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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May 11. 2020

짜장면은 우리 음식일까?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짜장, 짜장면은 한식이다. 짜장면은 중국 ‘자장미엔(炸醬麵, 작장면, zhájiàngmiàn)’에서 출발했다. 그러니 중국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다. 맞다. 중국 ‘자장미엔’ 짜장면이 바로 우리 짜장면의 시작이다. 


중국을 비롯하여, 화교가 있는 곳에서는 짜장면을 팔고, 먹는다. 현지 외국인들도 화교 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 한국과는 다른 짜장면이다. 지금도 중국에서 내놓고 있는 ‘원형 짜장면’과 흡사하다. 

전세계 어디에도 계란 후라이를 얹은 짜장면, 짬뽕국물을 함께 내놓는 짜장면은 없다. 우리나라만의 음식문화이다. 

원형 짜장면은, 한반도의 짜장면과 다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짜장면을 먹는다. 간짜장, 삼선짜장, 물짜장, 된장짜장, 쟁반짜장, 옛날짜장, 산동짜장, 사천짜장, 유슬짜장, 유니짜장 등, 짜장면의 종류는 많다. 이 모든 짜장면이 ‘중국 시작, 중국 음식’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다양한 짜장면’은 한국에서 변화, 발전한 것이다. 외국은커녕 ‘본토 중국’에도 없는 ‘한국식’ 짜장면이다. 중국에서 출발했지만, 중국에는 없는 짜장면이다. 우리 짜장면이다. 중국 짜장면은 중식이되, 한국 짜장면은 한식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계란후라이(달걀부침)’를 얹은 짜장면을 먹지 않는다. 짜장면과 더불어 ‘짬뽕 국물’을 내놓는 나라도 없다. 짜장면은 중국에서 출발한 음식이다. 여전히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지만, 한반도의 짜장면은 한식이다. 중국인들도 한국 짜장면을 ‘한청짜장면[漢城炸醬麵, 한성작장면]’으로 부른다. 한성은 서울이다. 서울 짜장면, 한국식 짜장면이다. 


원형 짜장면은 ‘면(麵)+첨면장(甛麵醬)’이다. 면에 첨면장을 더한 다음, 비벼 먹는 음식이다. 북경 등에서 짜장면을 주문하면 볶은 첨면장에 완두콩 서너 개 혹은 가늘게 썬 오이 몇 가닥을 올려준다. 그뿐이다. 


첨면장은 중국인들의 된장이다. 가장 기본적인 중국인들의 두장(豆醬)이 바로 첨면장이다. 첨면장(甛麵醬)의 ‘甛(첨)’은 ‘달 甘(감)’과 ‘혀 舌(설)’을 합친 글자다. 혀에 달다는 뜻이다. ‘첨’은 낮잠이라는 뜻도 있다. 낮잠은 달콤하다.


첨면장은 ‘면에 단맛을 더하는 장(醬)’이다. 중국인들의 짜장면은 한국인의 된장찌개 비빔밥이다. 밥에 된장을 더해서 비빈다. 면에 첨면장을 더해서 비빈다. 두 음식 모두 소박하다.  


강된장은 된장 볶음이다. 여기에 물이나 육수를 붓고 끓이면 된장찌개가 된다. 짜장[炸醬, 작장]의 ‘작(炸)’은 ‘터지다’ ‘튀기다’ ‘폭발하다’는 뜻이다. 첨면장은 발효식품이다. 기름에 볶으면, 첨면장 안에 기포가 생긴다. 이 기포는 뜨거운 열을 받아 작게 터진다. 첨면장을 볶을 때, ‘자작자작’ 하는 작은 폭발음이 들린다. 기포가 터지는 소리다. 작게 부풀어 오르는 기포도 볼 수 있다. 짜장면의 짜장, ‘작장(炸醬)’은 장을 볶는다는 뜻이다. 짜장면은 첨면장 볶음을 얹은 음식이다. 된장을 볶고, 끓인 다음 밥에 얹고 비비는 것과 같다.      

