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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Apr 27. 2021

7. 남편도출산교육받아야한다고요?

드라마에서 보던 출산 장면과 현실은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는 다르더라!

임신을 한 여자의 몸은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아기가 몸에 있으니 체중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늘어난 몸무게를 지탱하여 산모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허리나 팔뚝, 허벅지 여기저기 살이 붙는다. 장기들은 늘어난 자궁에 의해 밀려나거나 눌릴 수밖에 없다. 몸속에 꽉꽉 차있는 장기들이 아이의 생명을 위해 필사적으로 자리를 만드는 관경을 보면서 임신한 데이지에게 미안했다. 이리도 힘든 과정을 거쳐야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게 야속할 정도로!



입덧이 끝난 데이지는 체력이 어느 정도 좋아졌다. 그간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던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입덧할 때는 차에 타기만 해도 힘들었는데 2~3시간 정도의 장거리 여행도 가능해서 10월 초 날 좋은 가을의 문턱에 전주를 방문했다. 역시 전주에 가면 맛있는 음식들이 끊이지 않는다. 데이지는 많은 양의 음식들을 먹었고 입덧도 안 했는데 이에 질세라 나 역시 쉬지 않고 먹었다. 태아에 좋은 음식 위주로 먹었지만 데이지는 맛있게 먹는 것이 태아에도 좋다는 근거 없는 이론에 따라 매운 것도 먹고 짠 것도 먹고 그냥 이것저것 다 먹었다. 유명한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평소 어머니가 해주던 콩나물국이나 콩나물 무침, 콩나물 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난 '콩나물 국밥 따위가 맛있어봐야' 하며 한 숟갈 떠먹고는 국물까지 다 마셨다. 데이지 역시 맛있다며 밥 한 공기 더 시키자는 걸 내가 말렸다.


(말렸다고 하던데 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아침부터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았고 내 임무는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식단 조절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말렸을 수도 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전주에서 국밥에 밥 한 공기 더 안 시켜줬다며 혼난다. 여자가 임신하면 먹고 싶다는 건 뭐든지, 현지를 가서, 아니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무조건 구해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배달 인프라가 그때에도 잘 돼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행복한 전주여행을 마치고 병원에 정기검진을 갔다. 출산일은 아직 4달 정도 남았지만 그전에 교육이 있다며 소개해줬다. 교육 내용은 임신 후 몸과 마음, 여러 가지 변화와 현상에 대처하는 방법 등이 소개됐고 자연 출 산답게 출산 시 요구할 수 있는 것까지 포함됐다. 교육시간은 직장인들에게 불금을 보내고 꿀과 같은 늦잠이 허용되는 토요일 10시에 진행됐으며 총 4번에 나눠서 각 임신 시기에 맞춰 진행했다. 그리고 남편도 교육을 들어야 한다기에 데이지한테 물어봤다.

"이거 꼭 받아야 하는 거야? 내가 도와줄 게 있나?"

무엇이라도 도와줄 방법을 모색하는 남편의 모습보다 무엇이라도 빠져나가려는 남편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었는지 뺨을 칠듯한 기세로 쳐다봤고 빠르게 마음과 자세를 고쳐서 당장 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데이지를 달랬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1시간 걸리지만 아침밥을 꼭 먹여야 하기에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야 데이지의 몸을 챙길 수 있어서 솔직하게는 너무 교육받기 싫었다. 교육회사 다니는 직원이 교육을 받기 싫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임신한 데이지에게 맞춰야 했다.


토요일 아침 10시가 되기 20분 전에 도착했다. 10쌍 정도의 부부가 참석했고 다들 표정을 보아하니 한두 명 빼고는 나와 같이 어쩔 수 없어서 끌려온 듯한 눈빛이었다. 우린 서로를 그렇게 말없이 마음속으로만 위로를 건넸다. 

'너도? 나도!'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원장님이 그날따라 얄미웠고 어디 교육을 얼마나 잘하나 보자 라며 전투적인 자세로 강의에 들어온 원장님을 응시했는데 첫 강의부터 크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간 내가 마음먹었던 것들을 모두 반성했다. 원장님이 첫 자연출산을 결심하게 된 사건부터 시작해서 대형병원의 출산 프로세스까지 설명을 들으면서 드라마의 모든 출산 장면들이 생각났다.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 하는 의료적 처치는 사실 몇% 정도의 소수의 산모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다수에게는 불필요한, 그저 프로세스에 의해 산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순차적으로 행해지는 의료체계를 꼬집었고 듣다 보니 새로운 출산의 세계로 빠져들게 됐다.

해외사례를 들며 집에서 조산사와 함께 출산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출산 시 산모의 마음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때 가장 큰 조력자는 조산사도 아닌 바로 남편이고, 평소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하면서 무엇이 가장 편한 건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과연 수술대 위에 라이트가 빛나는 곳에 누워있으면 누구나 극도의 긴장감을 갖지 않을까 한다. 그게 산모라면 더욱더 긴장하게 될 테고 마음이 절대 편할리는 없다. 출산을 위해 굴욕의 3종 세트를 받으면서 부끄러움을 참아야 했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다면서 출산 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또 출산의 고통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출산 중 산모가 남편에게 결혼을 후회한다던지 욕을 한다던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모진 행동과 말을 하더라도 절대 진심이 아님을 받아들이고 상처 받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산 전에 남편이 해줘야 할 행동과 방법들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다.


출산은 그냥 데이지의 몫이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데이지가 출퇴근할 때 대중교통 타지 않게 도와주고 좋은 곳,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면 남편의 임무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출산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마음, 행동, 표현을 최선을 다해 보여줘야 했다.



출산은 중요한 순간이다. 부모 모두에게.
특히 남자는 출산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육이 필요하다. 청소년기에 성교육 조차 부족했는데 출산교육에 대해선 더더욱 부족했다. 출산교육을 성교육의 일부분으로 인지하고 성별의 제한 없이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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