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한 Apr 12. 2021

5. 너희들 잘못 아니다!

잘못이라 생각했어도 아픔까지 감싸 안아준 건 가족이였다.

행복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가, 우리가,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장애아이를 갖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은 저 먼 곳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야 했는데 그게 정말 힘들었다. 무슨 말을 들을까, 어떤 비난을 할까. 아예 모르는 사람이 그런다면 신경도 안 쓰겠는데. 그날만큼은 가족에 대한 정의를 머릿속에 되뇌고 되내었다. 그리고 가족은 역시 가족이었다.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슬픔을 같이 짊어질 수 있는 게 가족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데이지와 난 결정을 내렸다.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눈물의 다짐을 통해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병원을 통해, 서적을 통해 여러 정보를 얻으면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좋은 것들을 주기 위한 부모의 삶을 받아들였는데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사람은 안타깝게도 가족이라 불리는, 우리가 잘 자라도록 양육을 했던 부모님 이였다.

이제 막 절망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는 중이었는데 이 사실을 부모님한테 알리는 순간 그들 역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했고 그 아픔을 주는 내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그러다 아픔도 치유되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크나 큰 아픔이 될 것이고 그 아픔을 준 우리를 원망할 게 뻔했다. 원망 섞인 말에 상처 받을 것 같은 우리의 마음 역시 무서웠다.

그냥 사실을 알리지 않아도 면피는 가능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린 출산하기로 결정을 했으니 이 사실을 알려야 했는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너무 어려웠고 무슨 말을 들을까 두려웠다. 세상 모든 공포영화보다 무서웠고 가장 어려운 난제보다 더 어려웠다.

가족인데,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인데 내 문제도 아닌 내 아이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그때만큼은 가족이라는 거리는 눈과 눈 사이처럼 가깝지만 서로의 아픔을 보여주기 힘든 존재 같았다.

데이지는 먼저 우리 집에 알리자고 했고 그런 말 하는 데이지가 미웠다. 아무리 정신을 차렸다곤 하지만 완벽하게 마음이 확고해진 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선뜻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야 했고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만나러 갔다.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재밌는 얘기를 하고 아무 일 없는 척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은 그 날따라 너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저녁시간이 됐다. 저녁을 먹고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아직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못했다. 데이지가 눈치를 주며 빨리 말하라는 사인을 보냈는데 계속 무시했다. 쉽지 않다는 건 데이지도 잘 알고 있지만 여기 온 목적은 말하기 위함인데 계속 이러다간 말도 못 꺼내고 집으로 돌아갈게 뻔했기에 계속 눈치를 줬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부모님 두분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것 같았다.

"저...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라고 입을 떼었지만 몇 분간 말을 못 했다. 여러 감정들이 또다시 교차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일단 내뱉었다.

"우리 아이 장애가 있어요. 다운증후군 이래요"

몇 분 전까지 즐겁게 대화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냉랭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니?"

"그러니까 우리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장애가 있고 다운증후군 이래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부모가 되는 것도 처음인데 장애아이는 경험조차 못했으니 나도 모른다. 갑자기 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잠시 기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병원에서 알려준 다운증후군의 특징과 문제에 대해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그대로 생각에 잠기셨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는 슬픔보다 화가 먼저 나셨는지 집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왜 했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은 예상대로 정상적인 반응이라 생각했고 너무나도 이해됐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아니 그보다 더 했으니까 충분히 이해됐다. 흥분하셨던 아버지는 다시 침묵하셨다. 데이지는 우리가 잘 낳고 잘 키우겠다고 확신에 찬 말로 부모님을 잠시나마 위로했다. 그리고 그간 우리가 생각했던, 고민했던 모든 것들을 털어놓았다. 그때 계속 침묵만 지키던 어머니가 갑자기 한마디 내뱉었다.

"데이지 네 잘못이 아니다"

잘못들은 줄 알았다.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을. 어머니는 다시 얘기했다.

"너희들 잘못 아니다. 너희들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너희들이 더 힘들겠지"

침묵하셨던 어머니의 뜻밖에 대답으로 머리가 순간 멍했다. 나도 아이의 장애가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문제가 있지 않았나, 아무리 병원에서 돌연변이처럼 발생하는 것이라 하지만 원인을 찾아야만 했고 그 원인을 제공한 존재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잘못을 떠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잘못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아니 그 원인을 제공한 우리에게 잘못이 아니라고 이 모든 아픔을 한 번에 덮어버리셨다.

어머니는 데이지를 위로해주며 울먹이셨다. 본인도 답답하고 안타까울 것이다. 첫 손녀가 장애로 태어난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 부부만큼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말이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의 침착한 대응에 차분해지셨다. 이후의 상황에 대해 우린 더 세세히 알려줬다. 출산 때까지 무슨 일들이 생길지, 출산 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지 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왠지 부모님에게 잘못한 것 같았다. 잘못이 아닌데, 분명 어머니도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했는데 잘못한 것 같았다. 말하고 나니 그래도 속은 시원해졌다.

"그래.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내가, 데이지가 잘못해서 벌 받는 건 아닌데 말이지"

데이지는 잘 말했다고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눈물이 또 앞을 가린다. 운전 중이라 더는 울었다간 차를 세우고 대성통곡을 해야 할 판이라 꾹 참고 말도 안 되게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머리와 가슴은 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