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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Mar 01. 2022

우리의 교복이 된 옷들

캄보디아의 첫인상

프놈펜에서의 둘째 날 저녁, 해 질 녘 즈음 또다시 방문했던 프놈펜 야시장이 너무 좋았다.


전날엔 조금 이른 시간에 방문했어서인지 이제 막 개장한 시장 느낌이라 어수선했는데 해가 막 질 때쯤 가니 노을도 구경하고 훨씬 북적북적함이 느껴져서 더 신이 났다. 직전에 프놈펜 센트럴 마켓도 방문했었는데 규모가 훨씬 크고 구경거리도 더 많긴 했지만 야시장은 강가에 있어서 그런가 훨씬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다.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퇴근시간대라 좀 무서웠던 우리는 15분 정도를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웃긴 건 보도가 잘 되어있지 않은 나라라 도로를 걸어 다니는 거랑 딱히 다를 게 없어서 이것도 이 나름대로 좀 겁난다. 내가 워낙 길을 걸을 때 룰루랄라 별생각 없이 잘 살피지 않는 걸 A가 알기 때문에 얜 자기가 살피지 못한 사이에 내가 무언가에 치이기라도 할까 봐 훨씬 더 겁을 먹었더라.


어디로 걸어 다녀야 할지, 보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제일 익숙하지 못한 건 여기선 길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가끔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만날 때도 있었지만, 길을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아예 없거나 로컬들은 아무렇지 않게 건너 다니는 길을 우리는 건널 엄두조차 못 낸다는 것이다. 차들과 오토바이가 씽씽 달리고 있는 4차선 도로를 사람들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건너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저 감탄했다.


야시장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길을 건너야 하는데 건너지 못해 우리는 몇 분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건너는 걸 보고 이때다-하고 잽싸게 같이 건넜다.


원래 A는 야시장에서 짭 아스날 티셔츠를 사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가 찾은 아스날 티셔츠는 다 오래된 디자인뿐이었다. (그래도 어제 캄폿 야시장에서 A는 결국 아스날 티셔츠를 샀다) 뭔가 A에게 하와이안 셔츠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에 지나가다가 하와이안 셔츠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A의 진녹색 눈동자엔 와인색이랑 녹색 옷이 참 잘 어울린다. 나는 딱 보자마자 와인빛 바탕에 나뭇잎 무늬가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를 그애에게 골라줬다. 입는 옷에 따라 눈동자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게 아직도 진짜 신기하다. 개인적으론 네이비색 셔츠도 참 예뻤는데. 단돈 3.50달러로 지금까지 주구장창 잘 입을 걸 알았으면 한 장 더 살 걸 그랬다.


나는 왜인지 반바지를 한 장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위에 쪄 죽지 않기 위해선 시원한 옷이 필요했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반바지나 코끼리 바지를 사려고 시장을 더 둘러보는데 길게 내려오는 원피스들이 눈에 띄었다. 센트럴 마켓에서도 보았던 디자인들로, 캄보디아 어디서나 흔히 살 수 있는 형형색색의 나풀나풀한 디자인의 원피스들이었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그러다 진한 핑크색 원피스에 확 꽂히고 말았다. 색부터 디자인까지 너무 예쁘잖아! 아냐, 뭐랄까, 그냥 끌렸다.


왜인지 다른 옷들보단 좀 비싸 보여서 약간 쭈뼛거리며 얼마냐고 여쭤보니 7달러라고 하셨다. 와, 진짜 생각보다 비쌌다. 딱히 옷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금을 얼마 들고 나오지 않아 우리에게 있는 현금이라곤 6달러가 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흥정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 처지였던 것이다.


나는 정말 그 옷이 가지고 싶었나 보다. 내가 가진 돈을 다 꺼내 보이며 현금은 이것뿐이라고 말하자 주인아주머니는 호호 웃으며 다섯 손가락을 내어 보이셨다.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파이브 달러.


속으로 나이스를 외치며 나는 5달러에 내 애착 원피스를 갖게 되었다.


이때는 몰랐지... 이 옷이 얼마나 편하고 시원한지를. 글을 쓰는 지금도 입고 있는 이 원피스를 나는 지금껏 매 도시마다 최소 한 번씩은 입었다. 길이도 나한테 딱이야.

야시장 갔다가 저녁 먹으러 간 레스토랑에서 바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A와 나는 프놈펜을 떠나 캡Kaeb(혹은 Keb)으로 향하기 전날 밤, 이 여행에서 우리의 교복이 될 옷들을 만났다.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드는 이 옷들이 이번 여행과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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