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에 일찍 도착했다.
먼저 와있던 친한 동료와 둘이서 조문을 마친 후 육개장에 밥을 말아 후딱 해치웠다.
퇴근 후 저녁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터였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른 동료들이 뒤를 이어 들어왔다.
늦게 도착한 부장님이 동료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두 사람을 마주 보고 앉아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유, 난 뭘 좀 먹고 왔어. 이거 더 먹어."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인원수가 파악되지 못해, 식사를 하지 않으려 했던 부장님에게도 육개장이 전달되었다. 부장님은 손대지 않은 육개장과 밥을 동료에게 미뤄주었다.
방금 전 밥과 국을 싹 비운 나와 동료는 무척 배가 불렀기 때문에 부장님이 건네준 식사가 동료에게는 매우 난감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내게 동료는 슬며시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괜찮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들어 육개장을 한번 떠먹고 조용히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소주를 기울이며 가족을 잃은 동료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상주가 와서 인사를 하는 등 분주한 십여분이 흘렀다.
누구도 동료가 부장님이 준 육개장을 남겼음을 눈치 채지도 타박하지도 않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부장님이 육개장을 건네주는 즉시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아니에요, 저 배불러요. 밥 먹었어요." 이런 말을 하면서.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부장님이 그 밥을 먹을 것도 아니고, 다시 물리지도 못했을 텐데 의미 없는 말만 몇 마디 더 오갔을 것이다.
그저 국그릇을 받아 놓은 동료의 방법이 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든가,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은근한 거절의 방식은 관계의 윤활제가 된다. 사회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도 그런 노련함을 익히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어찌 보면 그건 숙달해야 하는 요령이나 배워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편안함의 차이일 수도 있다.
나는 거절해야 할 때 긴장하는 편이다.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고 말이 빨라진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뒷자리의 김대리가 건네주는 방울토마토를 먹고 싶지 않을 때,
"아, 토마토~. 나 밥 먹고 와서 배부르네."라고 미소 지으며 말하면 좋을 텐데 "아냐아냐아냐, 나 밥 먹고 왔어. 먹어먹어"라고 높은 톤으로 빠르게 받아친다.
두 가지 다 거절이지만 전자는 상대가 부드럽게 토마토를 거둬들이게 하고, 후자는 내민 상대의 손을 약간은 부끄럽게 만든다.
사람 대하는 방법은 이제 숙달된 척하며 살고 있지만 호의를 거절하는 것 같은 난이도 높은 상황에서는 서툰 태도가 나온다. 어린 시절의 주변머리 없던 성격은 다듬어지지 못한 채 숨어있다가 가끔씩 불쑥 튀어나오는 기분이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허둥대는 순간을 위해 스스로 고안해 낸 방법이 있다.
'일단 웃고, 한 템포 쉬고.'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아침마다 한 번씩 읊어보는 주문 중 하나다. 매일 같은 문구를 읽는 것은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된다.
토마토를 먹든 먹지 않든 김대리와 나와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부드럽게 거절하면 된다.
일단 미소 한 번 짓고, 한 템포 쉬고 나서 "괜찮아"라고 말하면, 내 주변에서 그 거절을 어색하게 받아들일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