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켠서 Jul 02. 2022

여기, 진짜 지상낙원 맞아?

기이한 해안도시, 시아누크빌

우리가 시아누크빌에 예약한 숙소는 오트레스 해변(Otres Beach) 앞이었다. 특히 길게 펼쳐진 해변의 끝자락에 위치해 시내에서 꽤 떨어진 한적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캄폿에서는 도시 중심부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번엔 조용한 곳에서 여유를 즐기자고 내린 결정이었다.


숙소의 전체적인 첫인상은 좋았다.

바로 앞에 해변이 있고 숙소로 들어서면 입구 바로 앞에 리셉션 역할을 하는 바가 있다. 그 앞으로는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쭉 놓여 있었다. 아마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해변을 방문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레스토랑으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식사 공간 옆으로는 수심이 꽤나 얕아 키즈풀처럼 보이는 풀장이 보였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푸는데 A가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만 섞인 소리를 냈다. 너무 의외의 반응이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왜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 방이 별로야?


캄폿에서 묵었던 호텔이 너무 좋았던지라 그곳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었지만 프놈펜이나 캡에서 머물렀던 숙소에 비하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워낙 이런 거에 있어 불만이 없는 남자친구인지라 A가 이 숙소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게 사실 좀 신기했다.


-그냥...... 뭐랄까. 뭔가 좀 이상해.

내 물음에 대답한 A가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여기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이 숙소는 대부분의 방이 독채였는데 우리가 묵게 된 곳은 한쪽 벽면 자체가 유리로 된 창문이자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라서 프라이버시를 위해 계속 커튼을 쳐 두어야 하는 게 불편했다. 방에 달린 조명이 너무 노랗고 어두워서 커튼을 치면 어두컴컴하고 커튼을 치지 않자니 방이 너무 훤히 보이는 것이 난감하기는 했다.


그리고 샤워실과 세면대는 방에 딸린 문을 열고 나가면 있었는데 그쪽 공간은 따로 천장이 없는 노천 구조였다. 물론 벽이 높게 세워져 있고 그 벽 밖으로는 높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하필 우리 옆 독채에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람에 자꾸 사다리를 탄 인부들이 가까운 벽을 올랐다 내렸다 하는 거다.


물론 그런 걸 잘 피해 씻었기 때문에 불쾌할 만한 일은 없었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화장실은 또 거기에 있는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도 화장실만큼은 노천 구조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캡에서 묵었던 오두막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공용이라 모두 밖에 있었다. 그래서 숙소의 조명이 다 꺼진 야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가야 했는데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혼자 갈 용기는 없지만 화장실이 급했던 나는 A에게 제발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온갖 풀벌레와 알 수 없는 생물들의 소리를 들으며 A의 옆에 바싹 붙어서 공용화장실에 갔는데 막상 그 앞을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떼를 보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평소에 이런 걸로 예민하게 굴지 않는 남자친구가 이렇게까지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숙소로 옮겨도 상관없었지만 이미 우리가 체크인을 했기 때문에 환불이 가능한지 숙소 측에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2박을 예약했으니 전부 환불은 못 받더라도 혹시 하루만이라도 환불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숙소 예약을 진행한 앱에 문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결제도 앱을 통해 완료했기 때문에 잘하면 환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환불 서비스 자체가 없다는 거다. 아니면 고객센터를 통해 문의해야 하는데 고객센터는 우리의 메시지에 답장을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A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숙소에서 이틀 밤을 묵어야 했다. 시아누크빌이 그렇게 좋다고 하길래 기대를 많이 했건만, 뭔가 처음부터 꼬이는 것 같아 어딘가 불길했다.  


그래도 일단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몰골부터 씻고 스피드 미터를 고치러 가기로 했다. 혹시 주변에 오토바이를 고칠만한 정비소가 있는지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는데 직원들이 영어를 정말 못해서 의사소통이 아주 어려웠다. 결국 직원들이 아는 정보가 없어서 구글 지도에 정비소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내가 아닌 이 주변에는 정비소가 하나뿐인 듯했다.


하지만 5분 거리라는 정비소로 운전해 갔는데 이게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는 거다. 분명 지도에는 여기라고 나와 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정비소를 찾으려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우리는 갑자기 뭔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여기, 휴양지 아니었나? 뭔가 동네 전체가 텅 빈 느낌이었다. 지도가 위치를 착각했나 싶어 주변 골목을 빙빙 돌아보는데 그 주변 전체가 기운이 싸한 뒷골목이라 꺼림칙해진 우리는 정비소 찾기를 포기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A가 뒤에 타고 있던 나에게 말했다.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 그냥 이 동네가 너무 한적한 걸까?