        

짜장면은 언제 한반도에 전래되었을까? 임오군란과 청일전쟁 때 전해졌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년) 6월에 구식 군대가 일으킨 병란이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고종은 힘을 잃는다. 정치에서 물러났던 흥선대원군이 다시 권력을 잡는다. 청나라는 많은 병력을 동원, 한반도로 침입, 대원군을 체포, 중국으로 압송한다. 이때 많은 중국인이 한반도로 몰려든다. 청일전쟁도 마찬가지. 청나라와 일본 군대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킨다. 군대를 따라 민간인도 많이 따라왔다. 임오군란 때는 많은 뱃사람이 군인들을 따라 한반도로 들어왔다. 청일전쟁 때도 마찬가지. 민간인들이 전쟁 물자, 식량을 날랐다. “임오군란,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한반도에 살면서, 일상적으로 짜장면을 먹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중국과 교류가 잦으니 제물포에 중국 거류민이 사는 지역이 생겼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와 제물포를 잇는 뱃길이 생겼다.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생긴 이유다. 지금도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일본인 거류지역과 중국인 거류지역이 남아 있다. 


임오군란 때 혹은 청일전쟁 때, 한반도로 건너온 사람들이 한반도에 짜장면을 전래한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짜장면을 먹었다. 서민들이 한반도에 건너온 다음 자신들의 일상식을 먹었다. 그뿐이다. 한반도의 짜장면은 자연발생적이었다. 새로 개발한 음식이 아니다. 누가 먼저 짜장면을 팔기 시작했을까? 그것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인천의 어느 가게가 짜장면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것은 난센스다.


짜장면은 서민의 음식이다. 

우리 된장찌개처럼 중국 서민들이 간편하게 한 끼 때우는 음식이다. 먼저 길거리의 음식에서 시작되었다. 제물포는 부두다. 사람도 다니고, 짐도 옮긴다. 여행객과 짐을 위하여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가난한 부두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길거리 ‘리어카’ 혹은 자전거에서 파는 음식을 사 먹는다. ‘중국인의 된장찌개 비빔밥’ 곧 짜장면이다. 삶은 국수에 미리 볶아둔 첨면장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된장을 담그듯, 중국인들은 집집마다 첨면장을 담갔다. 


“길거리의 음식이 정식 가게로 옮겼다”는 표현도 틀렸다. 누구나 된장찌개를 끓일 수 있듯이, 중국 가정에서는 누구나 짜장면 정도는 만든다. 중식은 먼저 요리를 내놓고 마지막에 식사를 하는 식이다. 그 식사 중 국수, 만두 등을 고른다. 식사 메뉴 중 하나로 짜장면도 있었다. 


당시의 짜장면은, 오늘날 우리의 간짜장과 닮았을 것이다. 매번 첨면장을 새로 볶아서 내놓았다. 일반적인 한국 짜장면은 장을 끓여서 미리 준비한다. 간짜장은 매번 새롭게 중국식 웍(WOK)에 볶는다. 1900년 언저리 제물포의 짜장면은 오늘날의 간짜장이다. 


1950-60년대, 짜장면은 급격하게 변화한다. 


시작은, 엉뚱하게도, ‘미공법 480호(Public Law 480)’다. 미국은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무상 혹은 헐값으로 우방국에 지원했다. PL480호를 통하여 미국 잉여농산물 밀가루, 면화 등이 한반도에 쏟아졌다. 가난한 가정에서는 밀가루로 칼국수, 수제비를 만들었다. 청요릿집들은 짜장면을 내놓았다. 


흔해진 밀가루는 첨면장의 변화를 부른다. 한반도 짜장면의 시작이다. 풍부한 밀가루로 짜장면 공급, 수요가 증가하자, 첨면장이 부족했다. 화교 식당에서는 첨면장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화교 가정에서도 첨면장을 만들어 먹었다. 청요릿집들은 첨면장이 부족하자 화교 가정에서 남긴 것을 가져다 사용했다. 짜장면의 폭발적 수요로 이마저도 부족했다. 


화교 가정에서 첨면장을 구해서 식당에 공급하던 이들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첨면장 제조 가내 수공업’이다. 점차 대량 공급, 공장제 첨면장으로 발전한다.  


오래 묵은 첨면장은 검은색을 띤다. 1, 2년 묵은 것은 황갈색이다. 식당에서는 오래 묵은, 색깔이 검은 첨면장을 원한다. 공장에서 캐러멜색소를 넣는 이유다. 캐러멜색소는 검은색과 더불어 단맛을 낸다. 반들반들한 윤기도 강하다. 오늘날 짜장면은 달다. 공장 대량 제조 첨면장 때문이다. 


