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아 토속음식 연구가 /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
유기를 사용한 전통 상차림. 궁중에서부터 반가, 민간에 이르기까지 유기는 음식의 온도와 안전을 지켜주는 가장 좋은 그릇으로 인정받아 널리 쓰였다.
접시라는 뜻의 ‘plate’에서 파생된 말일테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식 표현 중에 음식과 관련해 ‘plaiting’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는 없다. 주로 ‘도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플레이팅’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그릇이나 접시 따위에 담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다만,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라는 단서가 붙은 채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에서는 2016년 ‘플레이팅’을 ‘담음새’로 순화해서 다듬었다.
애초에 없는 표현이기도 하려니와, 한식에는 더군다나 맞지 않음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식 플레이팅’이라는 말을 쓴다. 푸드스타일리스트나 음식평론가도 예외는 아니다.
서양음식에서는 수프나 스튜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음식을 접시에 낸다. 샐러드, 스테이크, 디저트 등에 소스나 드레싱을 끼얹어 내므로 움푹 팬 그릇이 필요치 않다. 음식 한 가지를 먹고 나면 다음 음식이 나오는 ‘시간 전개형’ 상차림이기 때문에 한 가지 음식에 집중할 수 있고 국물이 흥건히 생기기 전에 다 먹을 수 있다.
한식 상차림은 흔히 ‘공간전개형 상차림’이라고 표현한다. 준비된 음식을 한 상에 모두 차려놓고 먹기 때문이다. 밥과 국을 중심으로 찌개, 구이, 조림, 무침 등을 올린다. 구이와 전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물이 있는 음식들이다. 그래서 식기도 운두(그릇의 높이)가 있는 것을 써야 한다.
그래서 플레이트, 즉 납작한 접시에 얹을 음식이 한식에는 그리 많지 않다. 밥을 접시에 펴서 담을 이유가 없고 국, 찌개, 무침, 조림 등은 국물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원래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매우 심했기에 식기도 구분해서 썼다. 놋으로 만든 유기는 추석 무렵부터 시작해 이듬해 단오 이전까지 사용했다. 뜨거운 음식을 담으면 쉽게 식지 않기 때문이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은으로 만든 은기도 같은 방법으로 사용했다. 날이 덥고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주로 사기그릇을 사용했다.
건더기와 국물의 비율을 잘 맞추는 것이 한식을 잘 담아내는 비결이다. 국물김치는 국물을 떠먹을 수 있도록 자작하게 붓고 장아찌는 주재료가 마르지 않도록 국물을 살짝 끼얹는다.
밥은 주로 주발이나 사발에 담는다. 놋쇠로 만든 것은 주발(周鉢)이고 사기로 만든 것은 사발(沙鉢)이다. 주발은 반드시 뚜껑이 있지만 사발은 뚜껑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주발은 밥을 주로 담지만 사발은 밥을 담기도 하고 국을 담기도 한다. 주발과 사발은 따로 ‘바리’라고도 부른다.
국이나 숭늉은 대접에 담았고 국물이 있는 반찬은 사발과 종지의 중간 크기쯤 되는 ‘보시기’에 담았다. ‘김치 한보시기’라는 표현이 익숙한 이유이다. 국물이 있는 음식을 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간장이나 초간장을 담는 ‘종지’는 작은 종을 엎어 놓은 것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종지도 사발처럼 뚜껑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국물이 없는 마른 반찬은 접시(貼是)에 담았다. 운두가 낮고 납작한 그릇이다.
대략 20년 전까지만 해도 새신부가 혼수를 준비할 때 한식 반상기 세트를 구비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대개는 4인조를 기본으로 하지만 8인조, 16인조까지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늬 없이 담백한 백자는 묵지근한 맛이 있어 담긴 음식의 모양과 색을 살려준다. 수십 년을 두고 써도 물리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요즘은 한식 반상기를 제대로 갖춰서 혼수를 마련하기보다 유명 브랜드의 양식기를 세트로 구매하는 편을 선호한다. 모양이 예쁜 그릇을 2개씩 구입하기도 한다. 예전처럼 집들이를 하는 경우도 없으니 똑같은 모양의 그릇을 일습으로 구입하는 것은 낭비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먹고 솜씨를 부려보아도 상차림을 하고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납작한 접시에 나물을 모양 살려 담으려고 해도 자꾸 무너져버린다. 물기 없이 볶은 불고기도 마찬가지다. 왜일까.
