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밥은 먹었어?

by 한시

집에 혼자 있기 연습을 시작한 대추는 태블릿으로 보이스톡을 거는 법을 익혔다. 엄마가 카페 알바를 간 사이 텅 빈 집이 무서우면 누르라고, 언니는 대추에게 가르쳐줬다. 아이들은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무척 즐거운가 보다.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고 집에 혼자 있기를 한 첫날부터 대추는 내게 보이스톡을 걸어 쫑알쫑알 떠들기 시작했다.


그날 대추는 일하는 내게 대뜸 보이스톡을 걸더니 "이모! 뭐 해?"하며 명랑하게 물었다. 자기 손으로 직접 보이스톡을 건 게 신나는 눈치였다.


"이모? 일하는 중이지!"

"이모 밥은 먹었어?"

"응 먹었지!"

"뭐랑 먹었어?"

"ㅎㅎ그건 왜?"

"이모 뭐 먹었는지 궁금해서!"


아이들이 순수한 건 솔직하기 때문이다. 대추는 누구에게도 인사치레의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대추에게 "이모 보고 싶어?" 물어보면 대답은 둘 중 하나다. "보고 싶어!" : 얼굴을 까먹을 때쯤이라 보고 싶을 법할 때. "..." : 전혀 보고 싶지 않을 때. 그럴 땐 아예 대답을 않고 딴청 핀다. 내가 그리워하는 만큼 날 그리워할 리 없는 아이, 대답의 열에 아홉은 후자다. 아아,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침묵으로서 한결 부드러워진 솔직함조차 서운할 때도 있지만 내가 뭘 먹었는지 궁금하다는 것 또한 100% 진심임을 안다. 그렇기에 토라지는 마음쯤 얼마든 무색해진다. 밥은 먹었냐는 한국식 안부인사가 이렇게 다정했던가 새삼 살피고 깨닫게 된다. 그것이 아이의 힘이다. 앳된 목소리, 빠진 이 사이로 숭숭 새는 발음, 수화기 너머 그려지는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 꾸며내지 않아 단순한, 그러기에 진실에 가까운 말들, 그 모든 것이 갖는 힘. 달리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로 사랑.


아이가 커가며 부모가 아닌 이모의 사랑이란 어때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고집이 세지고 원하는 게 많아지는 아이를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조금 엄격해지자는 다짐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혼자 있기 둘째 날, 대추는 내게 보이스톡을 걸어 "이모 나 혼자 못 있겠는데..."라고 했다. 누군가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고 가 무섭다는 거였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난 바로 차를 몰아서 대추에게 달려갔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마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이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언니는 대추가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눈물 자국이 묻은 조그만 얼굴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세상은 자주 너를 힘들게 할 것이고 사랑보다 많은 미움을 받는 날 또한 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엄격해지지 않아도 그런 일들은 반드시. 그렇다면 난 최대한으로 팔을 벌려 아이를 안아줘도 되지 않을까. 너를 아까워하고 아껴 마지않는 사람 또한 곁에 있다는 걸 알게 해야 하지 않을까. 훗날 세상과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 대추를 일어서게 하는 수많은 기억 중 스치듯 내가 있다면. 말 없는 당신의 대답이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유희경 시인에게서 가져왔다. <내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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