아까 막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바로 앞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해변에만 관심을 기울이느라 동네 전체 분위기가 어떤지 파악할 겨를이 없었는데 확실히 오토바이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니 뭔가 이상했다. 팬데믹 때문에 관광객이 없다기에는 캄폿이랑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동네가 휑했다. 한적하고 조용했지만 을씨년스러웠다. 사람이 많지 않아도 평화롭고 따듯한 분위기를 주던 캡과는 느낌이 달랐다.


-응, 조금 이상해...... 시내랑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던 내가 대답했다.


결국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고칠 곳을 찾지 못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시아누크빌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시내에 있는 다른 오토바이 정비소가 5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빠르게 방문해야 했다.


숙소에서 도심까지는 약 20분 정도. 4번 국도를 다시 탈 필요가 없어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걸, 도로가 정말 밀렸다.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혼잡해졌다. 포장마차 트럭이며 자동차, 덤프트럭, 어린 학생들이 운전하는 오토바이까지- 프놈펜만큼 혼돈 그 자체라 운전 중인 A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뒤에 타고 있는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도로가 밀리다 보니 안전거리가 지켜지지 않아 무서웠고 오토바이를 고치러 가다가 사고를 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청난 양의 오토바이들, 역주행 중인 툭툭들과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피해 어찌어찌 정비소에 도착했다. 스피드 미터가 작동하지 않고 눈금이 0만 가리키고 있다는 A의 말에 정비소 아저씨는 선만 교체하면 된다며 잠깐 기다리면 끝날 작업이라고 말해주셨다.


혹시 수리비용이 엄청 비싸거나 오토바이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수리비용은 교체할 새 케이블을 포함해 10달러였다. 앉아서 기다리라며 의자도 가져다주셨다.

막상 시내에 나오니 사람이 정말 많은 게, 아까 그 동네에서 느낀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우리의 착각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숙소 주변이 이상한 곳이거나.


나는 기왕 시내에 나온 김에 카페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A에게 물었지만 A는 혼잡한 도로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며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 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하긴 낮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했으니 이런 도로 위에 최대한 있고 싶지 않은 게 정상일 거다.


A는 시아누크빌 도심의 교통체증을 겪고 나서 계속 이쪽에 숙소를 잡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했다. 캄폿에서 시아누크빌까지의 거친 길을 운전한 후 바로 이렇게 혼돈 그 자체인 도심에서 또 운전을 해야 했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며 말이다. 운전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 날따라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오토바이를 고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데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숙소 앞 해변에 위치한 카페였다. 이날이 '카페 아마존'에 처음 방문해 본 날이었다. 물론 캄보디아에도 스타벅스가 있기는 하지만 태국 브랜드인 카페 아마존이 훨씬 더 흔하다! 이때는 그냥 숙소 근처에 있는 예쁜 카페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캄보디아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카페 프랜차이즈라고 한다.


이렇게 모던한 디자인의 신식 카페에 가면 곧잘 오토바이를 주차해주시는 경비아저씨가 있다. 발레파킹 하듯이 차키까지 넘기지는 않고,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가면 직접 끌어서 줄 세우고 오토바이들이 도난당하지 않게 지키는 일을 하신다. 여기도 경비아저씨가 계셨는데 우리가 주차를 하려고 하자 그냥 세워두고 가라며 손짓하셨다.

커피는 하루치 분량을 다 마셨기에 각자 딸기와 키위 스무디를 주문했다. A가 너무 목이 마르다해서 물도 한 병 샀다. 해변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늘어지는 해와 파도를 감상했다.


서서히 기우는 해에 나른하게 반짝이는 금빛 파도들이 넘실넘실 춤을 춘다. 파도소리가 끊이지 않고 밀려왔다 사라진다. 와, 예쁘다. 아름답다. 이런 말들은 풍경에 비하면 너무 평범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 동네에서 느껴지는 기묘함을 떨칠 수 없었다.


아까 전 시내에서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데 이상한 걸 봤다.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빌딩들이 반쯤 지어진 채로 텅 비어있었다. 터무니없이 높게 지어진 번쩍번쩍한 건물들이 완공이 안 되어 휑하니 방치된 모습이었다. 공사가 중단된 채 시멘트로 뼈대만 지어진 빌딩 일층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지 빨래가 걸려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넘기기에는 다른 도시들과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캄보디아의 다른 도시에서 느껴지던 평화가 이곳에는 없었다. 대신 묘한 긴장감이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기대했던 분위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우리는 그래도 아직 도시를 제대로 본 적 없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내일은 꼭 아침부터 시내에 나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악명 높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