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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Mar 30. 2020

비빔밥,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등잔 밑이 어둡다. 너무 가까이 있으니 몰라본다. 비빔밥 이야기다. 

중앙일보, 2009년 11월 5일 기사다. 독일 출신 한국인 이참 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된 지 100일을 맞았다. 비빔밥을 이야기한다.     


(전략) 대표적인 사례가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의 차이를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대답을 못 했고, 그 질문을 한 의원은 “관광공사 사장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질타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서 그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물었단다.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의 차이를 아십니까?” 하나 그 차이를 명쾌히 설명해주는 토종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후략)      


이참 사장이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의 차이를 몰랐던 것은 당연하다. ‘토종 한국인들’도 몰랐다. 오늘날 우리도 진주, 전주비빔밥의 차이를 설명하기 힘들다. ‘진주비빔밥이 뭐야?’라고 묻는 이가 오히려 많다. 이참 사장이 진주비빔밥을 몰랐던 것은 당연하다.


비빔밥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비빔밥? 비빔밥이 비빔밥이지 그게 뭐 별건가?, 라고 생각한다. 겉만 읽고, 속 고갱이는 모른다. 비빔밥,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지만 정확하게 아는 이는 드물다. 


1999년 6월, 팝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n)이 한국에 왔다. 묵었던 호텔에서 우리 비빔밥을 먹었다. 호텔 측은 마이클 잭슨이 먹었던 비빔밥을 ‘마이클 잭슨 비빔밥’이라고 이름 붙여 메뉴로 내놓았다. 그뿐이었다. “미국 팝스타가 한국 비빔밥을 먹고 좋아하다니 신기하다”라는 정도였다. 마이클 잭슨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비빔밥을 먹었다는 이야기와 항공사에서 비빔밥을 비즈니스석 기내식으로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았다. “몸에 좋은 채식 식단이라서 마이클 잭슨이 좋아했을 것”이라는 사족이 붙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마이클 잭슨 정도의 톱스타가 서양, 미국의 고급 채식 밥상을 보지 못했을까? 마이클 잭슨이 묵었던 호텔에 부탁해도 충분히 세계적 수준의 채식 식단은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비빔밥을 외국인도 좋아하는 ‘건강한 채식 식단’ 정도로 여겼다. 왜 하필이면 한국의 비빔밥일까? 누구도 이런 ‘합리적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잊었다. 


마이클 잭슨이 먹었던 비빔밥은 울릉도 산나물, 삼나물과 고비를 넣은 것이었다. 삼나물은 눈개승마다. 이젠 삼나물과 고비를 아는 이도 드물다. 

[1] 비빔밥은 여러가지 채소를 넣고 지은 밥이 아니라 맨밥에 여러가지 나물 등을 넣고, 섞고, 비빈다. 

비빔밥은, 한국인에게는, 별다른 음식이 아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백반집에서 몇 가지 나물을 넣고, 된장, 간장, 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비빔밥이다. 잘 삭은 열무김치와 된장찌개를 넣고 비벼도 비빔밥이다. 외국인에게는 간단치 않다. 여러 가지 반찬을 넣고 비벼 먹는 음식, 뭔가 어색하다. 비빔밥을 처음 만나는 외국인은 ‘먹는 방법’을 묻는다. 밥, 고명, 장(醬)을 넣고 비비는 비빔밥, 한국 특유의 음식이다.


비빔밥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없다시피 하다. 시작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비빔’이 우리만의, 고유의 것은 아니다. 기록이 일찍 시작된 중국에 ‘비빔’이 먼저 나타난다. 비빔밥을 흔히 ‘골동반’이라고 표기한다. 골동은 ‘골동(汨董)’ 혹은 ‘골동(骨董)’이다. 둘 다 여러 가지를 섞었다는 뜻이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를 섞은 음식이다. 조선 후기 기록에는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고 적었다. 표기하기 편하니 골동반으로 적었을 뿐이다. 한반도 비빔밥과 중국 골동반은 다르다.  


