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도, 엄마의 웃는 얼굴이 아들에게 옮겨간다.

울화가 치밀어도 웃을 수 있다.

by 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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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저 글을 올렸었다. 오은영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상쾌한 아침이야,라고 말하며 웃어주기를 아침마다 지킬 수는 없었으나, 인상을 잔뜩 쓰고 침대에서 기어 나오는 아들에게 방긋 웃어주기 위해 아침의 에너지 50% 이상을 쓰고 있다.


다행히 효과가 있다. 중3인 아직까지 심각한 사춘기 반항을 하지 않고, 그런대로 평온해 보인다. 가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어제도 책상 의자를 쾅 치다가 손잡이를 깨 먹기 했지만,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화를 내려던 것은 아니라고 중얼대는 걸 보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임이나 영화 등 자기가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해 나와 활발히 대화하고 있으며 공부는 아직 하지 않는다 (희망을 잃지 않고 아직이라고 말하겠다.)


건강하고 친절한 아들의 모습에 감사하다가도 시험기간만 되면 기운이 달린다.

나도 중학교 때 공부 열심히 안했지만 그래도 쟤보다는 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면 기분은 침잠하고 불안감은 높아진다.


아니지, 내가 내 새끼 믿어야지.

우리 엄마가 그랬다. '나는 내 새끼가 잘못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훌륭한 우리 엄마의 믿음으로 내가 잘 살아왔구나, 나도 그 은혜를 아들에게 베풀리라.


그러나 나는 우리 엄마만큼 성숙하지 못하여 자꾸 걱정이 늘어간다. 우리 엄마는 나를 철석같이 믿었으나 성질이 나면 버럭 소리 지르기는 잘했는데, 나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걱정을 하나보다.


이렇듯 힘든 기말고사가 지난주에 지나갔다.

과외를 하는 수학과 영어는 대충 보통 정도의 수준, 아들 기준의 보통으로 점수를 받아왔고, 나머지 암기과목은 래가지고 어째야 쓰까, 싶은 사상 최저 점수를 기록했다.


지난 중간고사 이후 바짝 올려두었던 나의 정신적 피치는 다시 내려오기 시작하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졌다.

"그래도 주말 내내 열심히 했어. 점수보다 그 시간이 더 중요한 거야, 내가 보기에 너 이번에 가장 열심히 했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가식인 것을 알았는지 아들도 시무룩하다.


시험 점수가 낮게 나와 시무룩한 것도 이 아이에게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그전에는 쟤는 안 속상한가? 싶을 만큼 멀쩡해서 그것 또한 걱정이었으니.

또 다른 달라진 점은 이번에는 조금 다른 허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점수가 안 나와서 속상했어?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많이 속상하냐고 묻자, 이틀 공부한 건데 뭐, 라며 버럭 거렸다.

내 성질 다 어디 갔나 모르겠다. 누가 이틀 공부하랬나. 저런 적반하장을 보고 그대로 돌아서다니, 스스로 칭찬했다.


그날 저녁은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아 말을 아꼈고, 그럴수록 집안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문득,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왜 시험이 우리의 시간을 망치는 것인가, 은근히 억울다. 내가 기운을 차려야지.

장난을 쳐 봤자 받아주지 않을 게 뻔하니 나 혼자 오버스럽게 소리내어 영어공부를했다. 먹고 싶은 것을 살찔 까봐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투덜거리자 아들이 조금씩 맞장구를 쳤다.

아, 내가 웃어야 아이도 웃는다.


다음날 아침, 나의 정신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아들을 깨웠다. 역시나 졸리다고 발을 질질 끌고 나오는 아들에게 활짝, 아주 활짝 웃어 보였다. (일어나기 싫다고 툴툴대는 얼굴을 보면 진짜 웃음이 안나오지만, 얼굴은 수의근이라 웃으면 또 웃어진다) 부스스한 머리에 반쯤 감은 눈으로 내 옆을 지나가던 아들이 통행료 내듯이 나를 살짝 안고 다.


앞으로 아들의 인생에는 중3 기말고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어려움들이 비 오는 날 물 웅덩이처럼 널려있을 것이다. 그 진흙탕을 첨벙 밟더라도 발을 툭툭 털고 나아갈 수 있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냥 웃음근육을 최대한 사용해서 활짝 웃어주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까 울화가 치밀어도 웃을 수 있다.



젤리먹다가 매트릭스 빨간약 파란약 고른다. 나보다 한 뼘 넘게 커도 하는짓은 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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