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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Feb 09. 2021

3. 나를 위로해 준 가장 안타까운 말!

나도 평범한 아이의 아빠이고 싶다!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가 폐지되고 낙태법의 입법 공백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데이지가 임신을 했던 2013년에는 법이 정한 경우(강간에 의한 임신 또는 임신유지가 산모의 생명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 등)가 아닌 이상 임신 중지는 불법이었다. 태아가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도 산모에 위험하지 않다면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하지만 찾아보면 시술을 해주는 병원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갔던 병원은 자연출산 전문병원이라 임신 중지를 허용하지도 권유하지도 않았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 목사님의 설교는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분노만이 가득 차 올라 하나님께 눈물로 원망을 했다.

"하나님! 왜요? 왜 우리죠? 어째서? 우리가 뭐 잘못했나요? 아니 속도위반이 그렇게 잘못한 거냐고!"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잘못에 대한 벌을 준 분이 원망스러웠고 그 원망의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한테로 향했다. 예배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렇게 원망과 분노의 주일을 보내고 다음날 병원으로 갔다.


아이가 잘 자라는지, 문제가 없는지, 다운증후군이면 출산에 있어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의사님은 열심히 이것저것 설명했는데 그런 설명 따위는 귓가에 맴돌기만 했다. 설명을 듣는 것 자체가 싫었다. 내가 이걸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 왜 들어야 하는지 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설명을 다 듣고 다른 방법이 없는지 되물었고 의사님은 임신 중지는 불법이라고 단칼에 선을 그었다. 보통은 검사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알리면 부부가 다시 진료를 보러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은 다른 병원에서 임신 중지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병원에 방문했기에 의사님이 많이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임신 중지는 20주 차 이내로 하면 산모에게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이 남아있다는 것이 나에게 한줄기 희망이었다.

'지금 17주 차니까 20주 차까지는 아직 4주 정도가 남았어.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어!'

좀 생각하는 척하다가 임신 중지를 권유하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출산은 여자가 하기 때문에 내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다. 임신 중지 역시 데이지가 받는 것이라 내 뜻대로, 내 억지대로 할 수는 없었다. 데이지의 뱃속에 있는 아이라 아직은 내 아이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난 임신 조차도 기쁘지 않았었기에 더 쉽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데이지의 말에 약간 주저하게 됐다.

“찰리 한! 난 괜찮아! 다운증후군 아이 낳아도 괜찮아!"

데이지는 나에게도 두 가지 선택 중에 어떤 걸 택해도 그 의견을 존중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나는 데이지가 한심하다 못해 화가 났다.

'이 사람이 미쳤나? 훗날 생각 좀 해봐라. 우리가 애 잘 키울 수 있어? 죽을 때까지 우리가 아이의 수발을 다 들어야 해!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난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아!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울 자신이 없어! 난 그럴 자신이 없단 말이야! 나도 남들처럼 그냥 평범한 아이의 아빠로 선택되고 싶다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야?'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임신 중인 데이지에게 참아 말할 수 없어서 계속 분노만 마음속에 쌓아 놨다. 분노 때문에 슬픔 또한 없었다. 하나 슬픈 게 있다면 바로 '불법'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평정을 되찾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괜찮아! 불법이지만 방법이 있잖아! 임신 중지하면 돼!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적당히 비위 맞추다가 때를 봐서 수술을 권하면 되니까 너무 열 내지 마!'

나를 위로해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 아내의 따뜻한 말도 아닌 바로 임신 중지란 불법뿐이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깝게도 그 당시 불법 이외에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던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종교마저도 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눈 한번 감고 딱 진행하면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죄인인데 이런 죄 하나 더 짓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오히려 이걸로 책임을 지라면 그까짓 종교 따위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매일 눈을 뜨면 두 가지 생각만 했다. 첫 번째는 ‘내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게 사실인가’와 두 번째는 ‘그게 사실이라면 불법을 행하면 되니까 괜찮아!’였다. 괴롭지만 눈을 뜨면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했다. 가끔 꿈에서 멀쩡한 비장애 아이가 태어났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건 꿈일 거야 라면서 잠에서 깨면 역시 꿈이었다. 비장애 아이라는 기쁜 소식이 눈을 뜸과 동시에 장애아이로 바뀌면서 또다시 불법을 생각하고 나를 위로하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데이지는 여전히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내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은 괜찮다고만 했다.

"찰리 한! 나는 아이를 낳아도 안 낳아도 괜찮아! 같이 키워야 하니까 당신 의견도 중요하거든."

그러면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내 머릿속 정답을 데이지에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데이지가 약한 마음을 먹길 기다렸다.

"찰리 한! 나 너무 무서워! 낳기 싫어!"라고 한마디만 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실행할 프로세스를 다 갖춰놨었다. 정말 천재적으로 모든 나쁜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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