골동반 이전에 골동갱이 먼저 나타난다. 여러 가지를 섞은 국물 음식은 ‘골동갱(骨董羹)’이다. 중국 송나라의 유명 시인 소동파(1037~1101년)가 이미 ‘골동’을 사용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오주 이규경(1788∼?)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어떤 사람은 (골동이란 단어가) ‘소동파의 골동갱’에 근원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소동파의 골동’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여러 가지를 섞은’이라는 뜻의 ‘골동’을 소동파가 기록했지만, 소동파가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골동은 소동파의 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소동파는 ‘구지필기(仇池筆記, Qiuchibiji)’에서 골동을 이야기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라부의 노인이 음식을 여러 가지 모아서 함께 끓였다. 곧 골동갱이다”다. ‘라부의 노인’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골동갱이다. ‘여러 가지 음식을 모아서 끓인 것’이다. 골동갱은 소동파가 살았던 11세기 이전에 이미 있었다. 


소동파와 라부 노인의 골동은 모두 ‘갱’, 국물이다. ‘밥’은 아니다. 중국 기록에도, 오랫동안, 골동갱은 있지만, 밥에 나물과 양념을 얹은 골동반은 없었다. 명나라 초기인 1415년 완성된 ‘성리대전(性理大全)’에도 ‘골동갱’이다.


“골동(汨董)은 골동(骨董)과 같은 말로, 잡되다는 뜻이다. (중국) 강남 사람들이 물고기, 채소 등을 함께 넣고 끓인다. 골동갱(骨董羹)이다.”


라부 노인의 골동갱은 광동성이고, ‘성리대전’의 골동갱은 중국 강남이다. 모두 남쪽 지역이다. 


골동반은, 중국에서도 한참 후에 나타난다. 명나라 때, “물고기, 고기 등을 밥에 넣고 만든 것이 곧 골동반”이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반유반(盤遊飯)’도 나타난다. ‘반유반’은 도시락이다. 이름이 ‘야외로 놀러 가서 먹는 도시락’임을 보여준다. 


골동반과 반유반이 우리의 비빔밥과 같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골동반과 반유반은 지금도 남아 있는 일본의 가마메시[釜飯, 부반]와 닮았다. 일본 가마메시는, 이름 그대로, 솥밥이다. 자그마한 솥에 쌀을 안치고, 은행 열매, 새우 등의 해산물, 채소, 버섯 등을 올린 다음 지은 밥이다. 


우리의 비빔밥은 중국의 골동반, 반유반, 일본의 가마메시와 다르다. 여러 가지를 더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섞고, 비빈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중국 골동반, 반유반, 일본 가마메시는 우리의 영양 솥밥 혹은 콩나물밥, 무밥 등과 닮았다. 여러 가지를 더해서 밥을 짓는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지은 밥이 아니다. 맨밥에 여러 가지 나물 등을 넣고, 섞고, 비빈다. 다르다. 

‘섞고 비비는’ 부분은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일본 가마메시를 비비면 예의에 어긋난다. 정히 지은 솥밥의 형태를 끝까지 살린다. 숟가락으로 간장 소스를 조금씩 얹은 다음, 귀퉁이부터 한 숟가락씩 조심스럽게 떠먹어야 한다. 우리는 콩나물밥, 무밥의 경우, 큰 그릇에 옮긴 다음, 모두 비빈다. 일본인들은 ‘개밥’이라고 여긴다. 아름답지 않다고 여긴다. 


2009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특파원 구로다 가쓰히로 씨의 ‘비빔밥 양두구육(羊頭狗肉)’ 이야기로 한차례 소동이 있었다. 구로다 씨의 “비빔밥, 내놓을 땐 멀쩡한데, 비비면 엉망진창이 되는 음식, 결국 겉 다르고 속 다른 양두구육의 음식”이라는 표현이 한국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로다 씨도, 우리도 비빔밥을 정확히 몰랐다. 국민일보 2010년 1월 21일 기사 중 일부다.      


