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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Mar 01. 2022

캄보디아에서의 첫날엔 무엇을 해야할까

캄보디아의 첫인상

캄보디아에서의 공식적인 첫날 아침이 밝았다. 한시 반이 넘은 시각에 잠이 들었는데 오히려 눈은 8시가 되기도 전에 떠졌다. 중간중간 여러 차례 깼다가 잤다가를 반복했기도 하고 애초에 우리 계획은 일찍 일어나 해가 떠있는 시간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거라서, 오히려 좋았다.


그래, 전날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벽에 붙어 존재감을 과시하는 바퀴벌레도 있었지만 왜인지 아침이 되자 조금 괜찮아졌다. 그래도 화장실에 들어갈 엄두는 감히 나지 않았다. 볼일을 보고 싶은 걸 꾹 참고 일층으로 내려가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도 싱크대에서 이를 닦았던지라 굳이 화장실 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A가 화장실을 써야 한다며 문을 열 때는 조금 식겁했지만 적어도 벌레가 사라졌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문도 꾹 닫고 잤는데 어디로 간 걸까 등줄기가 서늘했다.


아침해가 밝은 프놈펜 거리로 나오니 오전 9시였다. 삼 일째 감지 않은 머리에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썼는데도 우리는 관광객인 티가 분명하게 났다. 아마 가슴 앞으로 바로 멘 가방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딱히 뭘 하러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A를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날씨는 생각보다 선선했다. 캄보디아가 이전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만큼 프랑스식 건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생소하고 이국적인 광경에 감탄하며 거리를 걷는데 A가 길 건너 보이는 카페를 가리키며 아침을 먹자고 했다.


초록색 네온사인이 돋보이는 카페는 프랑스식 카페였다. 캄보디아에서의 첫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 주문하고 프렌치 토스트와 과일이 들어간 뮤즐리로 아침을 먹었다. 다 합쳐서 13달러. 엥, 생각보다 비싼데?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카페 이용객들의 대부분이 서양인들이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거리로 나온 우리는 제일 먼저 유심카드를 사러 가기로 했다. 툭툭 기사님들은 누가 봐도 관광객인 우리를 발견할 때마다 툭툭에 타라며 호객행위를 했다. 어찌어찌 길을 따라 쭉 걸었더니 메콩강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강과 메콩강이 합쳐지는 지점이지만, 신기했다.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 우리를 본 툭툭 기사님이 다가왔다. 여기서는 굳이 애써 툭툭을 부를 필요 없어 좋았다. 그냥 서 있으면 다가오시니 필요할 때 이용하면 된다. 엄마가 전날 보내준 심 카드 회사를 기사님께 보여드리곤 툭툭에 올라탔다.

내 이마 빼꼼

낮에 본 프놈펜은 더 예뻤다. 그렇게 덥지 않은 여름 날씨도 한몫했을 것이다. 투어를 하라고 권유하는 기사님이 영어를 엄청 잘해서인지 A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데에 더 애를 먹었다. 나는 기사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기사님이 툭툭을 세우곤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투어를 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여자친구가 싫다고 했다 그래!'라며 A의 등을 떠밀었다. 다시 심 카드 매장 안으로 들어온 A는 이때를 가리켜 자기 인생에서 몇 안 되는 곤경이었다고 말했다. 참내.


캄보디아 심 카드를 장착하니 제법 현지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왕 동남아에 왔으니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구글맵 리뷰가 좋은 근처 렌탈샵을 찾았다. 물론 자동차 면허도 없는 내가 운전할 건 아니고, 그래도 지난 코로나 시국에 심심하다며 오토바이 면허를 땄던 A가 운전을 할 거라 한 대만 빌렸다. 캄보디아는 도로에서 오토바이가 가장 빠르게 운전하고 그다음이 자동차, 그리고 트럭인 것 같다. 그래봤자 이런 도시에선 다들 오토바이로 시속 20-30km를 유지하는데 그래도 너무 무서웠다··· 운전하는 A가 더 무서워할까 봐 무서운 티는 내지 않았다.


우리 옆에선 많아봤자 열두 살은 됐을까 싶은 애가 오토바이를 타고 뒤엔 친구를 태운 채 운전하고 있었다.


이걸 다 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도 한시 즈음이었다. 호텔 근처의 지중해식 레스토랑을 찾은 우리는 캄보디아에서의 점심 메뉴로 피자와 치킨 샐러드를 먹었다. 사실 샐러드는 A가 먹고 싶대서 주문한 건데, 워낙 샐러드 같은 건 먹지 않는 애라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씹을 때마다 귀랑 편도가 아파서 그런 거였다.

A는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가져온 항생제랑 소염제를 먹고 있다.


일찍 일어나 피곤했던 우리는 그곳에서 한두 시간을 머물며 정말 휴가다운 시간을 보냈다.

선선하면서도 따듯한 초여름 날씨, 느긋한 사람들, 풀냄새, 햇빛까지- 너무 좋잖아. 전날만 해도 바선생 때문에 우는소리를 내며 지랄을 했지만 여기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자니 그냥 다 좋았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어제는 진짜 숙소를 옮기고 싶었는데, 괜찮은 것 같아.