전북 군산, 익산 일대의 ‘물짜장’ ‘된장 짜장’ 등은 짜장면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형 중국 짜장면은 비비기 힘들다. 볶음 첨면장은 물기가 적다. 뻑뻑하다. 잘 비벼지지 않는다.


산둥성 출신 화교 중 상당수는 금강 유역을 통해 한반도로 들어온다. 산둥성 칭다오와 인천 제물포를 잇는 뱃길을 따라 한반도에 들어온 이들이 가장 많다. 그다음은, 산둥성, 금강 언저리를 잇는 뱃길을 따라 한반도에 들어온 이들이다. 이들은 군산, 익산, 전주 일대에서 자리를 잡았다. 군산, 익산 일대에 화상 노포가 많은 이유다. 


한국인들은 중식당에 주문을 한 다음, 늘 ‘빨리빨리’를 외친다. 뻑뻑한 원형 첨면장 대신 비비기 쉬운 ‘한국형 첨면장’을 만든다. 첨면장에 물을 붓고, 끓인다. 감자와 양파, 당근, 대파 등을 넣은 다음 푹 끓인다. 볶는 첨면장의 경우, 매번 볶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오전 나절, 한번 끓여둔 변형 첨면장은 편리하다. 주문을 받은 후 면을 삶고, 끓여둔 첨면장 소스를 얹는다. 손님들은 비비기 편하고 단맛이 강한 짜장면을 좋아한다. 감자, 양파, 당근, 대파 등 각종 채소가 들어간 것이 훨씬 낫다. 한국형 짜장면의 탄생이다. 


전북 해안 지역의 짜장면은 공장 대량 생산 첨면장 대신 원형 첨면장을 이용하여 ‘한국형 짜장면’을 만든다. 원형 첨면장에 물과 전분을 넣고 끓였다. ‘물짜장’이다. 첨면장은 중국인들의 ‘된장’이다. 공장 제조 첨면장이 아니라 ‘원형 첨면장, 중국 된장’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된장 짜장’이다. 색깔도 검은색이 아니라, 짙은 갈색 정도다. ‘황색짜장’이라고도 부른다. 지금도 남아 있는 군산, 익산의 물짜장, 된장 짜장은 중국 짜장면이 한국식으로 변화,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유니짜장 소스.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 넣는 것이 특징이다.

‘옛날짜장면’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변형된 짜장면을 이른다. 중국의 원형 짜장면에는 채소 등 고명이 별로 없다. 첨면장을 볶아서 얹고, 완두콩 몇 개, 오이 챈 썬 것 몇 조각 정도다. 한국형은 큰 감자, 양파, 당근 조각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 ‘옛날’은 1960-70년대다. 이때 먹었던 채소 고명 가득한 짜장면을 한참이 지난 후 추억한다. ‘옛날’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볶은 첨면장이 아니라 공장 제조 ‘춘장’에 채소를 여러 종류 넣고 끓였다. 변형 짜장면이다. 짜장면 그릇에 턱 하니 ‘계란후라이’도 있다. 전분과 물을 넣고 끓였다. 걸쭉한 국물이 비비기도 좋다.


유니[肉泥, 육니]짜장도 원형 중국 짜장면은 아니다. 돼지고기를 잘게 다진다. 다진 고기에 첨면장을 얹고 볶아서 고명 겸 장을 만든다. 돼지고기를 잘게 다졌다고 ‘유니’다. 한국에서 발전한 한국형 짜장면이다. 


신선한 고급 해물 3종류를 넣었다고 삼선(三鮮)짜장이다. 국수와 고명을 섞어 비빈 다음, 쟁반에 내놓는다고 쟁반짜장, 가늘게 썬 고기를 얹었다고 유슬짜장이다. ‘유슬’은 고기를 가늘게 썬 것이다. 육사(肉絲)다. 


산동짜장은 가게 주인의 선대 고향이 중국 산동성(山東省)이라서, 사천짜장은 맵다고 붙인 이름이다. 모두 원형 중국 짜장면과는 거리가 있다.


짜장면은 한식이다. 중국 출발이지만 원형 짜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짜장면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한반도에서 변화, 발전,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짜장면과 이탈리아 스파게티를 합쳐서 짜파게티를 만들었다. 짜파게티는 중국, 이탈리아에도 없는 한식이다.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 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익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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