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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보라니까 Nov 08. 2023

#1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곰출판

이 책에는 교묘하고 치밀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좋은 의미 그리고 나쁜 의미로.


표지를 보면 반하게 된다. 낡은 느낌의 레트로 색감에 반하고, 해저 동굴로 헤엄쳐가는 인어와 물고기에, 그리고 책의 앞면과 뒷면에 걸쳐 그려진 주변 바닷속 풍경에도 반한다. 예쁘게 잘 만들었다. 감상적이고 섬세하다.


룰루 밀러의 치밀하고 교묘한 글에도 반하게 된다. 이런 글은 쓰기 시작하기도 전에 작가의 머릿속에는 이미 거의 모든 플롯과 디테일이 그려져있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교묘하고 치밀하다. 과학기자로 이론과 팩트를 다루는 일과 이야기를 만들고 끌어나가는 능력은 다른 범주일 것 같은데 저자는 모든 영역에서 출중한 것 같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뛰어난 재주로 결국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교묘하고 치밀'함의 다른 면이 보인다.


과학의 언저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룰루밀러는 데이빗을 조롱하고 파괴할 때 과학은 시대를 초월한 절대진리가 아니라는 과학계의 상식을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었을까?


과거, 천동설은 빛나는 과학이었고 당시의 관측도구로 증명될 수 없었던 지동설은 배격되는 것이 마땅히 옳은 일이었음을 모를 리 없는 룰루밀러는 자신이 하는 일이 지동설을 주장한 조르다노 브루노를 화형에 처한 자들이 했던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도 대체 무슨 용기로 이 책을 출간하고 책 팔아서 번 돈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교묘하고 치밀한 설계로 데이빗을 무너뜨림으로써 룰루밀러는 무엇을 얻었나?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정의롭게 사용한 것인가?


이제서야 예쁜 표지라고 생각했던 그 표지에서 아무 맥락 없이 그려진 인어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 판단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냥 예쁘게 그린 그림일 뿐, 책의 내용을 요약하지도 의도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유해하기도 하다.

책도 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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