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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푼 Nov 06. 2022

될 때까지. 오롯이

나에겐 브런치가 있다





브런치 북을 처음 응모했다.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다. 특히 시간에 쫓겼다.


공모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문학상 응모에 먼저 신경 쓰느라 시간 분배를 잘못했다. 게다가 갑자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글에 집중할 시간이 모자랐다. 선택과 집중을 하여 최소 편수로 응모했는데, 완성된 브런치 북에 유독 눈에 자주 뜨이는 단어가 있다.


오롯이...


오롯이 : [부사]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유의어] 고스란히, 온전히

출처 : 네이버 사전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이 단어를 좋아했다. 하고자 하는 일의 대부분이 혼자 하는 것이어서 나 홀로 오롯이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지역서점에서 그림책 편집자의 강의가 있었다. 편집자님이 살아오면서 위로받았던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로 그림책이었고 시와 외서도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정말 재미있었는데 책을 만드는 이의 경험이라 더욱 흥미진진했다. 추가로 더미북에 관한 조언도 있었다.


아이가 그렸던 예전 그림으로 미니북을 만들었다. 이미 아이의 디지털 그림 완성은 포기한 지라 원래 손으로 그린 그림과 그나마 완성된 디지털 그림 몇 개를 포함하여 만들었다. 하필 컬러 잉크가 불량이라 흑백으로 완성했다.


이 작품은 내가 수상한 동시가 모티브다.


원래 동시는 꽤 짧은 데, 그림책용 글밥으로 텍스트를 늘렸다. 편집장님은 아이가 4학년 때 그린 그림치고는 정말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림책 전체를 아우르는 - 이른바 큰 산을 보는 시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려할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동시는 동시대로 그 맛을 지키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했다.


즉 아예 그림책으로 만들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대신 동시와 그림책용 글은 맞닿은 부분이 많으니, 내게 그림책용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원래 아이와의 추억을 소장하기 위해 기념 북으로 만들 생각이어서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순순히 수긍했다.


그런데... 아,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서글픔이 몰려왔다. 비록 미완의 작품이지만 무려 3년 가까이 품은 작품이다. 전문가의 시선에 부족한 건 당연하지만... 아이와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다.


돌이켜보니 애초에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1 회성 그림책 만들기 특강이었다. 그때는 또 다른 편집자님의 강의였는데, 그분은 동시의 발상이 독특해서 그림책 아이디어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합평을 듣던 수업의 선생님도 다 완성하면 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그림책 출판사에 노크하라고 했다.

 

2019년 아이가 종이에 그린 초안 :  수제책 완성도 못하고 잠들어있다 ㅜㅠ


2020년 아이가 디지털로 그린 또 다른 초안


안타까운 흑백 미니북과 다른 독립출판 수업에서 받은 샘플


그렇다. 분명 미흡하다. 텍스트와 그림의 1 : 1 대응이라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지만 한 번 더 보완해 볼 여지는 있다. 아이의 그림을 토대로 색칠을 다시 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림을 갈아엎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든, 이제는 내가 오롯이 완성할 것이다.


"계속 걸으면 그곳에 도착할 거야" 2020 어느 겨울 by woo


물론 기념 북도 만든다. 어린 시절의 내 아이가 만든 애틋한 책의 기록도 남겨야 하니까.


그리고 나에겐 최후의 보루, 브런치가 있다.(무엇이라도 마음껏 올릴 수 있어 행복한!)


한다. 한다. 될 때까지.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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