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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15. 2023

#18. 팀장님은 노래방에 가고 싶었지

즐거웠던 날들은 그때 그자리에 놓아두고...

코로나 시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회사 전체가 공식적인 워크숍을 했다.

약 3년만이다.


3년이면 습관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인 듯하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워크숍이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행사였다.

내년도 사업계획 리뷰를 형식적으로 살짝 하고, 거하게 점심을 먹고, 다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든, 원데이 클래스를 하든, 공연을 보든 낮에 노는 시간을 보내고, 6시가 되면 술을 들이부으러 번화가로 이동을 한다. 홍대나 강남 같은 곳에 가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술을 마신다. 일단 술 먹으러 들어가기 전에 막내 직원들이 술 깨는 약을 나눠주면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듯 한알씩 삼키고 자리에 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누군가가 사회를 보고, 약간의 이벤트와 함께 게임을 하고, 술 먹는 게임을 하고, 조금 쉬었다가 또 술 먹는 게임을 하고, 또 술을 먹고, 그러다가 늦은 밤이 되면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최후까지 남았던 사람은, 다음날 아침 정신은 술집에 두고 몸만 출근을 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워크숍이었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도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억지로 술을 권하는 문화가 흐려지긴 했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저런 강력한 워크숍이 당연한 것이려니 했었다.


코로나의 등장으로 불편한 점들이 많았지만 회식이 줄어든 것을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회사 돈으로 노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으나 저녁 늦게까지 회식자리를 지키기가 슬슬 부담스러워진 것이 30대 중반쯤부터였던 것 같다.


코로나 3년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담백한 점심회식에 더욱 익숙해졌다. 술은 원하는 사람끼리 개인적으로 먹고, 팀 전체 회식은 연간 한두 번, 그것도 식사만 가볍게 하고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시기를 보내고 이번에 조직별 워크숍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으니 사람들은 각각의 기준으로 워크숍을 상상했을 것이다.



팀원들은 근무시간 이후까지 워크숍의 여흥을 즐길 생각이 없었다. 아침에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공유하고, 점심을 먹고, 어딘가에 가서 원데이 클래스를 간단하게 들으며 공예품을 만든다. 그리고 일찌감치 저녁식사 자리로 이동, 이른 저녁을 먹고 퇴근시간 즈음에 행사를 마무리하려는 것이 팀원들의 생각이었다.


슬프게도 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오랜만에 하는 워크숍이니 즐겁게 놀고 술도 마시고 2차도 가고 싶었다. 팀장은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그리웠다. 일정을 마치고 나면 고기집에 가서 열심히 폭탄주를 말아먹으며 서서히 취해가는 핑크빛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버린 걸 어쩌겠는가. 3년은 너무 길었다. 분명히 그때 그 직원들인데 생각들이 싹 바뀌어버렸다. 술도 안 먹고, 일찍 집에 갈 생각만 한다.



나만 술 먹네, 김대리도 술 안 먹어?

네, 차 가지고 와서요.

최 과장도 안 먹고?

저는 요즘 약 먹잖아요.

그럼 윤 차장은?

오늘 머리가 아파서 못 먹겠어요.


팀장의 술잔만 자꾸자꾸 비웠다 채워진다.

야, 오늘 노래방 가야지.



노래방이라는 단어가 생경해서 웃음이 터졌다. 본인도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저 멘트 속에 진심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에 얼마라도 걸 수 있다.


팀장과 오랜 직장생활을 거의 모두 함께했던 나는 뜬금없는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저 사람 진짜 놀고 싶은가 보네. 오늘은 진짜 안될 거 같은데. 이제 세상이 바뀐 걸 받아들여야 될 텐데.


결국 7시쯤 되어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았던 저녁 식사자리는 끝이 나고 팀원들의 계획대로 모두 일찌감치 헤어지면서 워크숍은 마무리가 되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왜 라떼 타령을 할까. 후배들이 못마땅하거나 조언해주고 싶고, 잘 나갔던 자신의 예전을 떠벌이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 때는 말이야, 이런 일들이 있었어. 그때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그때처럼 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비슷했던 나의 기억이 떠오르고 그리움에 그 얘기를 늘어놓으면 라떼타령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어제, 나의 동료 팀장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즐거웠던 회식의 기억은 나도 가지고 있다. 1박 2일 워크숍에 가서 열심히 뛰어놀고 밤늦게까지 술을 먹는 것이 그때는 재미있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술 먹으며 상사 험담을 하고 또 노래방에 가서 소파 위를 뛰어다니던 추억도 웃음이 배어 나오게 재밌었다.


하지만 이제 체력도, 시간도, 사회적 분위기도 다 달라졌다.

과거의 즐거웠던 시간들은 그때 그 자리에 놓아두고 현재로 와야 한다. 지금은 담백하게 점심 회식을 하고, 저녁 회식이 있더라도 좋은 곳에서 가볍게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전에는 허용됐던 법인카드로 노래방에서 결제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닥터마틴 워커에 압정을 꽂아 입던 패션이 아무리 좋았어도 지금은 그렇게 입지 않듯이 술자리 행태도 추억은 추억으로 둘 수밖에 없다.


같이 늙어가는 나의 오랜 동료 팀장도 이제 슬슬 느꼈을 것이다. 씁쓸해도 할 수 없다. 지금은 지금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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