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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Feb 23. 2022

바선생을 만나다

캄보디아의 첫인상


프놈펜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에 깔린 후덥지근한 공기와 여름밤 냄새에 캄보디아에 온 것이 단번에 실감이 났다. 입국 절차는 꽤나 복잡하고 길었다. 비행기에서 작성한 세 장의 종이 중 문진표처럼 생긴 흰색 종이를 내밀고 백신 접종 완료 증명서와 pcr 음성 확인서를 보인 후 도장을 받고 입국심사를 받았다.


캄보디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계속 가져온 서류를 다 꺼내보였다. 입국 심사를 통과한 후 여권에 비자를 받고, A를 기다려서 같이 수하물을 찾은 후 항원 검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 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상당하기 때문에 pcr은 음성을 받았지만 혹시라도 항원 검사에서 양성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다. 결과는 우리 둘 다 음성이었고, 드디어 비행기에서 내린 지 1시간 15분 만에 프놈펜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현지시간으로 밤 열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 공항 밖으로 나서자마자 택시와 툭툭 기사들이 관광객인 우리를 붙잡고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A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A를 붙잡고 늘어진다. 뭔가 그애가 결정을 내리는 건 오랜만이라 나는 그냥 옆에서 웃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딜 가든 내가 주문하고 길을 찾고 지도를 보고- 뭘 하든 대부분 A가 나에게 부탁해야 했다면 (영국에서는 A가 대부분 그런 역할을 도맡아 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어떨까 궁금했다. 누구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전혀 생소한 곳에서의 우리는 어떨까? 참 많이 궁금했었다. 물론 A는 드디어 오랜만에 자기에게도 주도권이 생긴다며 나름 신나 하더라.


우리는 캄보디아에 왔으니 그 유명한 툭툭을 타고 호텔에 가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한숨도 자지 않아 피곤한 만큼 툭툭 가격을 가지고 흥정할 생각은 없었다. 비가 왔었는지 살짝 젖어있는 도로 위로 촉촉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늦은 밤, 섭씨 23도의 미적지근한 온도와 젖은 공기는 한국의 초여름밤 정취를 상기시켜줬다.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고 마주한 유월의 어느 저녁 같았다.


툭툭은 생각보다 좀 무서웠다. 덜컹거리기도 하고 코너를 돌 때마다 내가 튕겨나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재미는 있었지만 A도 똑같이 느꼈다고 한다. 시간이 오전 한 시에 가까워진 도시를 지나 호텔로 향하는데 늦은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이리저리 깨진 벽돌과 폐허, 맨발로 집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키가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신기했다. 요란한 조명도, 불이 켜진 가게도 드물었다. 나는 나른하게 잠든 도시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정말 피곤했긴 했나 보다. 비행기에서 복용한 항말라리아제 때문에 비행 내내 숙취 같은 멀미를 겪고도 잠을 자지 않아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직원이 안내해주는 방으로 가려는데 뭔가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설마 저 방이란 말이야······?


레스토랑과 카페가 딸린 호텔이었는데, 위층으로 안내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가장 저렴해 보이는) 방으로 안내를 해주시는 것이다. 안돼···.


사진이랑 다르면 가만 안 둘겁니다-하는 생각으로 A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는데 벽 색깔까지 사진이랑 똑같은 방이었다. 사진보다 엄청나게 낡았다는 것만 빼면. 그리고 사진을 보고 생각했던 방보다 꽤 작은 것만 빼면.


그래, 여기까지 괜찮았다. 그럴 수 있지.


직원이 나가고 한 10초 정도 지났을까. 겨우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기도 전에 활짝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통해 보이는 화장실 벽에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 생각하자마자 한 번 더 크게 움직이는 놈을 보고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소리를 질렀을 거다.


내가 기겁을 하는 동안 손가락 한마디 반 정도 사이즈의 벌레는 살짝 날개를 움직이기까지 했다. 하느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나는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는 바퀴벌레라는 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짐을 내려놓는 A에게 제발 화장실 문을 닫아 달라고 애원했다. 안 그래도 예민했던 탓에 바선생의 등장은 무언가를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말 아무것도 만지고 싶지 않았다. 지랄을 하는 나를 보며 A가 '일단 잘 준비부터 하자'고 차분하게 말했다.


모기 기피제를 몸 구석구석 바르고 홈매트를 설치하고 잘 준비를 하면서까지 나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고생해서 왔는데 벌레를 마주한 방에서 자야 한다니, 내 신세가 서러웠다. A가 어쨌든 지금 이 늦은 시간에 어쩌겠냐는 말투로 말했다.


-일단 니가 그렇게 싫으면 내일이라도 다른 숙소로 옮기자. 니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겠다 대답하는 나에게 A가 덧붙였다.


-근데 캄보디아에 가기로 했으면서, 벌레 때문에 이렇게 무서워할 거면 왜 캄보디아에 가겠다고 한거야?

-나는 호텔에 바퀴벌레가 있을 줄 몰랐지!

-여기는 더운 나라잖아. 게다가 캄보디아인데, 너무 많이 기대하면 안 되지.


나는 A의 대답에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게 마른 침대에 몸을 눕혔다. 막상 피곤했던지라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벌레 때문에 눈을 감기가 무서웠다. 내일이라도 더 깨끗한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매트리스가 너무 편안해 나는 곧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이때는 몰랐다. 단 하루 만에 내가 이곳을 너무나도 좋아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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