비빔밥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특파원 구로다 가쓰히로(69)씨는 “양두구육이란 말은 유머러스한 표현일 뿐”이라며 이번 소동이 문화 차이에서 왔다고 강조했다. (중략) 여전히 비빔밥이 세계적인 음식이 되기 어렵다는 자신의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 그는 “비비는 음식은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아 외국인에게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다양한 메뉴의 한정식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후략)     

 

구로다 씨는 1970년대 후반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을 잘 안다. 하지만 역시 일본인이다. 가마메시의 시각이다. 구로다 씨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쁘게’가 아니라 ‘가마메시’의 시각으로 비빔밥을 솔직하게 평했다. 그게 바로 ‘양두구육’이다. 이 기사는 ‘비빔밥 망언’에 대한 해명 인터뷰다. 구로다 씨는 여전히 비빔밥을 모른다. “양두구육이라는 표현을 오해하고 있다. 문화 차이다”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그는 비빔밥과 가마메시의 ‘문화 차이’를 모른다. 


그는 “비빔밥은 세계화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비는 음식은 흔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유럽의 숱한 파스타는 모두 비빈다. 소스를 얹어서 내놓으면 먹는 이가 국수와 비빈다. 주방에서 미리 비벼서 내놓기도 한다. 국수를 소스로 비비는 경우는 많다. 밥을 비비는 경우가 드물 뿐이다.  

[2]-[3]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더욱 화제가 된 짜파구리는 정해진 조리법 없는 한식의 특질을 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영화 속, ‘짜파구리’라는 음식이 화제가 되었다. 봉 감독 일행이 귀국하고, 몇몇 장소에서 짜파구리가 나왔다. 안심, 채끝 등을 얹은 화려한 짜파구리가 등장하고, 청와대에서는 대파를 썰어 얹은 짜파구리를 내놓았다. 

짜파구리는 ‘짜파게티+너구리우동(혹은 라면)’이다. 짜파게티는 ‘짜장면+스파게티’다. 짜장면은 ‘짜장미엔[炸醬麵, 작장면]’이다. 중국이 원조다. 스파게티(spaghetti)는 파스타의 일종이다. 이탈리아가 출발지다. 우리는 미국을 통해 처음 스파게티를 받아들였다. 이 둘이 머나먼 한국에서 엉뚱하게 결합한다. 한국 형 짜파게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짜파게티와 일본 우동, 라면의 변형인 너구리 우동의 결합이다. 짜파구리는 중국, 유럽, 일본의 결합이다. 


짜파구리는 번역이 힘들다. 외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음식이다. 영화에서도 ‘람동(ramdong)’이라고 번역했다. 외국에는 없는 음식이니,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라면(ramen)+우동(udong)’으로 표현한 것이다. 


파스타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 비빔밥은 쌀로 지은 밥이 주인공이다.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도 섞고 비비는 음식이다. 짜파구리는 ‘골동면(骨董麪)’이다.


“왜 짜장면, 스파게티, 우동을 섞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힘들다. “왜 비빔밥에 상추, 열무김치, 미나리, 고사리, 무나물, 콩나물, 시금치 등을 사용하느냐?”는 질문과 같다. 비빔밥은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 수천, 수만 가지다. “왜?”라고 물으면 대답은 궁색하다. “그저 습관적으로” 혹은 “늘 그랬듯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비빔밥은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 마치 짜파구리처럼. 한식의 특질이다. 


[이미지 출처정보] 

1.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2. IMDB(https://www.imdb.com/title/tt6751668/mediaviewer/rm3194916865)

3. 인스타그램 @everniere_duke(https://www.picuki.com/media/2266719477444153760)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 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익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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