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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Feb 11. 2023

대학에 갓 입학한 박영건에게

현수막이 휘날리고 함성과 박수소리가 드높다.

선후배 동료와 가족, 그리고 소문을 들은 옛 친구까지 축하를 전해준다.

그렇게 꿈꾸던 대학에 갓 입학한 박영건은

뭉클함과 벅찬 환희 속에 

한편으로 설렘을, 한편으론 두려움을 느끼며 

좀 어리둥절하다. 


가족과 직원을 제외하고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접점에 있다고 자칭하는 내가 지켜본

수험생 박영건은 다음과 같다.


이 대학에 입학하려는 대다수는

수험생을 둔 대치동의 여느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족집게 고액 과외와 입시 학원과 전문가의 컨설팅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때론 그릇된 방법의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아직 순진한 시골티가 남아있는 박영건은

몰라서 그러는지, 알고도 고집 때문인지

오직 선생님이 알려주는 교과서 하나만 붙잡고

밤을 지새우며 밑줄을 그어가며

미련할 정도로 정직하게 공부한다.


코스닥이라 불리는 자본시장 대학의 입시 문턱은 한없이 높다.

두뇌와 끈기와 패기만으로 합격할 수 없다. 

그래서 대다수 입시생들이 포기하거나

지름길을 찾으려고 학원가를 기웃거린다.  


그래서 그런지

두뇌와 끈기와 패기만으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억척스럽게 그 길을 걷는 모습은

누군에겐 미련해 보이고

누구에겐 안쓰러워 보이고

누군에겐 위대해 보였다.


원석을 분석하는 광물학자의 심정으로

내가 유심히 살펴본 박영건은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을 때 눈빛을 반짝거리는 아이 같은 호기심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도전정신

송곳처럼 뾰족할 정도의 놀라운 집중력

경쟁자가 제풀에 나가떨어질 정도의 끈질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자고 일어나면 벌떡 힘을 내는 회복력

인간인지 기계인지 착각을 하게 만드는 한결같은 성실함

직원들과 주변 지인의 감정선까지 배려하는 세심함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고 옳을 길을 걷고자 하는 정의로움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사명감까지

피터 드러커의 책에 나올 법한 CEO의 전형이다.

결점으로 흥미로운 주제의 대화에선

무아지경 상태에 빠져 시간점유율이 80%를 넘긴다.  


지난한 3여 년의 입시생활을 마치고

엊그제 첫 등교를 시작한 박영건은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주변의 환대와 A++ 성적에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거 같아 내심 뿌듯하기도 하고

고단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몰래 눈물을 훔쳤을 수도 있다.


첫 등교 복장으로 쑥스럽긴 했지만 화려한 빨간색 슈트를 입고 

진심 어린 축하 속에 오리엔테이션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앞으로 MT와 미팅과 동아리 생활이 그를 반길 것이다.


사실 우리는 대학 생활이 어떠한지 이미 알고 있다.

매 순간이 기쁨과 성공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가슴이 찢어질 정도의 아픈 실연도 대학시절에 겪었으며,

세상의 부조리와 부당함과 억울함도 대학시절에 눈떴으며

넘을 수 없는 막막한 벽과 나의 한계를 깨달은 것도 대학이었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수록

통제 가능한 영역보다 불가능한 영역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모든 걸 다 대비하더라도 실패의 여신은 우리를 찾아오고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의외의 성공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걸

이러한 경험 속에서 

기세등등했고 의기양양했던 우리는 

겸손을 배웠다. 


태양이 뜨면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고

물안개가 자욱하면 조용히 운무를 감상하며

파도가 거친 날이면 역동적인 스릴을 느껴가면서

여행의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걸

우리는 온몸으로 배웠다.


박영건이 인지하든 그러지 않든

어둡고 깜깜한 산길을 무모하고 용감하게 앞서 걸은 그가

갈래길마다 밝혀 둔 등불이

그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길잡이가 될지

대학 입시를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는 수많은 대표들에게

그의 선례가 얼마나 큰 용기를 북돋아 주는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3인칭 관찰자로서 

나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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