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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Feb 22. 2022

프놈펜행 비행기를 탔다

잊을 수 없는 밤 비행기

진짜 캄보디아에 간다. 지금 우리는 프놈펜행 비행기 안이다. 오후 7시 35분 밤 비행기. 창밖으로는 캄캄한 어둠뿐이다. 이제 이 여행은 취소할 수 없다. 앞으로 이 시간이 어떻게 기억될지는 지금의 나에게 달렸다.


이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지금의 나는 모르지만 미래의 내가 캄보디아에서 마주했을 수많은 노을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쪽빛 바다가 궁금하다. 나는 고요한 정글과 붉은 지평선도 이미 겪어보았을 것이다. 덥고 짜증 나는 일들도, 더럽고 불편한 곳도 지나갔을 것이고 당황스럽고 어려운 일도 해결해 냈을 것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날들로만 이 여행을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대도 그 모든 걸 극복할 힘은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바라는 건 많지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올 수만 있다면 모든 여행은 결국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걸 안다.


이렇게 썼지만 막상 캄보디아에 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프놈펜 공항에 내려서 느낄 후덥지근한 공기가 기대된다. 출국 전날부터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바쁜 일정에 대한 피로감이 컸는데 한국과 아주 많이 다를 날씨를 상상하면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설레어온다. 얼마나 더울지 가늠이 가지 않아 걱정이 되기도 하고.


더운 나라에 배낭만 달랑 두 개 들고 가면서 패딩까지 입고 가는 건 너무 큰 짐이라 A와 나는 패딩을 두고 가는 걸 택했다. 한낮에도 영하로 떨어져 엄청나게 추웠던 전날보단 조금이나마 더 따듯해서 할 만했던 것 같다. 여름용 나일론 조거 팬츠와 선형이가 지난 생일 선물로 준 크롭탑을 입고 볼레로 가디건과 바람막이 하나를 위에 걸친 것이 공항철도를 타러 가던 내가 입은 옷의 전부였다.


사실 아직도 내가 프놈펜행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공짜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하루 내내 극도로 예민했던 나 때문에 A만 고생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막 두 시간 반쯤 지났으니 딱 절반쯤 왔다. 어두컴컴한 비행기가 낯설다. 옆에 앉아 다운받아 온 영화를 보는 연인을 바라본다. 캄보디아에 도착해서는 정말 우리 둘밖에 없다.

우리… 잘 헤쳐 나갈 수 있겠지?



글을 쓰고 노트북을 덮었는데 우리는 필리핀과 베트남 사이 어디 바다 상공을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A 옆으로 보이는 창밖을 바라봤는데, 캄캄한 밤바다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더 몸을 기울여 좀 더 위쪽을 보니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별들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검은 밤하늘을 촘촘히 메운 별들이 너무 밝게 빛나서 현실감이 없었다. 몇 분쯤 지났을까, A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던 나를 톡톡 치고는 창밖을 가리켰다.


밤바다 위에 알 수 없는 작은 불빛들이 몇 개 보였다. 섬일까, 아님 바다에 심어둔 가로등일까. 신비로운 광경 위로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쏟아진다.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밤 비행기를 타길 정말 잘했다. 피곤했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어. 나는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캄보디아에서의 나는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길 바라본다. ‘더 복서’에서처럼, 별들은 오로지 나를 위해 빛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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