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뒤덮여 미처몰랐던 감정들
임신 중지 비용은 2013년도에는 고작 10-20만 원, 비싸 봐야 100만 원도 안됐다. 동네 애완동물 병원에서 반려동물을 분양받는데 최소 30만 원부터 100만 원이 훌쩍 넘는데 생명을 좌우하는데 드는 비용은 정말 ‘고작’ 이였다.
정기적인 초음파 검사는 계속 진행했다. 의사님의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나와 상관없었다. 왜냐면 난 곧 결정을 내릴 테니까! 그들이 원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테니 무슨 말을 하던 내 일이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느리게 가는 것과 다르게 한주는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한주, 또 한주가 지나더니 어느덧 20주 차가 코앞까지 왔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 늦춰진다면 선택권도 없거니와 데이지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슬슬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데이지의 분위기를 살폈고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나를 데이지는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금쪽같은 시간들이 지나가는데 하루는 데이지가 치과진료가 있었고 그게 아팠는지 다음날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며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한창 바쁘게 일하는 중에 데이지한테 연락이 왔다. 평소 근무시간에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할 텐데 전화가 왔다는 건 뭔가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찰리 한. 나 배가 너무 딱딱해지고 뭔가 물컹하고 나왔어! 양수 나온 거 아니야?"
깜짝 놀랐다. 놀라서 데이지에게 얼른 말했다.
"데이지! 빨리 병원으로 와!"
"찰리 한! 나 데리러 오면 안 돼?"
"빨리 택시든 구급차던 타고 와! 내가 가면 1시간 걸려 도착하는데 그러다 둘 다 잘못되면 어떡해!"
대답을 마치자마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회사에서 걸어서 20분, 뛰어서는 10분 정도 걸리는 위치라 얼른 뛰어가면서 데이지의 위치를 확인했다. 택시 타고 온 데이지를 부축이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다. 전날 치과치료가 상당히 아팠기에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었다.
큰 이슈 없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데이지를 택시에 태우고 집으로 보낸 후 회사로 걸어오는데 마음속 한구석이 불편했다. "둘 다 잘못되면 어떡해"라고 대답했던 나 자신이, 데이지가 잘못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뱃속의 아이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이 계속 자리 잡고 있어서 집중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어물정 퇴근을 하게 됐다.
집에 도착하여 데이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결정을 내리려고 눈치를 봤다.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면서 시간이 지나 데이지가 먼저 말을 했다.
“찰리 한! 난 아이 낳을 수 있지만 당신 결정도 중요해! 그러니까 얘기해봐!”
결정은 이미 끝났으니 한마디의 말만 떼면 되지만 불편한 그 마음이 계속 내 입을 막고 있었다. 잠시 또 침묵의 시간이 지속됐다. 마음을 다시 잡고 정말 말해야겠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수많은 생각들이 났다.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 겹쳤던 단어는 바로 살인자였다.
'지금 수술을 한다면 넌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경고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튀어나왔고 잠시 생각해야 했다. 어쩌면 그냥 학창 시절에 교육받았던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기억이 났던 것이며 그게 좋은 건 아니라는 교육을 받았기에 그런 거라고 넘기고선 다시 입을 떼려고 했을 때 뇌리에 스치는 또 다른 생각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난 크리스천이지만 평소 하나님의 음성을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도에는 두 번이나 내 생각과 행동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첫 번째는 배우자 기도를 하자마자 8년 친구인 데이지를 생각나게 해서 1달간 잠 못 자고 눈에 실핏줄 터지고 구내염 걸릴 정도로 힘들어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지금 이였다. 하나님이 준 생명, 이유야 어찌 되었던 목적이 있어 태어날 생명에 대한 내 선택권은 없었다. 흔히들 아이를 갖는다고 표현하지만 또 다른 말로는 아이가 우릴 선택한다고 한다. 이 아이는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을 나는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난 하나님이 주신 이 생각 때문에 또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진 완성된 나만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눈치를 봤지만 결심했고 실행하려고 했다. 3주간 내가 생각한 완벽한 시나리오는 바로 오늘을 위해 준비했건만 살인자라는 오명과 하나님이 주신 생각 때문에 주저하게 돼버렸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다. 복잡했지만 정말 날카롭게 내 생각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난 데이지에게 말했다.
“데이지! 우리 이 아이... 낳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낳아서 잘 키워보자!”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내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렀다. 분노로 뒤덮인 감정에 묻혔던 슬픔과 아픔, 고통들이 순식간에 밀려왔고 아이와 데이지에게 미안했던 마음, 세상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낙담한 나에 대한 연민들이 한 번에 몰아닥쳤던 것이다. 그 많은 모든 감정들이 단지 분노가 되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알지 못했었기에 실컷 울고 나니 가슴속이 아주 상쾌해졌다. 여전히 머리로는 임신 중지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가슴속 말은 아주 확고했다.
옳고 그름이란 정확한 경계선은 세상을 살면서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참 많다. 법이 정한 테두리 역시도 타인의 문제가 된다면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내 문제가 되는 순간부턴 감성적으로 변하며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니 심지어 명확하게 성경에 죄라고 쓰여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준을 정확하게 잡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든 다 모호해진다. 4주간 정말 힘들고 기나긴 싸움을 했다. 싸움이라기 보단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내 생각과 마음, 의견만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결정해야 할, 선택해야 할 때에 만큼은 내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행하여지지는 않았다. 확고한 결단을 한 다음날 병원에 가서 설명을 다시 들었다. 이젠 정말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확인하고 아이의 태명을 지었다.
나의 못된 마음속에서 승리한 아이를 위해 태명은 승리라고 지었다. 그리고 태교라는 걸 시작했다. 비록 사랑한다,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진 못 했지만 마음속으로 그간의 못난 아빠의 모습들을 사과하고 우리 아이가 무사히 잘 출산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여느 아빠들이 아이의 태동과 발차기에 기뻐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엄마 배를 발로 뻥뻥 차는 그 아이를 보며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