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것이 나왔다고? 묘벤져스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 이 글은 영화 파묘에 관한 스포가 있으며, 냉철한 리뷰가 아닌 호의 가득한 관람 후기입니다 :)
파묘의 개봉 하루 전, 떨리는 마음에 관한 글을 올렸던 내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관람한 것을 보면 꽤 순한 맛이다. 어떻게 글을 올려야 하나 고심 끝에 어젯밤 간신히 글의 맥락을 잡고 잠들었는데, 오늘 일어나 보니 맥스무비에 감독님의 일문일답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아뿔싸, 느린 자는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글의 방향을 틀어 파묘가 마음에 들었고 다시 N차 관람을 준비하는, 순수한 팬으로서의 마음을 후기로 올리기로 한다.
4DX 상영관 이용을 자주 한다. 처음 4DX 경험을 '드래곤 길들이기 1편'으로 시작했고,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탑 건 매버릭'과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다. 개인적으로 하늘을 유려하게 나는 장면을 좋아한다. 4DX의 특성상 의자가 비행씬과 맞물리면 그 체험이 극대화되는데, 그래서인지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들은 모두 다 공통적으로 비행씬이 있다. 파묘는 4DX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에겐 그 섬찟함을 배가시키는 장치가 되겠지만, 나처럼 4DX 경험이 많은 이들에겐 조금 싱거울 수 있다. 이건 나와 동일하게 4DX 이용 경험이 많은 큰 아이도 같은 의견이라는.
막귀지만, 영화관에서 극대화되는 음향을 매우 즐긴다. 어떤 영화든 극장에 혼자 남을지언정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모두 끝날 때까지 머문다. 커다란 스크린에 펼쳐지는 생동감 있는 화면도 좋지만, 감독이 마지막까지 안배한 그 웅장하고 강렬한 사운드의 몰입감은 극장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드보이 때는 눈 덮인 산맥을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스산한 바람소리를 마지막까지 들었고, 인터스텔라때는 영사실에서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엔딩크레딧 때문에 극장 복도에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은 적도 있다. 그만큼 내겐 영화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데, 파묘는 오리지널 스코어와 음향효과가 정말 최고라고 느꼈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사바하에서 함께 한 김태성 감독이 음악을 맡았는데, 내가 다시 N차 관람을 하기 위해 사운드에 특화된 특수관을 고려하는 이유다. 이미 한 극장체인에서는 사운드트랙에 대한 장점을 눈치채고 볼륨 UP 상영회라는 행사를 하는 곳이 있다. vol 1.0 up = 약 3.3 db 정도의 음압크기로 상향조정된 볼륨으로 더 강력한 효과를 느낀다나? 서울의 모 지점에서만 하는 행사인데, 지방에 살아서 매우 아쉽다. 대신 내가 사는 지역의 최첨단 음향시설로 중무장된 특수관으로 다시 가려 한다. 이번에는 혼자 방문하여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예정이다. 자고로 영화는 두 번째 볼 때가 진짜 맛난 법이다.
각종 매체에서 다루었지만, 모든 배우들의 연기합이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완벽하다. OTT의 자막에 길들여져 자막이 없는 극장에서 배우들의 발성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몰입감이 확 떨어지는데, 이들의 딕션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다. 내레이션들은 오디오만 따로 계속 듣고 싶을 정도의 황홀한 귀가르즘을 느꼈다.
발성뿐일까?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 네 배우 모두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정확히 분석하고 너무 튀지도 모나지도 않게 하나의 동그라미가 되어 한 지점을 향해 굴러간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마블의 어벤저스들은 중간중간 마음이 맞질 않아 서로 다투는 경우도 많았지만, 우리의 묘벤져스 들은 험한 것을 신속하게 처단해야 했으므로.
영화의 처음에는 케이퍼무비를 연상케 하는 꽤 세속적인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정확한 소신과 윤리의식이 있는 프로들이다. 이것이 때론 세속적이다가 때론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이유다. 혹자는 상덕의 선택과 행위가 갑툭튀라 하는데, 영화 초반부터 상덕의 내레이션을 들어보면 그는 이미 세상사 만물의 존재이유와 진리에 대한 성찰을 거듭하는 자로 게다가 연륜까지 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네조차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만 이르러도 자연스레 삶의 진리에 다가가는데, 하물며 풍수를 알고 지관을 업으로 하는 자의 삶이 그저 허울뿐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튼 겁이 많은 내가 안심하고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파묘 팀, 즉 묘벤저스 덕일 것이다. 자신의 길에 소신을 갖고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에 그 누가 신뢰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험한 것이 나왔다고? 이 영화는 험한 것으로 무서움을 느낄 게 아니라 묘벤져스에 의한 그 험한 것의 수난시대를 보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파묘 D-1에서 적었듯이 지인찬스로 장재현 감독님을 따로 뵌 적 있다. 한국형 오컬트의 대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교회 집사이며 모태 신앙이라는 감독님의 말이 참 의외였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이가 각종 설화와 다른 종교, 귀신이야기에 연관된 장르에 매혹되어 있다니 참 특이한 지점일 수도 있으나 전작 사바하에 나온 이정재 배우의 목사 배역에 감독님을 대입해 보면 이해가 쉽다.
