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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26: 목표만큼은 확고해야 한다!

돈이 목표가 아니었다. 내 목표는 분명했다.

by 찰리한

머래이 브리지 고기공장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인. 오버타임을 매일, 잠을 거의 안 자고 하는 한국인이 한 명 있다. 2주에 5,000달러를 벌었고 1 달이면 10,000달러. 즉 1달에 천만 원 이상을 벌었던 전설적인 한국인이 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소식이 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잠을 거의 안 자고 일하는 그 이유가 바로 카지노에 가기 위해서란다.

열심히 피땀 흘려 번 돈을 카지노에 가서 모두 탕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또 그렇게 1달간 그렇게 벌고 또 카지노 가서 탕진하고.

카지노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가서 돈만 잃는다면 무서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번 돈을 딴다면, 1,000달러를 베팅해서 1,000달러를 번 순간부터는 아마 카지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미 따 봤기 때문에 그 돈이 내 돈이라 생각도 하고 한번 더 하면 딸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돈을 써버 린다. 다시 일 열심히 해서 따면 되지 하면서 또 그렇게 무한 반복하다가 결국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내 종교는 기독교라서 이 머나먼 호주에서, 그것도 애들레이드에서 1시간 30분 떨어진 머레이 브리지라는 곳에서 일을 할 때에도 오버타임 하기 전까진 이 지역의 교회에 다녔다. 솔직히 목사님의 설교는 들리지 않았다. 설교 내용은 너무 어려웠고 생활영어는 그래도 알겠지만 저런 전문적 용어들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찬송 몇 장 펴라, 말씀 몇 장 펴라 그리고 같이 찬양하고 말씀을 읽었을 뿐.

작은 교회이며 교인수가 30명도 안 되는 정말 5~10 가족 정도만 모여서 예배드리는 그런 작은 교회였지만 외국인 노동자인 나에게 편견 없이 대해줬던 참 고마운 분들이셨다.

하지만 내가 오버타임 하는 그 2달 동안은 주말에는 거의 시체처럼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토요일에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영어를 알려주겠다며 한국인들 몇 명을 모아서 같이 공부를 시켜줬고 나도 거기서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못 나갔다.


심지어는 토요일에도 오버타임을 하러 나갔다. 힘에 겨워하면서 전화가 오면 죽어가는 목소리로 "OK"를 외치고 Lord out이라는 파트로 간다. 여기는 패킹이 끝난 고기들을 냉장 보관한 후 유통을 위해 분류하는 곳이다.

영하 25도 정도의 창고에 가서 두꺼운 옷을 입고 이리저리 쏟아져오는 상자들을 분류하고 나르다 보면 영하 25도의 기온이 무색할 정도로 땀이 났다. 그렇게 5~8시간 더 일하고 집에 와서는 주일날에는 다시 시체처럼 누웠다 저녁 5~6시쯤 겨우 일어나 정신 차리고 장 보러 갔다 와서 다시 집서 누워 지냈다.

그렇게 2달간 번 돈은 거의 12,800~13,000달러. 당시 환율이 호주 1달러에 1,100원이 넘었으니 1달에 700만 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환율을 적용하여 한국돈으로 바꿔보고선 정말 눈이 돌아갔다. 육체적으로 버티기 힘들고 몸이 더 이상은 안된다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위해, 돈에 중독되어 더 열심히 오버타임을 했다.


그러던 금요일, 스킨 파트를 끝내고 Lord out 가서 3시간 더 일하고 퇴근한 새벽 4시. 집에 오는 길에 하늘을 쳐다봤다. 밤하늘에 별을 봤는데 너무나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그 별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종교가 기독교라 이때에도 mp3에 CCM 찬양을 담아 듣고 오는 길이였다. 그때 찬양하나를 들으면서 그만 그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제목이 '내 영혼에 주의 빛 비춰주시니'라는 찬양이었다. 그 노래를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제야 눈치챘다. 내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쑤셨다. 병이 난 걸까 겁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비치는 밝은 별과 찬양을 듣다 보니 그만 감정이 올라오면서 울어버렸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을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른 채 울었다. 울다가 울음이 멈췄고 나한테 냉정하게 물어봤다.


'너 여기 온 이유가, 목표가 뭐였지? 왜 몸을 이렇게 혹사시키면서 돈을 벌지? 기본급여 만으로도 생활은 아주 풍족한데 뭘 위해 돈을 더 버는 거야? 너 목표가 이게 아니었잖아. 오버타임은 분명 공장의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와 다른 이들의 문화체험이었잖아. 근데 돈에 목숨을 걸고 있니?'


오버타임을 하면 할수록 나는 스킨 파트에서 점점 말이 없어졌다. 몸이 힘드니 말할 기운도 없었다. 일은 빠르지 않고 적당히 느리지 않을 정도로만 했고 그 누구와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영어 쓰는 시간이 줄었다. 아니 영어도 그렇지만 동료들과의 관계도 소흘 해졌다. 이 모든 것들이 생각나다 보니 미안함도 커졌다. 마치 타일일 하다 돈 못 받아서 서러웠던 그날처럼 울다가 다시 생각해야 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나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다시 생각해봤다.