-그래?

-응. 사실 바퀴벌레가 있는 숙소래도 내 눈에만 안 보이면 괜찮아.


저 말은 진짜 진심으로 한 말이다.

바선생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딱히 어디 있는지 찾아내고 싶지 않아 최대한 구석구석을 살피지 않으려 애썼다.


밥도 먹고 같은 식당에서 '크메르 커피'까지 아이스로 한잔한 우리는 프놈펜 중심에 있는 사원인 '왓프놈'에 가보기로 했다. 딱히 둘 다 사원에 관심은 없지만 그곳에 가면 원숭이를 볼 수 있다고 하길래 가보기로 한 거였다.


불교 사원인 만큼 그래도 현지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복장 규정을 찾아보았는데 딱히 정확히 안내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긴팔과 긴 바지를 입어야겠다고 생각해 옷을 갈아입었는데 벌써부터 발이 진짜 아픈 거다. 이게 많이 걸어서 아프다기보다는 땅이 뜨겁게 달궈져서 내 두 발에 불이 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발이 너무 뜨거웠다.


동남아에 다녀왔던 친구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슬리퍼를 가져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가져오지 않은 것을 어쩌겠니, 사야지.


역시 현지인들이 슬리퍼 아니면 맨발로 걸어 다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왓프놈에 가기 전에 호텔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시장에서 슬리퍼를 사기로 했다. 나름(?) 마음에 드는 게 있었는데 먼지 덮인 슬리퍼가 6달러라니. 관광객이라 바가지 씌우는 것 같아 절대 6달러에는 사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삼선 슬리퍼 사도 그거보단 싼데, 슬리퍼 한 켤레에 6달러요?


A가 고른 슬리퍼도 6달러라고 했는데 5달러에 사기로 했다. 나는 결국 내가 사려던 슬리퍼 가격을 6달러에서 더 깎지 못했지만 그럼 거기서 안 사면 그만이라 다른 곳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다른 가판대에서 샌들을 파는 곳을 발견했는데 나름 귀여운 슬리퍼가 2달러라고 해서 그걸 사기로 했다. 발바닥을 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되어 있다. 너 나랑 고향이 같구나..?


근데 2달러면 캄보디아 화폐로 8000리엘인데 10000리엘 지폐뿐이라 그걸 줬는데 잔돈을 주지 않았다....... 그냥 땡큐 하고 가져가 버리셨다..... 벙쪄있는 나한테 A가 우리 돈 도둑맞았네, 하고 덧붙였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슬리퍼도 신고 긴팔, 긴 바지를 장착하고 왓프놈에 갔지만 원숭이는 볼 수 없었다. 프놈펜에서 원숭이를 보려면 어딜 가야 할까 고민했지만 검색해 봐도 딱히 이렇다 할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곤 어딜 갈까 고민하다 프놈펜 야시장에 가 봤다. 옷도 팔고 음식도 팔고, 선글라스와 신발도 파는 곳이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에 간 거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A가 긴팔-긴 바지 콜라보에 너무 더워했기 때문에 코코넛 접시에 담긴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나눠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땀으로 범벅된 몸도 몸이었지만 흙먼지 자욱한 도로를 슬리퍼 신은 맨발로 돌아다닌 것이 찝찝해서 발을 씻으려고 샤워기를 트는데 A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지 마!


알고 보니 물이 내려가는 구멍에서 전날 밤 보았던 바선생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으아악


샤워기를 들고 있었던 나는 패닉 상태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는소리만 내고 있는데 A가 자기가 벌레를 잡을 테니 움직이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곤 휴지를 한 움큼 가지고 왔다. 샤워기를 A에게 재빨리 넘겨준 나는 화장실 문턱에서 징징거리며 섰다. 모기를 제외하곤 벌레도 생명이라며 죽이지 않는 앤데. 바선생을 잡아준 건 좀 감동이었다.


A 덕분에 이후론 안심하고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너무 덥고 습한 날, 하루 종일 돌아다녔기 때문에 피곤했던 우리는 저녁은 편의점에서 사 먹기로 했다. 캄보디아에서의 첫날 저녁은 그렇게- 신라면이 되었다. A는 심지어 서유럽식 캔음식(소세지랑 콩)을 데워 먹었다. 우리 뭐냐 진짜?

앙코르 병맥주도 두병을 샀지만 A는 피곤해서 먹지 않겠다기에 나만 한 병을 마셨다. 남은 맥주 한 병은 결국 둘 다 먹지 않아서 체크아웃 할 때 숙소에 두고 떠났다. 우리 이제 진짜 나이가 좀 들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에선 쓰지 않았던 여러 가지 영어 표현들도 더 알게 됐다. 예를 들면 haggle 같은 단어들.


저녁을 먹곤 물을 더 살 겸 산책을 다녀왔다. A가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을 둘러보며 말했다.


-This place grew on me.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단 하루 만에 이곳이 너무 좋아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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