무교인 이들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의 파편인 것이다. 어쩌면 감독님은 어릴 적부터 믿던 신의 존재를, 또 다른 형태의 영적인 것들에 대한 탐구로 증명하고 싶으신 것이 아닌가 싶다. 사악하고도 멀리해야 할 것들 조차 진지하게 다루는 그 마음이 오컬트로 표현된 영화 속에도 녹아들어 장재현 감독만의 장르적 특성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대화를 나눌 때 왜 파묘를 소재로 생각했는지 물었었다. 감독님이 어릴 때 집안의 선산에서 백 년도 더 된 조상의 묘를 이장한 적이 있는데, 파묘할 때 관을 열자 푸르스름한 신비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관에 대한 페티시즘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 감독님이 '이건 처음 얘기하는 건데...' 라며 이야기해 주셔서 특종을 잡은 기분으로 영화가 개봉하면 브런치에 꼭 올려야지 했으나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친절하게 다시 언급을 하셨다. ㅎㅎ
맥스무비의 일문일답을 보니, 감독님 스스로 파묘는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언급을 하셨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것처럼 감독 스스로 이 영화의 허리를 끊었다고 말이다. 진짜 험한 존재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로서 파묘를 당하고 그 지점이 오컬트라는 소재에 교묘하게 녹아들어 일반인들에게는 보다 더 친절하고 대중적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파헤쳐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와 현상에 진심인 오컬트 마니아들에게는 몰입도를 확 떨어뜨리는 지점이라 불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냉철한 리뷰가 아닌 호의로 가득한 후기라고 밝혔다시피 나는 감독님의 변주에 매우 공감했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러 번 N차 관람을 통해 파묘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까에 신이 난 상태다. 이미 스토리를 맛보았으니, 다음은 특수관에서 극대화된 사운드트랙을 즐기고, 그다음은 미장센을, 그다음은 다시 의미를 곱씹고, 그다음은, 그다음은... 오래전 올드보이를 극장에서만 18차례 즐겼던 일이 떠올라 매우 행복할 따름이다.
* 아직 한 번밖에 보지 않았기에 기억이 가물해서 다른 이들의 리뷰를 더 보았다. 그런데, 응? 미처 몰랐던 꿀팁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들의 자동차 번호가 0301, 0815, 1945라든가... 상덕, 영근, 화림, 봉길, 심지어 무당 자매처럼 출연한 두 배우의 극 중 이름이 모두 독립운동을 한 투사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 감독님과 더불어 쇼박스 관계자님도 함께 뵈었는데, 그분이 잠시 영환도사를 언급하셨었다. 그때는 도무지 예상이 되질 않았는데, 어쩌면 '통쾌한 OO 소탕 대작전'이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묘벤져스에게 아무리 험한 것이라도 비할 바가 아니었을 테니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 예고편에서 보면 배우들이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엄청나게 혼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대상이 놀랍게도 CG가 아니라고 한다. 요즘처럼 CG가 난무하는 세상에 그것이 CG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아날로그를 고집한 장재현 감독도, 어마어마한 형태의 대상을 촬영해 낸 이모개 감독도 너무 멋지다.
* 세계 각국의 요정과 정령이 나오는 신비한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예전에 우연히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음양사가 활약하는 일본 만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영화의 후반부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사실 이 후기는 이미 파묘를 본 사람들을 위한 후기지만, 혹여 스포를 감수하고 영화를 보기 전에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음양사에 대해 살짝 알아도 좋겠다. 물론 음양오행에 대한 지식이 더 필수겠지만.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시간 즈음, 서울의 모 극장에서는 파묘든 사람들의 자발적인 단체관람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개봉 3일 만에 이미 100만 관객이 넘었다는 것은 흥행에 엄청난 청신호다. 즐거운 관람 후기를 쓰는 나의 마음도 이미 파묘든 상태라 더욱 기쁘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모든 것의 양면은 세상을 이루는 진리다. 빛을 밝히는 논리적인 증명이 가능한 과학도, 어둠을 헤아리는 믿지 못할 비과학의 영역도 결국엔 세상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조화의 맥락이다.
신을 사랑하기에 감히 험한 것들조차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사람들의 마음에 파묘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