적 설렘 실행

최근에 스탬프가 눈에 들어왔다. 노트에 자리를 차지하는 스티커와는 달리 스탬프는 글씨 위에 찍어도 되고, 찍은 위에 글씨를 써도 된다. 다이어리를 사고 사은품으로 날짜를 찍는 스탬프를 받은 후 스탬프에 홀딱 빠졌다. 세상 한쪽에서는 아름다운 스탬프와 잉크를 이렇게 많이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나는 그 세계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찌됐나면, 뭐가 어찌되겠는가. 원하는 것을 홀린듯이 샀다.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조각이 고풍스러운 나무 함에 빼곡히 채워진 알파벳 스탬프 한 상자, 꽃과 나뭇잎 문양이 종이 박스에 나란히 꽂혀있는 스탬프, 그리고 아주 그윽한 톤을 내는 갈색과 풀색 잉크를 하나씩 주문했다.


드디어 어제 밤 택배가 도착했다. 책상에 스탬프 박스를 나란히 늘어놓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이 그득하다.



그러다가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 이런거 가지고 놀기에 나이 너무 많은가?


문구류를 좋아하고 감성 팬시 용품도 잘 산다. 웹툰은 아무리 바쁜 날에도 틈틈이 보면서 진도를 뺀다. 오만가지 장르의 만화를 다 보지만 가장 집중해서 보는 건 소년소녀들의 사랑을 다룬 청춘 연애물이다.


그렇게 신나게 살다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은데 나 혼자 가끔 "스톱!"을 건다.

아, 이거 사십오살이 이러는게 맞는건가? 설마 주책일까? 라며 흠칫 놀라는거다.


따지고 묻는 사람은 없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몇 살에 뭘 해야 잘 어울린다는 실체없는 기준을 의식하고 스스로 검열할때가 점점 늘어난다.


슬그머니 반발심이 생긴다. 그야말로 내 돈주고 내가 산 건데, 예쁜 물건 좋아하고 재밌는거 즐기는데 나이가 따로있나, 하고 싶은거 하고 살꺼야!

(누가 뭐라고 했나, 괜히 찔려서 혼자 난리다.)


내 나이의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것들이 아닐 지라도, 당장 이익이 되지 않아 시간 낭비처럼 생각될지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면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하고 살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일상을 늘 비슷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다. 부지런히 흘러가기 바쁜 단조로운 일상이 가만히 따라가는 내게 설렘을 주는 일은 없다. 내가 시간을 따로 빼서 일부러 설레야 그 기쁨을 맛볼 수있다.




능동적 설렘계획.

일삼아 능동적으로 설레지 않으면 설레는 방법도 잊어버릴 것 같다. 그 설렘은 큰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자주 맛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마흔 다섯이 되어서도 다이어리에 색깔을 칠하고 다꾸용품을 잔뜩사서 노란불빛 책상 아래에서 열심히 꾸며가는 정도로 말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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