서양 음식을 잘 담는 방법은 구도를 정하는 것이다. 접시 가운데에 원형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음식을 담으면 안정감을 준다. 물결 모양으로 회전시키듯 음식을 배열하면 경쾌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한입 크기로 앙증맞게 만든 음식을 수평, 혹은 수직으로 배열해 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국물 없는 음식이기에 가능하다. 또한 나이프를 이용해 각자 썰어먹도록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민족이다. 한국음식은 한입에 떠먹거나 집어먹기 좋도록 재료를 손질할 때 칼질을 많이 한다. 나물은 가닥가닥 뜯거나 채 썬다. 호박눈썹나물처럼 반달 모양을 내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얇게 썬다. 볶거나 무쳐서 그릇에 담을 때는 소복하게 담을 수밖에 없다. 또 그래야 먹음직스럽다. 접시에 얇게 깔 듯 담아낼 수가 없다. 같은 접시라도 그야말로 납작한 것보다는 운두가 조금 있는 것이 한결 보기 좋고 기능적이기도 하다.
한식은 섞임 음식이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주재료 못지않게 부재료도 많이 넣는다. 잡채나 비빔국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그릇에 담을 때도 잘 섞어 담는 것이 옳다. 사실 비빔국수는 한꺼번에 무쳐서 그릇에 담고 고명을 따로 올려야 맛있다. 양념장이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국수 포장지에 보이는 것처럼 삶은 국수를 타래 지어 그릇에 담고 고명과 양념장을 올리면 우선 깔끔하고 정갈해 보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비벼지지 않아 맛이 겉돈다.
스타일링 수업을 할 때면 유독 국이나 찌개를 담을 때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다. 국자로 무작정 퍼서 담으면 지저분해 보이고, 국물 양을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먼저 주재료를 그릇 왼쪽부터 가운데로 오도록 담고 오른쪽에 부재료를 모아서 가지런히 담으면 한결 먹음직스럽다. 동태찌개라면 동태 토막을 그릇의 ⅔ 면적에 담고 나머지 ⅓ 정도 되는 면적에 호박, 두부 등을 가지런히 담는다. 국물은 주재료와 부재료의 윗부분이 드러날 수 있을 정도로만 담는다. 전체 그릇 높이의 ⅔정도면 적당하다.
한국의 미학을 논할 때 ‘여백의 미’를 자주 언급하지만, 음식의 담음새만큼은 예외로 두어도 좋을 것 같다. 음식의 양에 비해 너무 큰 그릇은 적절하지 않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급격하게 좁아지는 그릇은 일식이나 중식에 어울린다.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을 분간하기 어렵거든 오른손을 들어 살짝 오므려보길 권한다. 손에 사과 하나 쥐거나 두부 한 모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모양새 말이다. 아래는 편편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벌어지다가 마지막에 살짝 오므리듯 마무리한 그릇이라면 무난할 것이다.
볶음이나 무침은 그릇의 중앙 옴폭한 곳에 소담하게 올려 담는다. 음식의 주조색과 그릇의 색을 맞추면 한결 기품있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젓갈이나 장아찌 등은 곁들이로 차리는 음식이므로 종지나 작은 접시에 한번 먹을 양만큼씩 덜어서 낸다. 위에 고명을 올리면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은 음식이라는 표시가 되므로 먹는 사람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ㅇ 글: 이명아 토속음식 연구가 /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
ㅇ 사진: (1번) 박명화 사진작가(지구인 스튜디오) (2~6번) 최해성 사진작가(베이스튜디오)
이명아 토속음식 연구가는 '우먼센스', '행복이 가득한 집' 등에 음식 전문기자로 활약했고,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이다. 조선일보 '헬스조선', 서울문화사 '리빙센스', 농어민신문사 'Korea Agra Food' 등에 한국음식문화 칼럼을 연재했고, 한식진흥원이 낸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 이야기>, <한국, 맛을 따라 떠나는 여행>, 휴먼 앤 북스의 <경주 음식문화 여행서-신라왕이 몰래간 맛집>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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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한국음식문화 누리집(www.kculture.or.kr/main/hansikcultur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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