1. 영어 배우기

2. 여행하며 다양한 체험하기(그 나라의 문화 배우기)

3. 나 자신 발견하기(낯선 곳에서의 내 행동이 진정한 내 모습)


근데 오버타임은, 그러니까 시드니에서 그 어려운 생활과 같은 민족에게 사기를 당해서 힘든 상황에서 조차 마약도 내 목표를 뺏지 못했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돈이 어느 순간 마약처럼 들어와 내 몸을 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돈이 어느샌가 나에겐 중독으로 와버린 것이다.

카지노에 가서 돈을 탕진한 전설적인 한국인이 생각났다. 바보같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카지노 가서 탕진하고 무슨 재미가 있다고 그러고 일하나 라고 그 전설적인 한국인을 비난했는데 지금의 내 모습은 그저 그 카지노에 가는 전설적인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만 탕진하지 않았을 뿐.

끊어내야 했다. 더 이상 이상태로 가면 분명 몸은 더 상하고 돈은 더 벌겠지만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호주에 온 것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돈 이렇게 많이 벌고 여행 다니면서 배우면 되지?라고 나와 타협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면 되잖아.


한데 내가 세운 우선순위에서는 분명 돈이 아니었다. 난 그저 돈에 환장해서 오버타임을 하는 것뿐이었다. 토, 일요일에는 또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해졌다. 계속 나에게 질문했다. 돈이냐 목표냐, 아니 돈에 중독된 거냐 아니면 무슨 목표를 위해 그렇게 돈을 버는 거냐

그리고 마침내 굳은 결심을 했다. 다음날 월요일 아침 8시 30분.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Hi charlie. today you'll go MSF"

"Sorry I can't work overtime any more"

"really? are you sick? any problem? go to hospital?"


언제나 콜 을 외치고 오버타임 할래 안 할래 묻지 말고 그냥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만 해달라고 요청했던 나였는데 더 이상은 안 한다고 하니까 HR 담당자가 걱정이 돼서 몸이 아픈지, 문제가 있는 건지, 병원 가야 하냐 등등 걱정을 해줬다. 그래서 난 그냥 내 목표가 돈은 아니기 때문이며, 난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더 이상은 오버타임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오버타임으로 공장의 어지간한 파트는 다 가봤기에 더 이상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간 전화 줘서 고맙다고 했고 담당자는 정말 쿨 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얻길 바란다면서 전화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전화를 걸고 싶었다. '아니 나 할 수 있어. 뻥이야! 서프라이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만큼 돈에 중독된 내 모습을 보고 전화기를 아예 꺼버렸다. 그리고 다시 누워서 잠을 더 잤다.

11시쯤에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스테이크를 굽고, 햇살 받으면서 커피 한잔하고,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해서 이번 주일부터 꼭 나간다고 다짐을 했다. 날은 여전히 덥지만 평온한 호주의 점심을 맞이했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반대쪽에는 아이보리색 풀들이 만들어낸 언덕과 맑은 하늘, 집사가 되어버려 고양이 사료 한 포대 사놨는데 그간 오버타임에 주지 못했던 사료를 퍼서 냥냥이 밥그릇에 놓고 기다리니 저 멀리 집사를 반겨주는 냥냥이.

뭔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돈과 목표가 싸우고 있었지만 난 시드니에서 분명 목표를 통해 나락에 빠질 뻔했던 나를 구해냈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 믿음을 갖고 오버타임을 완전 포기 선언해버렸다.


스킨 파트로 출근 전에 메디컬센터에 들렸다.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팀 닥터에게 한번 진단해달라고 했다. 고기공장에서의 직원 복지는 매우 좋았다. 뼈에 찔려서 손이 퉁퉁 부었던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 파트의 슈퍼바이저는 계속 출근하라고 강요해서 HR sarah에게 일러 받쳤더니 sarah가 당장 그 슈퍼바이저한테 전화해서 소리쳤다고 한다. 그만큼 편견 없이 직원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생각했다.

나는 어깨 쪽 진단을 받고 단순한 근육통 같지만 우선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마 계속 오버타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스킨 파트로 출근했다. 슈퍼바이저 kim에게 인사를 하고 동료들에게 puck을 날리면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살짝 웃을 뿐 그다지 크게 호응하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고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말을 붙였다. 잘 지냈냐, 애는 잘 크냐, 요즘 넌 뭐 생각하냐,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냐, 여전히 카레 남겨서 아내한테 혼나고 있냐, 여전히 코카콜라가 맛있냐 등등

약간 서먹서먹한 사이는 금방 날아가버렸다. 다시 빠릿빠릿 일하며 여기저기 카운팅 도와주면서 내 자리를 찾았다.


중독은 마약만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만큼 돈이라는 물질은 행복을 주는 동시에 불행을 주는 존재였다. 물질이 넘치는 순간부턴 불행이었다. 목표가 다시 한번 나에게 큰 힘을 줬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그냥 할걸' 하는 아쉬움도 분명 있지만 당시 내 선택과 행동은 매우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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