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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Mar 31. 2022

입국 6일 차, 두 번째 병원행

우리가 사랑한 도시, 캄폿

캄폿에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우리는 가장 먼저 약국에 들렀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묵게 된 곳도 너무 마음에 들고 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캡에 비해 캄폿은 확실히 더 번화한 곳이라 신났지만 이때까지도 알레르기와 피부에 대한 걱정이 너무나도 컸다.


붉은 기는 전날보다 덜해진 것도 같았으나 터트릴 수도 없을 만큼 올라온 자잘한 수포들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더라. 손으로 짜버리기엔 너무 많아서 A나 엄마의 말처럼 흉터가 생길까 봐 건들 엄두가 안 났다. 거울을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짜지 않으면 이것들이 없어지기나 할까?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혹시 스테로이드가 아주 소량 첨가된 크림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가장 가까운 약국에 들렀다. 캡에서 방문했던 드럭스토어와 달리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캄보디아 약국으로 돈만 있다면 약국에 있는 무슨 약이든 의사의 처방 없이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챙겨 온 항생제와 소염제도 A가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항생제도 함께 사기로 했다.


낡은 약국의 카운터 너머로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우리가 찾고 있는 제품을 물어 물어 건네받았다. 그중 어떤 제품을 사야 할지 모르겠어서 엄마에게 급히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스테로이드가 들어있다던 크림들

약을 손에 쥔 채 짧게 엄마와 보이스톡을 하는데 약국 앞에 작은 날벌레들이 뭐 그리 많이 날아다니던지, 반바지를 입고 있던 A의 다리에 벌레가 자꾸 달라붙자 A는 빨리 계산하고 여기서 벗어나자고 나를 보챘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너무 강하면 얼굴 혈관을 확장시켜 피부를 더 붉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스테로이드 크림은 사지 않기로 했다. 스테로이드가 아주 극소량만 첨가된 크림을 원했었기에 결국 약국 할머님께서 건네주신 크림 중 엄마가 여드름 용이라고 설명한 연고와 항생제만 구매했다.

우리가 산 것: 항생제와 여드름 연고

한국에서는 그래도 꽤 비싸게 팔리는 연고라는데 여기선 5달러였다. 그래도 이것조차 꽤 자극이 강해서 밤에만 아주 사알짝 발라야 한다고.


너무 배가 고팠던 우리는 서둘러 계산을 끝내고 대충 지도를 확인하며 레스토랑들이 몰려 있는 거리로 향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기엔 예민해질 정도로 배가 고팠기에 꽤 괜찮아 보이는 인도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커리를 비롯해 인도 음식은 영국 사람인 A가 훨씬 잘 알기에 A에게 나 대신 주문을 부탁했다.

 

내가 계속 피부에만 신경 쓰고 있으니 A도 답답했나 보다. 계속 울상인 내게 A가 말했다.


-솔직히 그렇게 신경 쓰면 스트레스만 더 받을 것 같아. 그냥 좀 지켜보면 안 돼?

-이게 너였으면 그렇게 가볍게 넘기긴 힘들걸! 왜 하필 얼굴인 건데, 나도 진짜 속상하단 말이야.


나도 한껏 예민해져 있었기에 짜증 섞인 목소리가 절로 나와 버렸다. 솔직히 나도 그만 신경 쓰고 싶은데, 낫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나아지고 있는 게 느껴지기라도 한다면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내버려 둘 텐데. 그 와중에 음식은 또 진짜 맛있더라. (우린 비싼 가격에도 여길 몇 번이고 또 방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A가 말했다. 병원에 다시 가보자고.

내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치만 어제 병원 갔는데도 아무것도 안 해줬잖아.


그래도 여긴 캡 보다는 규모가 큰 도시이니 일단 가보자 길래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했다. 어쩌다보니 캄보디아에 온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틀 연속 병원에 가게 됐다. 토요일이었지만 24시간 문을 여는 병원이 있어 일단 방문해보기로 했다.

방문했던 병원. 캄폿에서 그래도 가장 갈 만한 병원인 것 같다

여긴 그래도 접수처도 있고 직원도 있더라.

독일에서처럼 진료 접수가 복잡하고 오래 걸릴까 봐 걱정했는데 영문 이름과 나이 정도만 종이에 써서 직원에게 건네주고 의자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진료실로 들어갔고 마스크를 벗고 의사 선생님께 얼굴을 보여드렸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시작되었는지 말씀드리면서 도대체 왜 이런 증상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해산물을 먹었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셨다. 그때 딱 깨달았다. 아, 이거 진짜 알레르기구나.


엄마를 포함해 내가 이틀간 만난 두 의사분들까지 알레르기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전문가들이 알레르기라면 알레르기인 거지.


혹시 정체불명의 피부병일까 걱정한 적도 있기에 내심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A가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캄보디아에 온 후로 해산물은 입에 댄 적도 없었고 이 알레르기의 범인은 항말라리아 약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약도 처방해줬다. 솔직히 물가를 따지면 약값 포함해 20달러라는 병원비가 꽤 비싼 편이었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야 걱정과 스트레스를 접어둘 수 있겠더라. 강경하게 병원에 가자던 남자친구에게 고마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고작 삼일 간 지독히 심했던 알레르기였지만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우리는 그 길로 바로 보코산(Bokor mountain)으로 향했다. 정글 그 자체였던 보코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 다음에 이어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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