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의 무게
지난 일요일밤에 응급실에 실려갔었다.
오후부터 두통이 좀 있었는데, 한참을 누워있다 일어나서 죽을 몇 숟갈 먹었다. 기존에 두통약을 따로 처방받은 게 있었고 성분이 강한 약이라 빈 속을 조금 채우고 먹을 예정이었다. 그 죽은 쌀과 물만으로 끓인 죽인데, 무려 큰 아이표 쌀죽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엄지 척을 날리며 맛있게 먹다가 갑자기 몸의 이상을 느꼈다. 양손 끝과 발가락이 저렸다. 그러더니 그 저린 증상이 팔전체와 다리를 감쌌다. 꼭 전기가 오르는 듯이 계속 물결을 치며 몸통으로 증상이 옮겨오는 순간, 나는 119에 전화해 달라고는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다음부터는 온몸이 저리면서 손발이 굳었다.
방안의 신랑이 뛰쳐나와 심장을 압박하고 큰 아이는 119에 전화하고 둘째와 함께 내 팔다리를 주물렀다. 몸통의 저린 감각이 더 강렬해지며 숨을 제대로 못 쉴 거 같았다. 의식이 조금 있었던 나는 화재대비용으로 사 둔 산소마스크를 가져오라고 했다.
처음 써 보는 거라 마스크를 쓰기까지 좀 걸렸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쓸 말이 있다.ㅠㅜ 그래도 마우스피스를 통해 밀려들어오는 산소를 호흡하니 조금 살 거 같았다. 간이용이라 산소는 금방 바닥났고 두 번째를 뜯어 숨을 쉬고 있을 때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더니 다행히 정상이라며, 내게 일어난 현상이 과호흡이고 보통 과호흡이 오면 마비가 생긴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 팔다리가 먼저 저렸었는데…? 일단은 심호흡을 하라고 해서 죽을 것 같지만 따라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손과 발의 마비가 살짝 풀렸다.
그러나 잠시 후 끔찍한 두통이 밀려오면서 속이 뒤집어질 거 같았다. 머릿속에서 심장이 뛰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고통스러워했고 결국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이송되는 중간에 구급차 안에서 몇 번의 구토를 했다. 먹은 것이 거의 없어 위액만 나왔다. 다행히 집 근처 병원 응급실에 자리가 있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도 나의 두 손과 한쪽 발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응급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검사를 하고 몇 가지 약을 섞은 수액을 맞고 두 시간이 지나서야 온전히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풀리기까지 끊임없이 주물러준 호랑이 신랑에게 너무 감사하다) 결국 응급실에서도 최종적으로 과호흡증후군으로 알려주었고, 원인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차후에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검진등을 통해 원인을 추적하라고 했다.
마비가 풀리고 끔찍한 오심과 두통이 사라지니 더 이상 응급실에 있을 이유가 없어 동이 트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서 계속 잠을 잤다. 그리고…
저녁 무렵 정신을 차린 내가 아이들에게 많이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아이들은 아니라고 엄마가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사랑한다 했다. 마침 내 앞에 앉아있던 큰 아이가 이야기했다.
사실은 엄마 손발이 완전히 굳어서 비틀리는 바람에 정말 무서웠다고. 그래도 엄마 아픈데 걱정 끼칠 수 없어서 죽을힘을 다해 참았다고. 산소마스크를 씌워줄 때 아빠는 심장마사지 중이라 자기가 땄는데, 처음 사용하는 거라 안전캡을 어떻게 따는지 몰라서 어찌어찌하다 땄고 그때 손톱이 들려서 피가 났다고도 했다. ㅠㅜ 엄마가 실려나간 이후로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동생과 한 방에서 잤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위급한 순간에 세상 침착해 마지않던 큰 아이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당황하지 않고 엄마에게 도움이 되려는 마음 하나로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인내하며 버틴 아이의, 아이답지 않은 배려가 감사하면서도 너무 안쓰러워 가만히 끌어안았다.
어깨를 적시는 눈물에 그 천근 같은 침착의 무게가 무지근하게 실리고 있었다…
p.s. 과호흡증후군일 때는 산소를 흡입하는 게 오히려 안 좋다고 합니다.(저는 숨을 못 쉴 거 같아 산소를 사용하고 조금 나아졌다 했는데 아마도 심리적인 요인이었나 봅니다.) 널리 알려진 봉투호흡을 하여 자신이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는 것이 좋지만, 의식이 저하되거나 없는 경우는 저산소증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할 수도 있다네요.
당시 경황이 없었는데 출동해 주신 구급대원분들과 응급의료진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상 생애 처음 과호흡에 따른 사지마비를 경험한 한스푼 이야기였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앞으로 건강관리 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