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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Sep 05. 2022

엄살

저녁 공기가 선선해지기 무섭게 목이 붓기 시작했다. 환절기 몸살은 해를 거르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퇴근 후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도 편도염이겠지. 작년에도 편도염을 한 달이나 앓았으니까. 그때 의사 선생님이 차라리 편도 떼어내자고 했는데 이렇게 매년 아플 거라면 말 들을걸. 병원 의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편도를 떼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목이 부은 이유는 연례행사 같은 편도염이 아니고 감기도 아니고 코로나였다. 2년 반동안이나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듯 팬데믹을 비껴왔으니 끝까지 안 걸릴 거라 자신했는데. 빈약한 믿음 앞에 내밀어진 보랏빛 두 줄은 어쩔 도리 없이 선명했다. 당황한 나를 앞에 두고 간호사 선생님은 코로나 환자로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빠르게 설명해줬다. 아주 능숙하고 정확한 태도였다. 아마도 나는 오늘 하루 그녀를 스쳐간 수십 명의 코로나 환자 중 한 명일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고 아주 조금 섭섭도 했다.


병원을 나서기 전 간호사 선생님은 보건소에서 문자가 갈 테니 조사서를 꼭 써내라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코로나 환자들을 집계하고 관리하기 위한 조사일 것이었다. 나라가 공인한 환자가 됐다는 사실에 약간은 비장해져 약봉지를 안고 집으로 가는 동안 호들갑스럽게 주변에 연락을 돌렸다. 회사에 확진 사실을 알리고 일주일간의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서였다. 격리 기간 먹을 레토르트 죽과 각종 국들, 그리고 한 박스의 자두도 주문했다. 한바탕 아프기 위한 준비를 척척 해내다니 정말로 어른이 돼버린 것 같았다.


약간의 인후통과 몸살 기운에도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할 만큼 살만했다. 하지만 사흘째부터는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물 마시는 것조차 힘들 만큼 목이 부어올랐다. 억지로 죽을 떴지만 끼니마다 두 숟갈 남짓이 전부였다. 깨어 있는 게 괴로워서 틈만 나면 계속 잠을 잤다. 한 번은 겨울 이불을 덮고 자다가 땀에 젖어 깨서는 "아프다"라고 혼잣말을 하는데 퉁퉁 부은 목에 그 세 마디가 걸려 나오질 않았다. 그때 갑자기 내가 엄청 불쌍한 애가 된 것 같았다. 아프다, 아파 죽겠다, 동네방네 엄살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하루에도 코로나 환자가 수만 명씩 나오고 있는 마당이었다. 겨울 휴가 사수를 위해 딱 하루만 쉬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기로 해 더더욱 아픈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서인 것 같다. 격리 해제 직전까지 증상이 오래간 것도, 격리가 끝나고 나서도 후유증이 남아 내내 피곤한 것도, 다 코로나를 앓는 동안 마음껏 엄살을 못 부린 탓인 게 분명하다. 아플 때는 증상을 세 배쯤 과장해서 말하고, 관심과 애정을 듬뿍 담아 걱정해주는 말들을 듣고, 톤을 높인 다정한 목소리에 마음이 늘어져 실제보다 더 아픈 기분에 사로 잡혀야지만 잘 앓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질 못한 게 아쉬워 차마 다 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쓸데없이 의젓해져서는 필요한 게 없냐는 물음에 먹을 걸 잔뜩 사놔서 괜찮다고 했다. 안부를 묻는 연락에도 많이 안 아프다고만 했다. 그러질 말았어야 했는데. 기꺼이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따뜻한 말들에 마음껏 기댔어야 했는데.


다음 환절기에는 이불을 목 끝까지 뒤집어쓰고 끙끙 앓다가 침대에 그대로 앉아 누군가 쟁반째 대접해주는 죽을 먹어야지. 몇 숟갈 먹다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어르고 달래는 투로 "조금만 더 먹어, 약 먹어야지"라고 하는 걸 들어야지. 겨우겨우 약을 삼키고 누워서 이불을 덮어달라고 해야지. 땀을 한바탕 흘리고 깨서는 과일이 먹고 싶다고 말해야지. 서투르게 깎아준 배나 복숭아 같은 걸 먹으면서 땀을 닦아주는 손에 목덜미를 맡겨야지. 마른기침이 남은 코로나 격리 끝에 이런 다짐을 해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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