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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May 08. 2023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글 쓰면서 가장 괴로운 질문은 '쏘왓, 그래서 그게 어쨌는데'다. 일기장이 아닌 이상 <합주를 했다. 쏘왓? 재밌었다!>라고 쓸 수는 없으므로 쓰고 싶은 게 있어도 이게 어쨌다는 건지 한참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갈고닦은 소재는 없는데 마감이 급한 날이다. 그런 날에는 길어 올릴 의미라는 걸 찾아 일상을 샅샅이 뒤지게 된다. 스마트폰을 보다 잔 늦잠은 알고리즘이라는 기술 진보의 어두운 단면이 되고, 오늘 입은 옷은 코르셋과 탈코르셋의 정반합 어딘가에 놓이게 되고, 최근 한 이별은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과 연결된 무엇이 되고... 어거지로 끼워 맞춘 신파 같은 뭔가가 될지언정 쏘왓이 빠진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


지난달에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특별한 이벤트였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야 말할 것도 없다. 산해진미와 술, 유흥만으로 가득한 우리의 여정엔 의미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무의미의 축제였고 농담의 대잔치였다.


그날 우리는 서해바다에서 모였다. 목적지부터 별뜻이 없었다. 서울에 경기에 충북에 흩어져있던 친구들이 적당한 중간지점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그게 서해바다였다. 어떤 계산법에 따라 모두에게 먼 서해를 고르게 된 건지는 아무도 기억을 못 했다. 딱히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노을이 아름답다는 그 바다에 모여 우리가 한 거라곤 대충 검색해 알아낸 게장 맛집에 가서 밥을 먹고, 근처 시장에서 회와 닭강정과 술을 사고, 인생네컷을 찍고, 숙소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새벽까지 보드게임을 한 것뿐이었다. 심지어는 다음날 바다에 가서도 돗자리를 펴고 앉아 주구장창 보드게임을 했다. 뜻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깊어져있는데 그 틈에서 우리는 철없는 애들처럼 해변이 떠나가라 웃고 떠들면서 게임을 했다. 


얘네를 만나면 난 좀 유치해진다. 아주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사람이 된다. 맛있게 먹고 마시고 승부욕만으로 불타 게임하고 오직 웃기 위해 말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도 진지하고 무겁고 깊은 것은 잘 없다. 친구들과 놀았다. 쏘왓? 즐거웠다! 가 전부다. 일기장에 쓰기도 민망한 일직선의 감정들. 하지만 이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래서 글로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여정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1박 2일의 시간 내내 단순한 놀이와 뜻 없는 수다, 불순물이 끼지 않은 우정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도시의 시간은 복잡하게 흐르고 거기서 우리는 거미줄처럼 얽혀 지나치게 많은 감정과 정보를 받아들인다. 분명히 내게는 이토록 덧없고 무의미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 이것도 내가 쏘왓 뒤에 조잡하게 이어 붙인 의미이려나? 더 이상 아무 설명도 필요 없다. 많이 웃었고 즐거웠고 행복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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