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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넷둥파파 Feb 09. 2023

네쌍둥이 임신한 이야기

하나도 둘도 아닌 셋도 아니 넷입니다.

저희는 결혼하고 2년 후에 네 쌍둥이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자연임신으로요.

아주 당황스러웠죠.

병원에선 네 쌍둥이가 산모에게 아주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적 유산을 권유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너무 당황스러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우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경우도 있기에

의사 선생님은 저희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일주일 동안 네 쌍둥이에 대해 검색하고

인간극장에 나온 모든 네 쌍둥이 편을 보고

고민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무서웠습니다.

산모에게 위험하단 말을 들었고

4명의 이이를 잘 키워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의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전 선택적 유산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고

병원을 향했습니다.

솔직히 2명의 아이가 자연적으로 도태되길 바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 잘 있었고

아이 4명의 심장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주 작은 아기에게 심장소리가

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기뻤지만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희에게

선택적 유산 관련된 동의서를 주셨습니다.

이 동의서에 서명을 하면

2명의 아이를 유산하는 겁니다.

저와 아내는 차마 서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유산을 2번 했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만큼

슬펐고 힘들었습니다.


도저히 내손으로 서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동의서를 바라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저희를 보고

의사 선생님은 

서울대 병원에 다둥이 전문 교수님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을 만나

상담을 받고


교수님의 자신감에

용기가 생겨


아이들을 낳기로 마음을 먹고

주변에 알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영상 참고바람)


임신 초기


임신 초기에 아내의 입덧은 매우 심했습니다.

정말 먹는 모든 것을 토했습니다.


이 당시 임신을 하면

나라에서 산모지원금이 나오는데

단태아는 100, 쌍둥이 이상은 200? 이 나오는데

세 쌍둥이와 네 쌍둥이도.. 200이 나옵니다.


이 금액으로 병원 진료나 산모.. 에게

필요한 저걸로 쓸 수 있는데


아내가 아무것도 먹질 못해

링거 비용으로 모두 소진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입덧이 끝나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네 쌍둥이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조금씩 구입했습니다.


아내의 배는 정말 빠르게 커졌습니다.


아내의 배에 튼살크림을 꾸준히 발라주었습니다.

튼살크림 덕분인지

아내의 살이 탄성이 좋아서 인지

아내의 배에는 튼 자국이 없습니다.


매일 밤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축하금과 선물을 보내줬습니다.


임신 6개월에 만삭 촬영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찍었냐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산모 배 크기가 

일반 임산부 만삭의 배 크기였습니다.


아내는 아이 4명을 품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씩씩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약 28주가 되던 쯤에

양수가 세기 시작하고

교수님께서

이제 조금 불안하니

입원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다음 날 짐을 챙겨 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을 하고 난 후 아내의 상태는

하루하루가 달랐습니다.


배는 점점 불어보고

아내는 점점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어했습니다.


나중에는 혼자 화장실도 못 가고

혼자 변기에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과

심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30주만 아이들을 품고 있으면

아이들 모두 건강할 거라는 

교수님의 말을 들으며 30주까지

버텼습니다.


아내는 30주가 지나니

너무나 힘들어했습니다.


빨리 아이들을 낳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선

저희보다 급한 산모들이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산모들은

대부분 다둥이거나

위급한 산모들이 많습니다.


이해는 하지만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

마음이 아파 병원에 따지기도 했습니다.

산모가 이렇게나 힘들어하는데

왜 자꾸 기다리라고만 하냐며…


뇌피셜이지만

충분히 더 버틸 수 있기에 

기다리자고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이들을 엄마가 하루라도 더 품고 있는 게

인큐베이터에 며칠 있는 것과 비슷하다며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하셨습니다.


이상하게 

불만이 가득하다가도

교수님이 말하면..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32주가 지나고

어느 날 아내가 

입맛이 없다고

저녁을 거르고 자려고 하는데

아내가 숨쉬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저는 놀란 마음에

바로 간호사님을 불렀고


간호사님과 의사분이 오셔서

혹시나 산모가 어지럽다고 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아내는 어지럽다고 하였고

교수님은 30분 안에 갈 테니

바로 응급 수술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빠르게 제모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네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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