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Jun 05. 2023

놀이터 품앗이

5월 휴가 동안 고향에서 지내며 하원하는 조카를 마중하는 귀중한 시간을 보냈다. 내 부모는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들어오는 맞벌이였고 늘 휴가 없이 바쁘게 일했으므로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반겨주는 분위기라는 걸 난 잘 알지 못하고 컸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분명 좋은 거겠지. 날 발견하자마자 친구들과 떠들다 말고 달려와 안기는 아이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누군가 늘 너를 반기고, 늘 너를 걱정하며, 늘 너를 아끼는 이런 일들이 너에게는 얼마쯤 익숙한 일이기를.


5월의 화요일이었다. 햇볕에 바짝 말려진 듯한 산뜻한 바람이 불고 커다란 뭉게구름이 파란 하늘을 유유히 가르는 오후 4시. 난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어쩐지 하루가 저물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대추는 아닌 모양이었다. 한낮의 활기를 띤 대추는 "이모 근데 우리 놀이터 가서 놀다가 가자"라며 내 손을 놀이터 방향으로 끌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든 언니와 나는 모두 지친 기색을 하고 있었지만 대추가 원하는 이상 우리에겐 별도리가 없었다.


놀이터에는 대추보다 먼저 이곳에 달려 나온 어린이들이 웃고 떠드는 명랑한 소리가 가득했다. 그건 우리에게 다행인 일이었는데, 같이 놀 사람이 없는 대추가 우리에게 좀비라던지 기타 다른 술래 역할을 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기 때문이다. 언니와 난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런 광경을 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울에선 놀이터 근처에 가본 적이 없고 게다가 아이들이 하원하는 시간은 한창 일하고 있을 때니까. 재잘거리는 앳된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활기 역시 너무나 낯설었다. 왜 아이들은 죄다 여름에 태어난 것만 같을까. 아이들이 뛰어노는 채도 높은 풍경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그 아이는 좀 늦게 도착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곧 넘어질 듯이 걷는 토끼 같은 아이. 놀이터에서 걸음을 멈춘 그 애는 궁금한 눈으로 언니 오빠들과 커다란 미끄럼틀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였지만 표정은 분명 끼고 싶은 눈치였다. 집으로 가자고 해도 꿈쩍도 않는 손녀딸 옆에서 그 애의 할머니가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원길에 놀다가 가자고 하는 법 없이 집으로 곧장 가는 아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아이의 성격 때문이라기보다 그저 놀이터의 세계를 몰랐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난 생각했다. 일곱 살 언니 대추가 뛰어다니는 놀이터의 세계를 알기에 기저귀 무게 때문에 한참 주저앉은 바지를 입은 그 아이는 너무 작았으니까.


한참 작은 아이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며 탐색전을 펼치던 어린이들은 이내 하나둘 그 옆에 모이기 시작했다. 쭈뼛거리고 있는 아이를 끼워주려는 모양이었다. 그중에서도 대추가 먼저 나섰다. "언니 손 꼭 잡아"라면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이끌더니 함께 계단을 오르고 흔들다리를 건너고 미끄럼틀을 타는 거였다. 나는 아직 일곱 살밖에 안 된 대추가 아이를 서툴게 이끌까 봐, 그러다가 아이가 넘어지거나 다칠까 봐 조마조마해 대추의 뒤를 지켰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끄럼틀을 무서워하는 듯했던 아이 점점 더 용감하게 언니 대추의 뒤를 따랐고 점점 더 크게 웃었다. 생에 처음 겪는 놀이터가 맘에 든 모양이었다. 대추이 아이의 문 하나를 열어준 셈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친구 없이 나간 놀이터엔 항상 거길 지키고 있는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자기보다 어린애랑 노는 거 성가셨을 텐데 그 언니 오빠들은 잡기놀이에도 날 끼워주고 뺑뺑이도 태워주고 다 놀고서는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마을에는 어른만 있는 게 아니라 어른들보다 서로를 더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린이들도 있는 거였다.


내가 서울에 돌아온 뒤 어느 날 놀이터에서 놀던 대추는 곁을 지키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혼자 집에 가는 연습해 볼 거야. 엄마 먼저 집에 들어가!" 그때 놀이터에는 혼자 나와 놀고 혼자 귀가하는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고 한다. 어깨너머로 그 어린이들을 보고는 조금 더 늠름해지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어른들이 없는 곳에서 어린이들만의 놀이를 마음껏 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대추를 두고 집에 간 언니가 창밖으로 살펴보니 대추는 며칠 전 자기가 챙겨준 아이처럼 언니 오빠들과 함께 놀다 돌아왔다고 한다. 마을의 관심과 돌봄 속에서 대추가 자라고 있다. 새로운 친구의 뒤를 따르고 새로운 친구의 손을 잡아끌기도 하며 나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가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도 전혀 쓸쓸하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우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