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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Jan 14. 2024

이모! 밥은 먹었어?

집에 혼자 있기 연습을 시작한 대추는 태블릿으로 보이스톡을 거는 법을 익혔다. 엄마가 카페 알바를 간 사이 텅 빈 집이 무서우면 누르라고, 언니는 대추에게 가르쳐줬다. 아이들은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무척 즐거운가 보다.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고 집에 혼자 있기를 한 첫날부터 대추는 내게 보이스톡을 걸어 쫑알쫑알 떠들기 시작했다.


그날 대추는 일하는 내게 대뜸 보이스톡을 걸더니 "이모! 뭐 해?"하 명랑하게 물었다. 자기 손으로 직접 보이스톡을 건 게 신나는 눈치였다.


"이모? 일하는 중이지!"

"이모 밥은 먹었어?"

"응 먹었지!"

"뭐랑 먹었어?"

"ㅎㅎ그건 왜?"

"이모 뭐 먹었는지 궁금해서!"


아이들이 순수한 건 솔직하기 때문이다. 대추는 누구에게도 인사치레의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대추에게 "이모 보고 싶어?" 물어보면 대답은 둘 중 하나다. "보고 싶어!" : 얼굴을 까먹을 때쯤이라 보고 싶을 법할 때. "..." : 전혀 보고 싶지 않을 때. 그럴 땐 아예 대답을 않고 딴청 핀다. 내가 그리워하는 만큼 날 그리워할 리 없는 아이, 대답의 열에 아홉은 후자다. 아아,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침묵으로서 한결 부드러워진 솔직함조차 서운할 때도 있지만 내가 뭘 먹었는지 궁금하다는 것 또한 100% 진심임을 안다. 그렇기에 토라지는 마음쯤 얼마든 무색해진다. 밥은 먹었냐는 한국식 안부인사가 이렇게 다정했던가 새삼 살피고 깨닫게 된다. 그것이 아이의 힘이다. 앳된 목소리, 빠진 이 사이로 숭숭 새는 발음, 수화기 너머 그려지는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 꾸며내지 않아 단순한, 그러기에 진실에 가까운 말들, 그 모든 것이 갖는 힘. 달리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로 사랑.


아이가 커가며 부모가 아닌 이모의 사랑이란 어때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고집이 세지고 원하는 게 많아지는 아이를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조금 엄격해지자는 다짐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혼자 있기 둘째 날, 대추는 내게 보이스톡을 걸어 "이모 나 혼자 못 있겠는데..."라고 했다. 누군가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고 가 무섭다는 거였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난 바로 차를 몰아서 대추에게 달려갔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마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이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언니는 대추가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눈물 자국이 묻은 조그만 얼굴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세상은 자주 힘들게 것이고 사랑보다 많은 미움을 받는 또한 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엄격해지않아도 그런 일들은 반드시. 그렇다면 난 최대한으로 팔을 벌려 아이를 안아줘도 되지 않을까. 너를 아까워하고 아껴 마지않는 사람 또한 곁에 있다는 걸 알게 해야 하지 않을까. 훗날 세상과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 대추를 일어서게 하는 수많은 기억 중 스치듯 내가 있다면. 말 없는 당신 대답이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유희경 시인에게서 가져왔다. <내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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